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5 조선일보에 아인슈타인이 1954년에 쓴 신의 편지라는 아래 내용을 실었다.
"내게 ‘신’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표현과 산물일 뿐입니다. 성경은 존경할 만하지만 여전히 원시적인 전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미묘한 해석을 붙여놔도 내게 이런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023&aid=0003414307
미래의 과학 현실을 내다보면서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
생애의 마지막까지 추구한 천재 과학자가 본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와
인간이 뭔가를 바라고 나약함을 보이며 신에 매달리는 종교 속의 모습과 성경을
그렇게 표현했다면 그것은 결코 모순적일 수 없으며 상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과학이나 종교학, 철학이 학문으로서 접근하는 방법을
당연히 다르게 비교 설명할 수 있으나,
인간 삶 자체가 수행이며,
그 수행의 바른길에서는 동일한 맥락에 있으며,
전체를 이끄는 실체는 똑같다.
과학자나 기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팩트를 찾아서
그것을 실제로 수학적이나 논리적으로, 또 역사적 사료들을 근거로
증명해 보여야 하기에, 신이라는 실체에 몸과 마음으로 실제로 다가서기란
거의 힘들 수밖에 없다.
설사 거기에 다가서서 뭔가를 볼 수 있게 되었거나 느낄수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의지(자기 머리)로만 풀어나가려고 하기에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에 대한 본인의 견해는 스티븐 호킹과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하여
이미 설명한 바 있기에 (http://cafe.daum.net/enlightenment-k/dcM5/116)
여기서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여 그가 보는 종교의 경전과 거기에 매달리는
그 시대의 인간 의식 수준과 정도에 대한 표현은 상당히 합당한 것으로 생각해 본다.
사실 종교란, 자연의 이치를 알고 거기에 순응하여
자연에 맡겨놓고 가는 삶을 알게 되면
그것은 인간의 무지와 욕심으로 나온 것임을 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결국 알게 된다면 기존 종교의 믿음과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각자가 가진 종교를 통해 자신과 주변을 도우면서
더 잘 만들어 갈수도 있게 된다.
아인슈타인이 보는 신에 매달리는
그러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은 각자의 공부를 통해 깨달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추구하는 바는
인간 의식의 변화이며, 혁신이고, 창조다.
그게 삼라만상을 성숙, 발전시키는
자연의 이치이고 법이며, 진리다.
자연에서 주어지는 그 깨달음이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잘살기 위해
순간순간 즉시즉시 그때그때 필요한 것이지
성불해라(하느님 되라)가 결코 아니다.
내가 부처님이 되고 하느님이 된다는 것과
내가 거기에 부응하는 본질
(그냥 보통명사로서 부처, 보살화 - 자석화, 즉 자기화와 실용화)을
사는 동안 한 번 가져본다는 것 혹은 흉내낸다는 것이나 닮아보게 되는
축복과 은총, 혹은 가피와의 의미는 하늘 땅 차이다.
공부를 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음에도
그것의 의미를 합리화와 정당화 시켜 보편화, 객관화시킨다는 것은
수행의 바른길과는 전혀 다른 샛길이다.
경전 속의 글의 의미만 따져서
인간이 사는 동안 수행의 깨달음을 통해
부처님, 하느님이 될 수있는 그런 세상이 온다거나
기타 등등을 역설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인간 삶 즉 수행의 깨달음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순간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인간의 영혼으로 올바른 마음씀씀이 속에
순간 부처님 하느님, 즉 신을 닮아볼 수 있는
영광을 가질 수가 있는데 그게 견성성불이며,
그것을 조정 통제하는 실체가 부처님 하느님이시다.
부처님 하느님은 이 세상 어디에도 시공에 상관없이
부지불식간에 나타나신다.
그래서 수행의 기본은 체득이며,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왜냐면 체득이 되어야 비로소
올바른 기도와 중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학문과 아무 상관이 없다.
종교가 학문으로 발달되면 점점 쇠퇴하여 사라질 뿐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부딪치는 대상들에
어떻게 마음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깨달아가게 되는 것이지,
종교나 경전이나 거기서 만들어놓은 규율이나 의식에
충실한 것과는 아무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짧은 한 생애를 사는 동안 몸기계를 관리하고 있는
내가 하고자 하는 바, 얻고자 하는 바, 필요로 한 바를 구하고져 한다면,
지금 순간 무엇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이며,
그것을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것이
인간이 공부해서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그게 추세부응이며,
깨달음은 거기서 나온다.
인간인 이상 거기서 인생성적표를 따는 것,
그게 전부이며,
다음 생의 여행지 티켓이 결정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어서도 오도가도 못하고
여기 산사람들과 같이 머무는 경우가 허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은 자가 자기 갈 곳을 못찾아, 즉 천도가 안되어
산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그것도 지옥이다.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다섯 편 전체를 통털어 줄곧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1편-5편 미리보기와 구입
-아래 도표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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