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스크랩] 강제 털갈이·부리 절단…A4 감옥 속 암탉의 비명

그린테트라 2012. 3. 5. 17:10

강제 털갈이·부리 절단…A4 감옥 속 암탉의 비명
한겨레|
입력 2012.01.27 21:30
|수정 2012.01.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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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0㎝에 세마리씩 날갯짓 못하는 산란계 닭장


하루에 달걀 한 알씩 낳다 2년 뒤 700원짜리 고기로

지금 보고 있는 신문 1개면을 반으로 접어보자. 그리고 다시 반으로 접는다. 알을 낳는 닭 '산란계' 한 마리가 그 안에서 평생을 산다. 하루에 달걀 한 알씩 낳다가 2년도 안 돼 죽는다. 공장식 양계장이 아니라면 20~25년을 살았을 것이다.

국내 최초로 동물복지적 관점에서 닭의 일생을 다룬 농장동물 실태보고서가 나왔다. 사단법인 동물자유연대는 국내 산란계장 6곳, 도계장 1곳과 영국 도계장 1곳 등 8곳을 방문하고 국내외 통계 자료 등을 분석해 '대한민국 산란계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번 보고서는 통계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조만간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 19일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경기도의 한 산란계장을 방문했다. 약 300평(992㎡) 되는 계사 1동에 하이라인 품종의 닭 1만5000마리가 살고 있다.

아시다시피 이 닭들은 모두 암컷이다. 부화장에서 태어난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폐기처분된다. 암평아리라고 행복한 건 아니다. 일주일이 지나면 부리가 잘린다. 보통 전기절단기를 이용해 부리 끝 3분의 1에서 2분의 1을 자른다. 이 과정에서 조직과 신경이 손상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공장식 사육장에선 닭이 부리로 털을 고르거나 바닥을 쪼는 등 본능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없어 다른 닭의 몸을 쪼아 죽이게 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부리자르기가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스웨덴·노르웨이 등에선 부리자르기가 법으로 금지됐다.

닭들의 울음소리가 사육장을 울린다. 거대한 거미가 살고 있는 듯, 닭장과 선풍기, 천장이 거미줄 같은 것에 휘감겨 있다. 닭에서 빠진 깃털이 휘날려 뭉친 것이다. 목이 칼칼하다. 천장에 달린 사료급여기가 마치 공장의 자동크레인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기계가 사료를 쏟아놓자, 닭들이 철창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쪼아먹기 시작한다. 가끔 달걀이 컨베이어벨트로 떨어진다. 달걀은 벨트를 타고 한곳에 모아진다. 농장을 20년째 운영해온 농장주가 말했다. "사람이 할 것은 별로 없어요. 하루에 다섯 번 사료급여기에 사료를 채우고 서너 마리 폐사하는 닭을 수거하는 정도죠."

사육장은 슈퍼마켓의 3단 진열장처럼 생겼고, 닭들은 각 칸에 세 마리씩 들어가 꽥꽥거린다. 한 칸의 크기는 가로 40㎝ 세로 20㎝를 넘지 않아 보인다. 이른바 '배터리 케이지'라고 불리는 공장식 닭장이다. 보고서는 "직접 조사한 농장 중에는 8단 케이지를 설치해 계사 1동에 10만 마리를 키우는 농장도 있었다"며 "국내 산란계의 99%는 이런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된다"고 밝혔다.

농림수산식품부 '가축사육시설 단위면적당 적정 가축사육기준'이 제시한 산란계 한 마리당 적정 사육면적은 0.042㎡다. 적어도 가로 세로 각각 20㎝ 넘는 공간이 주어져야 하지만, 이런 기준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설사 이 기준이 지켜지더라도 닭은 A4용지(0.062㎡)의 3분의 2 크기에서 평생을 산다. 신문 1개면을 반으로 접은 것(0.051㎡)보다도 작은 크기다. 닭이 날개를 펼치려면 최소한 0.065㎡가, 날갯짓을 하려면 0.198㎡가 필요하다.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야생방사로 키운 유기축산 달걀 생산량은 2010년 648t이었다. 그해 전체 생산량(57만7521t)의 0.001%다.

닭이 산란을 시작하고 1년 뒤, 털갈이할 때가 되면 알이 뜸해진다. 털갈이(환우)를 빨리 마치기 위해 '강제 환우'를 시킨다. 5~9일 동안 밥을 굶기고 빛을 차단한다. 닭의 몸무게가 25~30% 빠진다. 면역력이 약해지고 폐사하는 닭이 속출한다. 하지만 자연상태에서 12~16주 걸리는 털갈이가 6~8주 안에 끝나면서 달걀을 빨리 얻을 수 있다. 2008년 농협 가금수급안정위원회가 조사했더니, 국내 농가 97.2%가 강제 환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강제 털갈이가 비인도적이라는 비판 때문에 미국 수의학협회와 채란협회는 대체방법을 연구해 2006년부터 닭을 굶기지 않는 '비절식 유도환우'를 권고하고 있다. 고농도의 아연을 사료에 섞어 먹이거나 칼슘의 함량을 낮추면 자연스럽게 털갈이가 유도된다.

배터리 케이지에서 자란 닭은 면역력이 약해 전염병이 퍼지기 쉽다. 대량발생하는 배설물은 공기 중 암모니아 농도를 증가시켜 폐렴 같은 호흡기장애를 일으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로이드의 분비를 증가시켜 면역기능을 떨어뜨린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2003년, 2006년, 2008년, 2010년 등 2000년대 들어 네 차례나 발생했다. 국립축산과학원이 펴낸 '가축의 사육밀도가 축산경영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2005년)를 보면, 가축 사육밀도를 완화할 경우, 질병 발생률은 소가 4.3%, 돼지 13.5%, 닭이 19% 감소한다.

자연상태의 닭은 매년 알을 20~30개씩 꾸준히 낳으며 20년 이상을 산다. 반면 공장식 산란계는 2년째 산란능력이 퇴화돼 도계장으로 이송된다. 이 농장의 닭들도 한 마리에 700~800원에 유통업자에게 팔렸다. 질긴 고기를 좋아하는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사간다. 농장주가 말했다. "닭한테는 고통스럽죠. 야생방사도 하고 싶지만 건물을 다시 지어야 하는데 힘들죠."

이런 산란계가 대한민국에서 6242만 마리가 산다. 이미 닭들은 일생 동안 500~600개의 알을 낳았다. 그리고 매년 2446만 마리가 도계장에서 숨을 거둔다. 글 남종영 기자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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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엄재남의 하늘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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