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올바른 미국의
진짜 암 의료인들의 수난사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록펠로Rockfeller, 멜론Mellon, 카네기Carnegy, 모건Morgan 등 재력이 막강한 미국의 부호들(일루미나티=프리메이슨의 지도급인사들)은 전국의 병원, 의과대학 등 모든 의료 기관에 막대한 자금을 기부해줌으로써 의료 장비 개선, 교수진 개선 등의 의료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따라서 순진한 의료계의 인사들 및 학생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호의의 뒤에는 수천만의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탕 발린 독약’이 숨겨져 있었다. 이를 뒤늦게 알고 양심 있는 의료계 인사들은 자기네가 속았음을 통감해야 했다. 부호들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환자들의 생명마저 대상으로 하여 돈벌이에 열중하는 길을 택했으니 말이다.
재정적으로 착실히 뒷받침한 후 부호들은 수혜자들에게 ‘그 돈이 올바로 쓰이는지 알아야겠으니 이사진에 우리 인사들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고 순진한 의료계 인사들은 자기네가 돈을 올바로 쓰고 있는 마당에 부호들 추천 인사들이 이사진으로 들어오는 걸 막을 이유가 없었다.
결과는 의대, 병원 대 제약 회사, 국립보건원, 국립암센터, FDA, AMA(미 의사협회)등 모든 의료보건기관의 이사회는 부호들의 사람들이 실권을 쥐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부호들은 수술과 방사능 이외의 모든 치료 방법을 화학 약품이 위주인, 별로 효과가 신통치 못하면서도 아주 비싼 제약의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오늘날처럼 성인병 환자들, 특히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병원에 막대한 의료비를 지출하고도 결국은 씁쓸한(5년 내 사망률이 98%을 맞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반면 공인된 현대 병원의 3대 암 치료법인 수술, 키모테라피(화학요법=주사 및 먹는 약), 방사선 치료에 필요한 막대한 돈을 지출할 능력이 없는 서민층 중 대체의학 관련 정보를 가진 일부 환자들은 병원 치료비와 비교가 안 되는 싼 대체의학의 혜택을 받아 대부분이 회생했으니 이런 경우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지 않은가. 돈이 있었다면 병원 의사의 말을 따랐을 것이니 말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핵무기, 우주선이 개발된 지 수십 년, 그러나 암치료 효과는 80년 전과 뭐가 다른가? 바로 인명에는 관심이 없고 돈에만 눈이 먼 부호들의 장난이 그 원인이 아닐까?
그 후 부호들 소유의 미국 대 제약 회사 제품만을 공인한 의료 당국은 그 약들보다 훨씬 효과가 크고 값이 엄청 싼 약초 등 자연산 항암제를 사용해 환자들을 살리는 의사 및 의료 종사자들을 발견하면 엉뚱한 핑계를 대서 가차 없이 살해(밀벵크 존슨, 니미스 박사 등), 투옥(해리 학시 등), 면허 박탈(시몬치니 박사 등)등 못된 짓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기네 약장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주류 언론 역시 부호들의 손에 들어가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비호하는 논조로 일관해 오고 있다.
이렇게 이들의 하는 짓이 너무도 교활해서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FDA 발표 내용이라면 우선 믿고 보는 풍조로 일관해 왔다. 게다가 FDA 등 모든 의료 기관은 그러한 진짜 암 전문가들의 암 약을 어떤 검증도 기피하면서(양심상 그 전문가들의 약이 암에 특효임을 알기에 검증도 안 하면서 특정 항암약을 왜곡, 폄훼한다) ‘엉터리 약’으로 조작, 컴퓨터에 그 의사 이름을 쳐 넣으면 ‘사기꾼’으로 뜨게 해서 국민을 속이고 있을 뿐 아니라 그걸 본 사람들은 FDA의 말을 그대로 믿는 바보들이 사는 세상을 만들었으니 답답하지 않은가.
어느 날 나와 가까이 지내는 분이 몸이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나는 의사 이름을 대며 그 약을 한 번 써보라고 일렀더니 아들을 불러 그 의사이름을 적으라 했다. 아들은 내게서 의사의 이름을 듣더니 스마트폰에 이름을 집어넣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정부 측이 모함하는 거짓 정보가 뜰 텐데…’했고, 즉시 아들에게서 돌아온 말은 역시 “이 의사 사기꾼입니다”였다. 순간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졌다. 짧은 시간에 그 배경 및 내용을 이 부자에게 이해시킬 방도가 없음을 안 나는 속으로 ‘내 말을 믿든 안 믿든 알아서 하시지. 내가 더 이상 어쩌겠소?’ 했다. 그분은 ‘어떻게 사기꾼의 약을 소개할 수 있죠?’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부자만 그럴까? 공부를 좀 했다는 사람치고 미국의 과거 암 전문의 수난사를 모르는 일반인들이라면 100% 똑 같은 반응일 것이다. 그렇게 속아 오면서도 정부의 말이라면 우선 믿고 보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이다. 내 오랜 경험으로는 거짓말 안 하는 정부를 못 봤고, 암 등 성인병에 관한 한 대체의학보다 효과가 좋은 병원 치료법을 아직 못 봤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내 말이 믿기지 않거든 그리핀Edward Griffin 저 『암 없는 세상』을 한 번 읽어들 보시라. 미국에서 수많은 암 전문의들이 어떤 폭압을 당했고, 당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호들의 수많은 대 제약 회사 중 두 개 회사(존슨 앤 존슨, 파이저)에서만 전 세계를 상대로 암 약을 팔아 벌어들이는 액수가 연간 5천억 달러를 넘기고 있으니 대기업치고 이만한 수익을 올리는 회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약 관련 연구는 각 의대에서 해 왔는데 이제는 부호들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대 제약 회사 연구실로 다 넘어갔다. 이렇게해서 오늘날의 대 제약 회사는 연구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 연구, 설계, 데이터 통제권을 쥐었고 어느 의사도 의사협회의 지시 없이는 임상 실습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권한을 주었다. 결국 모든 연구, 검사, 임상 실습은 대제약 회사 자기네가 한다는 뜻이다. 대 제약 회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렇게 미국 정부 보건 의료기관의 권한까지 착실히 거머쥔 것이다.
‘의료계에서 핍박받은 암 치유자’요, ‘암을 고치는 돌팔이 의사’로 알려진 학시Harry Hoxsey(1901~1974)는 어린 나이에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손에 두 여린 손을 꼭 잡혀 오순도순 타이르는 아버지의 말에 다소곳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간 너도 내가 항암 약을 만드는 것을 보아 와서 어떻게 약을 만드는지 잘 알 것이다. 이 약으로 돈이 있는 환자는 있는 대로, 없는 환자는 없는 대로 죽어가는 암 환자들을 살려야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이 약을 시기하는 의료계 고위층 사람들이 나타나 너를 괴롭힐 것이니 조심해라”라고 타이르며 마지막 눈을 감을 감았다.
해리는 아버지를 보내면서 눈물을 훔칠 때 문득 언젠가 아버지가 들려주던 아버지의 젊었을 때 얘기가 생각났다. “옛날 네 증조부님이 수의사이셨다. 어느 날 말이 피부암에 걸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시고 뒷산에서 죽게 하려고 말을 끌고 가 놓아 주었더니 평소에 전혀 안 먹던 풀만 찾아다니며 허기진 듯이 연거푸 뜯어 먹기에 이상하게 생각한 증조부는 그 말을 매일 그곳으로 데려갔고 역시 말은 그 풀만 찾아 계속 뜯어 먹었다.” 수의사 증조부는 문득 그 풀이 항암제임을 눈치 챘다.
그러기를 3주가 지나자 말의 기력은 훨씬 좋아 보였고 악화일로에 있던 암 증세가 차차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1년 만에 암은 완치가 되었다. 증조부는 그때부터 이 풀로 항암제를 만들어 사람에게 시험한 결과 백발백중 암 환자들이 회복되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렇게 해서 당대 최고의 항암제가 탄생했고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가 대를 이어 암 약을 만들어 주변의 환자들을 살려내는 사실을 해리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이때 아버지의 유언이 머릿속에 각인된 해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많은 유산을 늘릴 생각보다는 암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 이상으로 위대한 일은 없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이 아버지가 임종 때 한 예언대로 평생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1924년 해리는 일리노이IIlinois주에 첫 번째 클리닉Clinic(의원)을 열었다. 전 북미주에서 암 특효약 소식을 듣고 환자들이 물밀 듯 몰려오자 학시는 전 미국 17개 주에 단계적으로 암 병원을 설립했으며 마지막으로 개업한 것이 텍사스 달라스 ‘학시클리닉’이었으니 당대 개인 소유 암 센터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FDA등 미국의 의료 당국은 바짝 긴장하면서 지방검찰 보좌관 템플튼Al Templeton을 통해 상식 밖의 갖가지 혐의를 씌워 불과 2년 사이에 학시를 백여 차례나 체포했다. 한편, 17개 주의 연방법원 중 두 개의 법원을 비롯해서, 상원의원, 판사, 의사들까지도 이 치료법을 경험하고 이 약이 암에 크게 효과가 있음을 확신, ‘학시클리닉’의 치료법을 옹호했다.
그러던 중 템플튼 보좌관의 형 마이크가 치명적인 암에 걸렸다. 알은 비밀리에 형을 학시클리닉으로 보냈고 형 역시 이곳에서 완쾌했다. 백여차례나 체포하는 등 학시를 괴롭히던 알은 이제 더는 어쩔 수 없어 검찰보관직을 사직하고 드디어 학시의 변호사로 변신했다.
1939년 어느 날 미국의 유명한 주간지 에스콰이어Esquire 기자 버크 James Wakefield Burke(1904~1989)는 출근하자마자 편집장으로부터 “학시클리닉을 문 닫게 해야 한다는 지시가 있으니 당장 취재하러 떠나라” 명령을 받았다.
현장에 와서 보니 암 환자들 모두가 이 클리닉의 약효에 찬사를 늘어놓으며 희망에 부풀어 있지 않은가.
제임스는 이 클리닉을 문 닫게 하려면 이날 본 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하루 일정의 취재 시간을 장장 6주일이나 늘려 심층 취재에 들어 갔으나 결론은 이 클리닉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느 도시나 하나씩은 꼭 필요한 클리닉임을 알게 된 끝에 드디어 ‘암을 고치는 돌팔이 의사’라는 제목의 긴 르포 기사 원고를 본사에 송고했다.
그러나 이 장문의 기사가 전혀 보도가 되지 않자 제임스는 결국 이 기사를 책으로 발간, 학시클리닉을 전 미국에 알렸고 그 죄(?)로 제임스는 회사에서 쫓겨나야 했다. 사실을 알리는 기사가 힘 있는 자들의 마음에 안 든다고 양심파 기자를 해고하는 오늘날, 한국 주류 언론의 못된 버르장머리야말로 바로 미국에서 배워 간 것이 아닌가.
드디어 AMA(미 의사협회)고위층이 이 약의 제조법을 팔라고 요구했으나 학시는 “모든 환자에게 무료 제공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따라서 협상은 실패했다.
학시는 10여 년 전에 암 특효약 투여로 수많은 암 환자를 소생시켰다가 똑 같은 방법으로 의료 당국에 무참히 당해야 했던 캐나다의 간호사 케이스Rene Caisse(1877~1978)처럼 이제 거대한 적을 만들고 만 것이다.
AMA의 잡지 JAMA(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편집장 피시바인Morris Fishbein이 ‘학시는 돌팔이’라는 기사를 JAMA에 발표하자 이 기사를 본 의사들은 학시에게 ‘20세기 최악의 암 돌팔이 의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어 25년간 AMA, FDA 등 의료 기관은 학시를 수단 방법 안 가리고 괴롭힘으로써 학시는 미국 역사상 의료 당국과 가장 길고 지독한 투쟁을 벌인 투사가 되었다. 불의에 항거하는 남다른 그의 투지력과 많은 유산이 그의 끊임없는 투쟁을 뒷받침했다고 한다.
학시는 국립암연구소에 이 약의 효과 유무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조사비용이 많이 든다” 또는 “임상 기록들이 불완전하다”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핑계로 거부당했다. 돈에 구애받지 않은 학시는 “조사비용 전액을 내가 댈 테니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역시 거부당했다. 조사하면 자기네 거짓말이 들통 날 테니 비용을 대주어도 조사를 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학시가 아니었지만, 정의의 투사로 소문난 학시는 그렇게라도 정부 당국을 조롱하고 싶었던 것이다.
AMA 잡지 편집장 피시바인이 『허스트선데이』지에 ‘피 묻은 돈’이라는 기사로 모함하자 학시는 명예훼손으로 신문사와 피시바인을 고소, 미국 법정에서는 드물게 ‘거물’과 싸워 이긴 첫 케이스를 장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공판으로 패소한 피시바인은 편집장직을 떠나야 했다. 더욱 웃기는 일은 법정에서 학시의 증언에 따라 자신의 검은 색 피부암Melanoma이 학시 클리닉에서 완치되었음을 인정하고 만 쪽팔린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약을 한 번도 조사해 본적이 없는 FDA는 “학시의 약이 가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방사선, 수술, 화학요법만이 암 치료법”이라는 거짓 광고 전단을 만들어 전국 우체국의 벽에 붙여 국민을 속였다.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17개 주 법정 변호사 비용으로 학시의 재정이 더 버티지 못하게 되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연방검찰은 잽싸게 17개 주의 학시클리닉을 자물쇠로 폐쇄해 버렸다. 그 많은 환자들의 발걸음을 병원으로 되돌리는 방법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학시는 옳지 못한 정부를 상대로 한 25년의 법정 투쟁 끝에 손을 들어야 했고 그 후 미국 정부 관할 밖인 이웃 멕시코로 떠나 미국에서 하던 식으로 여러 암 전문 의사들을 거느리고 새로운 학시클리닉을 개업, 수많은 암 환자들을 살리던 중 1974년, 73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나 더는 투쟁이 없는 평화스런 나라로 이주했다.
괴이한 일은, 지금도 멕시코의 학시클리닉이 발송하는 항암제는 똑 같은 이유로 미국에서는 개업이 불가능해서 멕시코에서 암 환자들을 살려내고 있는 거슨 병원Gerson Institute의 암 약과 함께 세관을 통해 미국의 국경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학시클리닉 및 거슨 병원의 암 치료법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많은 미국인 암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멕시코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효과(85% 이상 생존율)에 암의 종류에 상관없이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학시$3,500, 거슨 $12,000)밖에 안 드는 치료비의 매력 때문이다.
아직도 내 귀에는 “우리는 인체의 모든 내부 암이나 외부 피부암을 분명히 치료한다”고 법정에서 검찰을 향해 외치던 학시의 당당하고도 자신이 넘치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김현철지음, 시대의 어둠을 밝힌다,p79~87,서울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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