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분야 시제품 제작에 활용
입력 : 2007.01.17 23:31 / 수정 : 2007.01.18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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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 로봇의 다리가 부러졌다. 엄마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 금방 새 다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어떻게 집에서 로봇 다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종이 대신 입체를 찍어내는 3차원 프린터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최근 가정용에서 전자제품 생산용까지 다양한 3차원 프린터가 개발되고 있다.
◆입체를 찍어내는 프린터
일단 인터넷에 접속해 장난감회사로부터 로봇다리의 3차원 설계도면을 내려받는다. 그다음 로봇다리를 만들 재료를 선택한 뒤 프린터 버튼을 누른다. 컴퓨터에 연결된 잉크젯 프린터에는 잉크 대신 로봇 다리를 만들 액체 플라스틱이 들어 있다. 프린터는 도면대로 플라스틱을 층층이 쌓아 로봇다리를 찍어낸다.
3차원 프린터 기술은 미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3D시스템즈사의 사장인 찰스 홀이 1984년 최초로 발명했다. 그는 이 기술에 ‘입체 인쇄술(stereolighography)’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프린터는 자외선을 쪼이면 딱딱하게 굳는 고분자 액체를 사용했다. 이후 다양한 3차원 프린터가 개발됐으며 최근에는 컬러를 구현한 제품도 나왔다. 3차원 프린터는 입체를 만들 재료를 층층이 뿌리면서 그 사이사이에 접착제를 넣어준다. 미국의 Z코퍼레이션은 컬러 잉크를 접착제 방울에 추가해 다채로운 색깔을 구현했다.
3차원 프린터는 항공우주·자동차·건축·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제품 제작에 활용되고 있다. 신형 중장비에 맞는 핸들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해보자. 컴퓨터로 설계한 뒤 일단 3차원 프린터로 찍어내 본다. 실제 제품과 달리 프린터로 찍어낸 핸들은 플라스틱 재질이지만 모양과 구조는 똑같다. 따라서 플라스틱 핸들을 신형 중장비에 붙여 성능과 외관의 문제점을 따져보고 고칠 수 있다. 새로운 신발을 만들 때도 3차원 프린터로 모형을 찍어 디자인을 검토하고 있다. 고가의 예술작품 모형도 이렇게 만들어낸다.
- ◆가정 안으로 들어온 공장
그렇지만 현재 산업체에서 사용되고 있는 3차원 프린터는 가격이 2만달러에서부터 비싼 것은 150만달러나 된다. 엄마가 부서진 로봇 다리를 만들려고 사기엔 너무 비싸다. 미국 코넬대의 호드 립슨 박사와 박사과정의 이반 맬런 연구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 9월, 집에서 모든 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다는 뜻의 ‘팹앳홈(Fab@Hom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최근 연구팀은 2400달러(한화 225만원)대의 저렴한 3차원 프린터를 선보였다.
팹앳홈 프로젝트가 개발한 3차원 프린터 ‘패버(fabber)’는 가정에서 쓰는 전자레인지 크기다. 연구팀은 가격을 줄이기 위해 완제품 형태로 판매하지 않고 집에서 조립하도록 했다. 조립 PC가 일반 PC보다 훨씬 저렴한 것과 같은 이치다. 프린터 구동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나 조립·작동 설명서도 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또한 산업용 제품과 달리 개인용 데스크탑 컴퓨터로 구동할 수 있게 해 말 그대로 집에서 입체를 찍어낼 수 있도록 했다.
패버는 실리콘에서부터 회반죽, 고무찰흙, 심지어 초콜릿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을 층층이 쌓아 도면대로 입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제품과 달리 하나의 모형을 만드는 데 여러 가지 재료를 함께 쓸 수도 있다. 연구팀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패버가 실리콘을 층층이 쌓아 전구를 찍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3차원 프린터는 전자제품이나 생체조직을 만드는 데도 이용되고 있다.
2002년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존 캐니 교수는 잉크젯 프린터로 일체형 전자제품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이 프린터에는 잉크 대신 각종 전자제품의 소재가 되는 고분자 물질들이 들어 있다. 액체상태의 고분자 입자를 분사해 층층이 쌓아올리면 원하는 전자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프린터를 이용하면 기존 반도체 제조공정에서처럼 값비싼 재료를 깎아 버리지 않아도 된다. 또한 모든 제품을 한 번에 제작하기 때문에 조립과정이 사라져 생산단가가 크게 낮아진다.
- 미국 코넬대에서 개발한 3차원 프린터.
- ◆리모컨에서 피부까지 찍어내
특히 최근 전기가 흐르는 고분자 물질로 만든 전자부품들이 개발되면서 3차원 프린터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고분자 물질은 바로 잉크 카트리지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디매틱스사는 전자제품용 회로를 찍어낼 수 있는 3차원 프린터를 개발해 시판 중이며 엡손과 모토로라와 같은 대기업들도 이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곧 가동될 8세대 LCD 라인부터 3차원 프린트 공정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부나 혈관도 3차원 프린터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2003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의대 블라디미르 미로노프 박사 연구팀은 잉크 대신 세포가 든 프린터로 혈관과 같은 형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5년에는 미 워싱턴대의 가버 포각 교수가 생분해성 겔에 세포를 뿌려 세포층을 만든 뒤 이들을 쌓아 올려 이식용 피부를 만드는 프린터 기술을 개발했다고 ‘피지컬 리뷰 레터즈’에 발표했다.
3차원 프린터는 미래의 홈쇼핑 형태를 바꿀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TV홈쇼핑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휴대전화기가 있으면 주문배송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면을 내려받는 형태가 될 수 있다. 내려받은 설계도면으로 3차원 프린터에서 휴대전화기를 찍어내면 불과 몇 분 안에 TV에서 광고하던 휴대전화기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된다. 그때가 되면 공장과 가정의 구분이 사라지고, 인터넷이 유통망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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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넬대에서 개발된 3차원 프린터가 실리콘으로 전구를 만들어내는 모습. 코넬대 제공 /조선일보 이영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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