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스크랩] ◆<必讀>필라델피아의 작은 식당 이야기

그린테트라 2014. 7. 27. 12:35

 

 

 

 

 

 

  비스트로란? 작은 식당

 

필라델피아의 작은 식당 이야기

 

나는 이 책에서

비즈니스뿐 아니라

사랑 이야기도 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 자연, 동물, 공동체,

지역 문화에 대한 사랑,

좋은 음식과 가족농장에 대한 사랑,

이윤 추구하는

국제경제 체제에서 위협받고 있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사랑이다.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아름다운 비즈니스를

어떻게 포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가꾸는 일부터 배려를 통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 창조라는

더 큰 이상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세상을 바꾸는 식당 -

 

저자

주디 윅스

'화이트 독 카페'의 창업자이다.

 

이 카페는

미국 최초로 지역 상품을 이용한 유기농 음식과

인도적으로

길러진 식재료만을 이용한 요리를 내놓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비즈니스를 위한

최고의 집단이 되었으며,

 

10주년이 되던 해에

'미국에서 가장 가볼만한 레스토랑',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으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지역음식에는

음식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지역의 자금흐름을 좋게 만들어

지역경제를 육성하는 것에서부터

지역 농부들이 책임감을 갖고

제품을 생산하도록 거래처를 확보해주며,

 

장거리 수송 때문에

발생하는 배출가스를 줄이고,

몸에 좋은 신선한 식재료를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983년,

필라델피아 샌섬가에

화이트 독 카페가 문을 열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한 이곳은

연간 총 매출액 5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회사가 되어 100여명의 직원이 일하며,

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성장했다.

 

창립 25주년이던 2009년 1월,

윅스는 이 카페를 팔고

지금은

차세대 기업인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선물옵션 대여계좌 매

 

'굿모닝, 뷰티플 비즈니스'

 

이는 주디 윅스가

아침마다 눈을 뜨면

눈길이 바로 가는 침실 벽장에 걸어둔

'화이트 독 카페' 간판에 적힌 문구다.

 

그녀는 이를 보면서

공동체에 필요한 제품을 생산 및 제공하는 일에

창의력, 배려,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기업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비즈니스란

인간관계라고 배웠다.

 

돈은 그저 수단일뿐,

중요한 것은 물건을 매매하는 사람

 

또는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

나아가 지구 전체와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비즈니스란

삶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식이다.

 

 

2000년,

그녀는 지극히 단순한 전제 하에

새로운 경제를 구축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 전제는

환경, 사회,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국제경제는 반드시 지속가능한

지역경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거대기업이나 다국적기업의

지배를 받는 국제경제보다

소기업끼리 알콩달콩 네트워크을 구축해

공동체처럼 자립적으로 해결해가는

인간적인 비즈니스를 뜻한다.

 

"한 손에 꼭 쥐었던 동전 한 닢을

다른 손으로 옮기면

그 동전은 단순한 동전이 아니라,

손의 온기가 묻어 있는 동전이 되지"

  동전 한닢 소중함을 느

 

책은

시골에 사는 열 살 어린 소녀의

요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요새라고 부르는 이유는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영화 속 요새처럼

통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부 펜실베니아 주(州)의 작은 마을

잉고마의 숲속에 자신의 요새를 짓던

이 소녀는

부모님을 따라 자연을 사랑하며

야외활동을 좋아했다.

 

여느 작은 마을과 마찬가지로

잉고마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교외 거주지가 확산되면서

잉고마 또한 교외지역으로 흡수된 것이다.

 

쇼핑센터, 패스트푸드점 등이 들어서면서

마을의 상점들이

대형 쇼핑몰에 하나둘 항복하더니

소녀가 뛰어놀던 숲도

도시계획에 두 손 들고 말았다.

 

1969년 여름,

대학 졸업반 때 소녀는

잉고마 집 뒤 숲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라

남편 딕 헤인은 대학 졸업 후 징병되므로

이를 피하고자

두 사람은 자원봉사단인 '비스타'에 가입해

미국 동쪽지역 봉사를 맡게 되었다.

 

봉사 훈련 중

기혼자는 1년 동안 알래스카의 이누잇 마을

원정 봉사를 할 수 있다기에

바로 자원하여

인구 120명의 알래스카 체포나크로 발령받는다.

 

  소형 조립식주택

 

'못 갈 게 뭐 있어!'

 

비스타 프로젝트에서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취학 전의 어린이와 성인을

일주일에 12시간 가르치는 것이고,

남편 딕은

마을 남자들과 함께 조립식 주택을 짓는 일이었다.

 

무료함 속에서도 얼음낚시로 청어를 잡거나,

뜨거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을 찾았다.

체포나크의 생활경제는

공유, 협동, 절약을 토대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이누잇의 젊은 남성이 주 방위군에 들어가면서

마을의 기존 생활방식과

새로 배운 습관 사이에 마찰이 생기게 되었다.

 

음주, 흡연, 욕설,

큰 소리로 떠드는 문화 등이

이누잇 여성들을 불안하게 만들어가며

점점 서구 문화로 물들어 갔다.

 

윅스 부부가

처음 이곳에 갔을 때만 해도

설상차보다는 개썰매에 의존했는데,

1년 정도 지나자

개썰매를 끄는 집은 단 한 집뿐이었다.

 

고기잡이와 통조림 제조업으로 돈을 벌어

휘발유로 움직이는

신식 설상차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제

체포나크 사람들은 소유물을 축적했고,

서로 경쟁하며 시기하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다가

비스타 자원봉사에 합류한 사람들은

알래스카의 지역 문제에 대해

이누잇 사람들을 지지하며

알래스카 주를 가로지르는

석유 수송관 건설 반대를 외쳤다.

 

이에

대통령 경제기획국 신임국장 도널드 럼즈펠드

자원봉사자를 모두 해고했다.

1970년 7월 말,

두 사람은 체포나크를 떠나 잉고마로 향했다.

1970년 10월,

필라델피아에 3천 달러로 사업을 시작했다.

 

  세상을 바꾸는 식당 -

 

'●프리 피플스 스토어',

 

전쟁에 반대하며

반체제적 가치를 상호에 담았다.

상품을

간신히 진열대 선반에 채워 시작해서는

현금이 들어오면 바로 새 물건으로 채우며

점차 가게를 키워 나갔다.

중고 옷 판매가 사업에 큰 몫을 했다.

자잘한 도난과 전쟁을 벌이던 중,

한번은 목에 칼을 들이대며

가게에서 돈을 강탈하는 사건도 있었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반면

결혼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남편 딕은

그녀를 동업자로 보지 않았고 무시하거나

심지어

재정 문제는 숨기기까지 했다.

딕의 세상에

그녀의 공간은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열등한 등급을 부여받았던

어린 시절의 소프트볼이 떠올랐다.

이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주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softball - pelota de

 

"여자애들은 소프트볼을 할 수 없어"

 

짐을 꾸려 집을 나서 운전하다가

신호를 위반하면서 접촉사고를 냈다.

차는 완전 망가졌다.

길가던 남자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그녀는 막 남편을 떠나 직업을 구해야 할 처지라서

오히려 불평을 퍼부었다.

 

그런데,

이런 행운이 있나.

대학교 근처 샌섬 가의 라 테라스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던 이 남성은

식당에서 종업원을 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1972년,

종업원으로 취직한 이후

레스토랑 인연은 그녀에게 40년이나 이어진다.

펜실베니아 대학 캠퍼스 내의 위치한

라 테라스 블록 전체가

상업용 쇼핑몰 개발지역으로 선정됐다.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한 샌섬 위원회가 발족되어

거주민, 영세업자, 중소기업 사장,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 등이

여기에 동참했다.

 

라 테라스 사장 엘리엇 쿡이 위원회를 이끌었다.

사장 엘리엇은

대학원에 다니느라 보스턴에 있었고,

새로 부임한

총지배인은 식당 경영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재정 상태가 적자라는 소문까지 나돌자

보스턴에서

급히 날라온 사장은 지배인을 해임하고

그녀를 새로운 지배인으로 선임했다.

 

1974년,

졸지에 그녀는 27살의 나이로

50 명의 직원을 거느린 레스토랑의

총지배인이 되었다.

 

  바나나초콜릿머핀 만드

 

●두 번째 사랑을 찾다

 

직업이 안정되어 가자

그녀는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상대는 건축가 닐 슐로서,

그는

샌섬 위원회에서 함께 일한 잘생긴 사람으로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그녀의 가치관과 딱 맞았다.

그래서

한 눈에 반했던 것이다.

 

1978년 노동절, 라 테라스 휴무일에 맞추어

닐의 부모님이 거처하는

필라델피아 북서쪽의 위사히콘 계곡 근처 숲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가졌다.

 

그녀는

레스토랑 사업을 사랑했지만

단순히

칭송받기 위한 도구로서의 직업은 원치 않았다.

또한

운 좋게 인생에서 덤으로 얻은 직업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샌섬 가의

커뮤니티 내에서 그녀는 행복했지만,

전 세계에 고통받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어느 날 작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 기회를 통해 사업과 동시에

사회적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

길을 걷던 중

우연히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 한 장에 시선을 빼앗겼다.

 

전단지에는

엘살바도르의 내란을 조사하고 돌아온

사회운동가들이 제작한

슬라이드 쇼를 보여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엘살바도르에 대한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 논쟁은 알고 있던 터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밀러 부부의 발표회에서

그녀는

미국이 엘살바도르 정부를 지원하고 있으며

엘살바도르 정부군이

수천 명의 무고한 엘살바도르 시민을

살해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4 명의 미국 간호사들을 강간하고 살해해

'암살단'으로

불린다는 말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란으로 피폐해진 엘살바도르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

찰리 클레먼츠 환영회를 개최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전에서 많은 임무를 완수한 그는

베트남전을 부도덕한 행위로 결론짓고

캄보디아 침공 비행 임무를 거부했다.

 

클레먼츠 박사는

평화와 비폭력의 메세지를 전해줄 인물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식당 -

 

●물거품이 된 10년의 헌신

 

지역사회를 위한 투쟁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마을을 지켰다는 안도감에 도취되어

하루하루를 보낼 즈음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엘리엇 사장이 계획을 바꿔

자신이 직접 식당을 운영,

이를 토대로

전국적인 체인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미

옛 친구를 고용해 메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2호점 부지를 물색 중이었다.

레스토랑에 그녀의 자리는 없어졌다.

동업의 관계도 미미했던 것으로 판명났다.

지난 10년 동안

매출을 2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로 상승시켰고,

그때마다

동업자로서 그녀는

임금 인상과 보너스도 포기했었지만

 

동업관계에 대한

합의를 문서화하려는

그녀의 의도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이제 막 시작했던

머핀과 커피 사업을 가져가라고 말했던 것이다.

 

싸우고 싶은 의욕도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그 힘을 새로운 사업에 사용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서고 말았다.

 

한편,

전 남편 딕은

프리 피플스 스토어를 꾸준히 성장시켜

목이 더 좋은 대학 캠퍼스 곁으로 가게를 이사해

상호를

'어번 아웃피터스'로 바꿔달고 영업 중이었다.

라 테라스에서

그녀가 겪은 일을 전해 들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들이

네 이익을 가져가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네 몫은 네가 챙겨.

그게 비즈니스계의 생리야"

 

결국

라 테라스와 이별하고

그녀의 집 1층에

머핀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파는 가게를 열었다.

 

자금은 충분치 않았지만,

이 가게를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레스토랑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화이트 독 카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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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명을 위한 식탁을 주세요'

 

이누잇이 사는 마을로,

필라델피아로,

엘살바도르로,

니카라과로,

리투아니아로,

치아파스로 길고 긴 여정을 겪으면서

쌓은 소중한 경험들을 토대로

결국

그녀는 소외당한 이들과

지역사회를 위한 요새를 만들어 나간다.

 

화이트 독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맛있고 윤리적인 음식을 갈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무언가를 배우는 데 목마른 사람들이기도 했다.

 

결국

'음식, 재미, 사회적 활동'

화이트 독 카페의 좌우명이 되었다.

 

화이트 독 카페 행사에 참여하거나

다양한 문제와 관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래도

화이트 독이 성공적이고 인기 있으며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덕분에

그녀는 사회 문제를 전혀 모르던 손님들이

사회 활동에 참여하도록 이끌 수 있었다.

 

한번은

젊은 전문직 종사자로 구성된 어느 단체에서

자선사업과 자원봉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의 패널 중 한 명으로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에

그녀는 젊은 청중들에게

'좋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자기 일을 잘할 수 있다'

개념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말했다.

 

"먼저

제 조언은 사뭇 다른

내용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굳이 좋은 일을 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자기 일을 잘할 수도 있지요.

 

사실

저는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좋은 일과 이윤을 구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평화롭고 건강한 세상,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좋은 일과 이윤의 조화입니다.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매일

박애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화이트독 카페 - 필라


 

그녀가

사랑하고 열정을 쏟은 곳은

필라델피아의 작은 식당과 마을이다.

하지만

그녀의 열정은 식당 문을 넘어

그리고

마을의 경계를 넘어

여러 사람들에게,

도시에,

국가에 파급되어 나갔다.

 

넘을 때마다 고비가 있었지만

그녀는 용기를 갖고

그 고비에 무릎 굻지 않았다.

 

오히려

무관심한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지역경제와 환경,

인간적인 윤리를 실천하는 요새들을 만들어 갔다.

by/오대석b

                

출처 : 우대받는 세대
글쓴이 : 地坪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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