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현
과학 문명과 의학의 발달로 건강 장수의 삶을 고대했던 사람들의 꿈은 식품의 오염과 잘못된 식생활, 환경의 파괴로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온 몸을 빌어 자신들의 질병을 통해 이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질병은 메시지다. 질병은 오랜 시간동안 잘못된 습관들의 결과이고 다른 생명체들간의 대화의 단절로 인한 고통이며 상호 의존적 관계를 부정한 댓가이다.
이 모든 일들은 자연의 심성을 따라 배우며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심성을 따라 가는 길은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키우며 또 다시 생명으로 이어지는 일들이다.
씨앗에는 이미 그것이 콩인지, 팥인지 정해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할 뿐이다. 콩과 팥은 적당한 환경과 자연 조건에서 잘 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생명력을 인정하는 길이다.
하지만 우리는 콩이 된 놈을 팥이 되길 바라고 팥으로 태어난 놈을 콩이 되길 원한다. 생명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다.
지난 과학지식의 오류 중 대표적인 것들중에 하나는 아이들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고 아이들은 스폰지와 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렸고, 무엇이든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가르켜야 된다는 교육 논리를 정당화시켜 버렸으며. 각종 교육상품들을 만들어내며 상업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이 진부한 이론은 교육을 과열시켰고 아이들의 생명력을 부정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과학의 발달은 아이들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태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의 몸 속 깊은 유전자에는 수천, 수만년 인류 역사의 경험과 지혜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생명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고 온전하며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콩이 있고 팥이 있더래도 해와 바람과 비와 땅의 은혜가 없으면 콩은 콩이라는 열매와 생명으로 거듭날 수 없다. 콩은 비로소 자연의 은혜속에 또다시 콩으로 불려지며 의미를 갖는다. 자연의 은혜가 없다면 콩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자라게 하고 잎을 무성하게 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로 거듭날 수 없다.
생명이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자연의 손길이 있다. 니가 없으면 내가 없고 너로 인해 내 생명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의존적 존재다. 서로가 서로로 인해 존재하고 또 다시 의미가 되는 것, 그런 상호 연관된 존재임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너 때문에, 자식 때문에, 남편 때문에 못 살아.’ 라는 말을 반복한다. 내가 살려면 니가 죽어줘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마음이 자연의 심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 살 수 없다. 그런 것을 바란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아무리 인간의 능력이 탁월해도 인간의 삶은 자연의 생명 작용 안에 있기 때문이다.
또 자연이 생명을 키우는 과정은 다만 바램없이, 기대없이, 욕심없이 주기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해가 식물을 키울 때, 바람이 꽃가루를 옮길 때, 비가 촉촉이 내려 줄때, 땅의 양분으로 한 식물을 키워 낼때 내가 너한테 이만큼 주었으니까 너 뭐해 줄래라고 해와 바람과 비와 땅은 바라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줄 뿐이다. 욕심없이, 기대없이, 바램없이... 하지만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을 키우며 유기농 먹이고 좋은 것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좋은 학원 보내 주었으니 키는 이 정도는 커주어야 되고 몸무게는 이 정도는 나가 주어야 되고 피아노는, 그림은, 영어는, 한자는 이 정도는 해줘야 되고 대학은 이 정도는 가줘야 되고 직장은 이 정도는 얻어 줘야 되고 결혼은 이 정도는 해주어야 된다고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들이 바랄 몫은 더 이상 아니다. 부모는 다만 아이들이 잘 클 거라고 아이들의 생명력을 믿으며 다만 해처럼, 바람처럼, 비처럼, 땅처럼 주기만 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구름이 끼는 날이 있고 비가 더 오는 날이 있고 바람이 더 부는 날이 있듯이 내가 잘 키울라고 해도 부모의 노력만으로 내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아이들 소풍을 따라 가도 밖에서 음식 먹고 탈라지 말게 해달라고 고시레를 했고, 아이들 열 살 까지 약한 생명 잘 지켜 달라고 수수 팥떡 해 먹이며 삼신 할미께 간절히 빌었다. 그 비는 마음에는 우리 아이만 잘 되게 해달라는 부모의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인간의 능력, 부모의 능력만으로 자식을, 한 생명을 잘 키울 수 없으니까 자연의 은혜를 입게 해달라는 겸손하고도 간절한 기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연은 곧 사람의 생명이 된다. 자연과 사람은 하나다. 사람이 생명이고 사람이 자연이고 사람이 환경이다. 환경은 더 이상 인간들이 보살펴주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인간의 삶과 떨어져 인간을 위해 있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환경은 사람들의 생명 섬기는 모습을 통해 서로가 존재하는 방식을 찾아나갔을 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자연과 환경을 지키고자하는 노력 이전에 사람들은 먼저 사람에게 내 몸 같이, 내 생명같이 친절해야 한다. 밥이 내 몸안에 들어와 내가 된다. 자연의 은혜와 뭇 사람들의 노고가 모두 밥에 스미고 그것이 내 몸이 된다. 모든 생명이 하나다. 자식에게 잘하고 남편과 아내에게 잘하고 부모에게 잘하고 나를 스치는 모든 사람에게 잘 해야한다.
한 몸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어떤 기대와 욕심도 없이 돌봐 주고 친절히 대하는 것이다. 다리가 가려우면 손이 가서 긁어주고 허리가 아프면 손이 가서 두드려 준다. 그렇다고 손이 발과 허리에게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발이 더럽고 허리가 아프다고 그것을 잘라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내 몸 같다는 것은 다만 가렵지 않을 때까지, 아프지 않을 때까지 친절하게 긁어주고 두르려 주는 거다. 생태적 삶을 지향한다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라 물건들과 사람들에게 내 몸인 듯 친철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조상들은 이미 밥상머리에서 모든 교육이 끝난다고 했다. 밥이 내가 됨을 통해 엄마의 정성과 아빠의 수고를 알고 농부들의 노고와 자연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것, 그래서 생명의 소중함과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사는 것.... 감사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 삶에 만족감과 행복감이 있을 수 있을까.
밥상머리 교육을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다. 밥은 살만 찌게 하는 탄수화물 덩어리로 영양가는 없으니까 남겨도 되고, 고기와 우유는 키 그고 힘 세지기 위해 많이 먹어야 한다, 이것은 유기농이고 좋은 것이고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니까 이것은 먹지 말고 이것은 많이 먹고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둥 우리는 밥상머리 앞에서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기보다 온통 복 달아나는 입방정만 떨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최상의 것을 자기 자식에 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제대로 큰다는 보장을 감히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 부모들의 욕심을 미화하고 묵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반드시 바뀌어져야 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원하고 하고 싶고 자신의 생명력을 키우는 과정에서의 일들이 아니고 다만 부모의 한과 욕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자식을 위한다는 부모의 행동들이 정말로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의 지나친 욕심과 한 맺힘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를 아이들도 알 수 있다.
지금 엄마들의 꿈꾸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아이들의 불행을 딛고 일어나는 것일 수 있다. 남의 고통을 무시하거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삶의 방식이궁극적으로 자기 자식의 삶을 영원한 행복의 범주안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벌써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가 나온지 4년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 그간의 노력들을 모아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는 환경 단체들이 만들어내는 자료집 수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부 활동가들이 모여 낸 책이라는 점들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는 음식의 위험성들에 대한 논란들을 다시 불러오며 음식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불러오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라는 책이 대안없이 식품에 대한 위험성을 폭로하며 사람들에게 위기의식과 큰 불안감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은 다지사 활동을 하고 있는 주부 활동가들에게 대안 찾기라는 숙제를 남기고 있었다. <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 라는 책을 출간하고 난 그간 4 년동안 토론과 강연들을 통해 여러 가지 숙제를 풀어내고 그 간의 노력들을 정리해낸 것이 이번에 출간된 <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2 > 라고 보여진다.
식생활에 대한 관심은 아토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고 , 음식에 대한 중요성과 유기농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생활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젊은 엄마들은 당면한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념이 없어 음식이 말하려고 것이 무엇이고 밥상머리 교육이 무엇이며 부모된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겨를을 내지 못하고 있다.
<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2 > 는 먼저 책에서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을 풀고자 했던 노력들은 엿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책 내용들의 대부분은 기존에 출간된 다른 책들의 내용을 다시 모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저 지방 우유는 좋다라든가, 우유의 칼슘은 흡수율이 좋다라든가, 6세 미만의 아이는 잡곡밥의 소화가 어렵다, 육식 동물의 장의 길이가 몸길이의 3배라든가, 돈을 많이 써야 하는 건강식품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잘못되거나 편향된 정보들은 전문가들을 배제하고 평범한 주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일들을 풀어가겠다고 하는 다지사의 입장이 위험 수위에 이를 수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지사와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라는 책은 널리 알려진 단체와 책이니만큼 책임있는 글들을 낼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췌를 하고도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고 참고 문헌 처리한 부분이나 책임 있는 저자 소개 없이 다양한 사람들의 글들을 실은 부분들은 아주 거슬리는 대목들이였다. 주부들이 모인 비영리 활동이고 다수가 토론을 통해 동의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옳을 수 있고 정당화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지사 활동을 하며 가졌던 식생활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식생활 관련 도서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총정리를 해보고 싶은 노력은 곳곳에서 보여진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을 먹이고 접근하는 기술적인 면만을 고려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고, 자연식이 병을 치료하는 수단, 내 자식 잘 키우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연식은 우리 모두의 식사임을 강조하고 있지 못하다.
식품에 대한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대안 만들기를 해나가는 것은 시대적 사명과도 같다. 하지만 자칫하면 불안증과 공포심을 야기할 수 있는 것도 식생활 계몽과 환경 운동의 난 과제다. 정의의 편에서 분노를 일으키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못한다.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들에 먼저 나서는 이유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과 우리들의 삶을 지켜 가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가 지금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풀어 놓는 것이다. 생명으로 거듭 온전해지는 과정은 지독한 참회와 반성에서 시작한다.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고 무언가를 행동에 옮기기 전에 부모의 반성과 되돌아봄을 통해 부모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해져야 한다. 부모의 행복없이 아이들의 행복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자연의 심성을 따라 배우며 생명에 대한 경외와 공존의 가치에 대해 논해야 한다.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웰빙을 꿈꾸는 시대, 잘 먹고 많이 먹고 좋은 것만 골라 먹는다고 해서 내가 잘 살 수 있고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겸손하고 감사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생명을 섬길 때 우리 마음속에는 만족과 행복감이 넘쳐흐를 것이다.
니가 먼저 바뀌어 세상이 바뀌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세상 모든 일들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내가 변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치를 안다고 했을 때 사회 전체가 식생활에 대한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2 >는 식생활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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