[오마이뉴스 2005-12-19 10: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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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규환 기자] 얼마 전 찾아간 전남 무안에서 들은 이야기다.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 평소 얼굴에 기미와 주근깨가 범벅이 되어 시커먼 아주머니를 얼마 지난 후 다시 만났더니 얼굴이 하얀 분을 바른 것처럼 번지르르 하고 뽀얗게 변했다고 한다. 대체 무슨 비결이라도 있을까 궁금하여 "자네 뭐 발랐는가?" 물었더니 "성님, 무슨 말씀이오? 나 아무 것도 바르지 않고 그냥 나왔당게" 하더란다. 재차 물었더니 "청국장 가루를 요구르트에 타서 먹었을 뿐이여"라고 하더란다.
석 달 동안 음료수 마시듯 흔히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하는 청국장 하나로 그런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일정이 바빠 직접 그 아주머니를 뵙지 못하고 온 것이 후회스럽다. 동네 사람들끼리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니 믿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여간 궁금하지가 않다. 직접 '실험'을 해 볼까도 싶다.
몇 해 전까지 쳐다보지도 않던 발효 식품이 요즘 뜨고 있다. 생김치보다 묵은지가 더 인기고 된장, 고추장, 장아찌, 젓갈에 홍어와 생선을 띄운 식해가 다시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다 보니 구린 냄새 지독하지만 20대 후반이 되면 자연스레 찾게 되는 마력을 지녔다.
대여섯 해 전에는 몸은 둘째 치고 옷에까지 냄새가 배는 탓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청국장이 자리잡더니 3년 전쯤부터는 홍어가 인터넷과 방송 물결을 타고 삼천리방방곡곡 터를 잡았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어떤 이는 땅 속에 파묻은 묵은 김치를 맛보고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것 한 가닥 쭉 찢어서 먹으면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밀려온다니까요"라며 최고의 찬사를 늘어놓았다.
혐오식품이나 다름없던 발효식품이 이제야 올바른 대접을 받는 게 단순히 시류가 아니라 음식 문화를 재조명하고 건강 식단을 차리기 위한 본 궤도에 오른 것 같아 토속음식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 온 한 사람으로 뿌듯하기까지 하다.
'신토불이'를 외치지 않아도, 굳이 한국적인 것을 들먹이지 않아도 건강식품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라 반도체나 자동차, 휴대폰 등 소위 해외로 잘 나가는 공산품보다 더 경쟁력 있는 발효식품이 마침내 세계음식문화를 주름잡을 날만을 간절히 바라는 내 바람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은 시간이 해결할 문제라고 본다.
그 중 이 나라에서 나고 여기서 수십 년 살았던 사람마저 먹기를 꺼려하는 음식 두 가지를 고르라면 단연 홍어와 청국장이다. 홍어에 대한 이야기는 누차 해왔던 터라 오늘은 고약하기 짝이 없는 청국장이 주인공이다. 한반도에서부터 만주 벌판까지가 원산지인 콩으로 만드는 청국장(淸麴醬)!
누룩곰팡이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하루쯤 콩을 잘 불려 푹 삶아서 60도까지 식히고 40~45도 정도가 유지되게 이불을 싸매고 또 하루만 묻어두면 이게 퇴비인지 모르게 팍 삭아 버린다. 맘만 먹으면 바로 해먹을 수 있으니 인스턴트 식품치고 별로 손이 가지 않지만 구린내가 보통이 아니다.
여기에도 비결이 있다. 물이 오염되지 않아야 하고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는 잘 뜨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국장균은 공기 중에도 많지만 지푸라기 한 올을 만나면 혁명적 변화를 겪어 거무스름하게 뜨고 그걸 퍼서 옮기려면 비단결보다 더 가느다란 실을 수도 없이 뽑아낸다. 끈적끈적하기 이를 데 없다. 국자에 달라 붙어 이내 생겼다가 그냥 두면 금세 사라지고 만다.
내겐 올해 전남 장성에서 벼를 탈곡해 주고 얻어온 짚 두 다발이 있다. 집안은 이사 온 지 4년이 다 되었지만 도배 한 번 바꾸지 않은 헌 집이다. 마침 지푸라기도 손으로 직접 베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 자체다. 큰 맘 먹고 메주 쑤는 날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한 말 가웃을 불리고 가마솥을 가스레인지 화력으로는 모자라 옆에 보조 불을 덧대고 기억을 되살려 삶았다. 차차 밤이 깊어갔다. 다섯 시간을 삶았더니 드디어 잘 물러지게 콩이 익었다. 구수한 단백질 냄새가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문을 비집고 스멀스멀 기어들어갔다.
예전에 어머니는 콩 타작을 마치면 메주를 쑤기 전에 해마다 콩 한 되를 삶아 청국장을 띄우셨다. 매매한 고랫재보다도 아니 쩐 황토집 냄새보다도 그윽하다 못해 코를 막고 싶은 아련한 맛이 생각나 후환을 무릅쓰고 도전했다.
청국장 질시루에 담요를 덮고 볼 때마다 두 손 모아 절까지 하는 장모님을 따를 수는 없지만 정성과 조건을 충족 시켜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시루 대용으로 헌 소쿠리에 진물이 흐르지 않도록 식혀서 깔고 푹 파묻었다. 이왕 냄새를 풍기는 것 맘껏 뜨라고 아랫목을 골라 짚을 깔고 앉혔다. 위에도 짚을 덮었다.
뚜껑을 닫고 행여 외풍이 들까봐 거적을 한두 개 덧씌웠다. 난방 온도도 평소보다 조금 높게 올렸다. 만 이틀이 지났을 무렵 꺼내보기로 했다. 육안으로 보기엔 거뭇거뭇해졌을 뿐 냄새와 때깔이 기대 이상은 아니었다.
다소 실망했지만 한번 열어 보았으니 이젠 찔 차례다. 너른 그릇에 옮겨 홍두깨로 대충 치대려고 국자를 들이대는 순간 거미줄마냥, 한 달여 가득 머금은 섬유질을 뱉어내는 누에 실처럼 끈적끈적한 균사체가 잘잘 흐르고 있다. 이게 고름이련가.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아내에게 밥만 앉히라고 하고는 알갱이를 빻다가 쌀뜨물을 미리 잡고 투가리(뚝배기)에 넉넉히 담았다. 국물 멸치를 넣고 말린 표고버섯 두 개를 넣었다. 마늘까지 찧었으니 이젠 고춧가루와 무를 얇게 쳐서 넣으면 된다. 집안에 "파바박" 밥 익는 소리가 들리고 청국장 끓은 냄새가 가득 퍼지자 파를 썰었다. 절반은 빻지 않고 되직하게 끓인 청국장 대령이다.
적당히 익은 김장김치 한 쪽을 잘라 상에 차렸다. 뽀글뽀글 밭아지는 청국장찌개까지 차려지니 검소한 밥상이지만 여느 대갓집이 부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콩을 좋아하도록 길들인 아이들도 서로 콩을 밥에 올려먹겠다고 야단이다.
냄새가 배지 않도록 일찌감치 방바닥에 뒹굴던 이불을 미리 장롱에 처박아 넣고, 문틈 사이로 냄새 빠지라고 삐끗 열어 놓은 문이 무색하게 지독한 냄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달달하고 구수하고 진한 맛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마침 가느다란 콩나물과 숙채를 무쳐 놓았다. 여기에 김치 서너 가닥을 넣고 청국장을 두어 숟가락 끼얹고 나물을 듬뿍 올려 둘둘 비벼서 한 입 가득 떠먹었다. 한 번 먹은 청국장은 연신 숟가락질을 재촉했다.
비벼 놓은 밥에 한 술 더 끼얹고 그 틈을 못 참고 한 숟가락은 입으로 직행을 한다. 얼마나 더 먹었을까,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재차 반 그릇을 퍼 담았다. 나물도 바닥이 드러나 보인다. 뗀잔거리던 아이들도 감쪽같이 비우고 만다. 홍어탕 진한 냄새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냄새난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문을 열어젖혀 공기 순환을 마치고 잠자리에 누운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뱃속이 조화를 부리는 모양이다. 낮에 먹은 라면이 소화가 되는 건지 체증이 가시려는 듯 꼬르륵 꼬르륵 소화를 돕는 소리에 잠 못 드는 밤이 시작되었다. 배가 고프다는 징조다. 동치미를 꺼내 한술을 뜨고서야 꿈나라로 떠날 수 있었다.
첫 작품치고 근사하게 된 청국장에 천일염과 고춧가루를 넣어 동생네에도 나눠줬다. 서너 되 남겨뒀으니 내년 봄까지 내 입은 궁금하지 않으리라.
/김규환 기자 - ⓒ 2005 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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