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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칠(黃漆)나무는 세계 유일무이의 천연자원

그린테트라 2013. 9. 29. 09:50





황칠(黃漆)나무 (Dendropanax morbifera Leu.)

학명은 라틴어로 만병통치약을 지칭하는 인삼나무를 의미하는 말이다.


황칠은 세계에서 딱 한 곳, 한국에서만 나며 그것도 난대림이 펼쳐진 해남 완도 등 서남해안에서 생산된다. 한때 한반도의 황칠나무 중 70%가 자생했다는 제주도는 도민들 대부분이 황칠나무를 잘 몰라 땔감이나 부목용으로 벌채를 해 지금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계곡(서귀포시 상효동의 자생군락지)에만 남아 있다.

황칠은 옻칠처럼 나무의 표면에 흠집을 내고 받아낸 수액을 정제해 만드는 도료이다. 성질이 맑고 투명하여 장식물이 가진 본연의 재질을 살려주면서도 스스로 화려한 황금 빛을 내뿜는다. 그 빛은 매혹적이나 천박하지 않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황칠나무에서 채취하는 황칠액에는 그 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있다.

아름다운 '황금빛을 내는 금빛 수액'으로 천연투명도료로서 매우 귀하게 사용된다.
그 향은 베타큐버빈’이라는 방향성 정유성분인 '안식향'으로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맑게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200도를 견뎌내는 내열성과 내구성, 내습성, 빛깔의 우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외선 흡수도 뛰어나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황칠은 예전엔 도료로서의 가치를 우선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원료 물질로서의 가치도 중요시 되고있다. 또한 항산화성이 뛰어난 생약성분을 가지고 있어 여러가지 치료제로도 한창 개발중이다.


 



황칠나무의 역사

황칠나무는 적어도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 수종이다.

삼국이 정립한 이래, 백제는 활발한 무역을 통하여 인삼과 황칠, 모시저포를 중국과 일본 등지에 수출하였다. (홍사준1972) 따라서 백제에서 산출되는 황칠은 이미 인접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백제 무왕 25년(627), 당고조는 백제 땅에 사신을 보내어 황칠을 채취하게 하였고, 그것을 철갑에 칠하니 모두 황금색으로 빛났다. (책부원구, 외신부 조공조)

당시 당고조는 618년에 일반 백성들이 의복을 적황(赤黃)으로 염색하는 것을 금지 시킨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금빛으로 우러나는 갑옷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위엄과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아들 당태종도 백제가 만든 금칠 갑옷에 다섯 가지 색깔로 칠하여 갑옷을 만들어 입으니, 그 갑옷 또한 햇빛에 빛났다. (신당서, 동이 고려전)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금칠에 대한 중국인의 인상은 아주 깊었다. 당나라 때 두우(枓祐)는 『통전(通典)』에 “황칠나무는 백제의 서남해안과 탐라 즉 제주도에서 자라며, 음력 6월 무렵에 채취하는데 워낙 소량이긴 하지만 기물에 칠하면 금색 광채를 띤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후 ≪당서≫를 비롯한 숱한 기록들이 금칠에 주목하였고,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등 황실과 이 땅에 온 많은 사신들이 황칠을 요청했던 것도 신비로운 금칠나무였기 때문이었다.



백동 장식에 입힌 황칠


금칠은 자금성(태화전, 건녕전, 황제의 용상 , 어탁 등)부터 경복궁까지 사용되었고, 궁궐 이외에도 갑옷과 무기류, 임금의 책상, 공주비녀에 이르기까지 아주 귀하게 이용되었다. 또한 황칠은 귀신을 쫓는다하여 의례에도 썼고, 선비들도 황칠을 지니고 있으면 대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 행랑주머니에 지니고 다닐 정도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황칠나무는 수액(水液)과 수지(樹脂)를 분리하여 수액은 금칠로 이용 하였고, 수지는 안식향(安息香)으로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순조때 유희는 여러 사물을 설명한 《물명고(物名攷)》라는 책에서 황칠나무를 설명하면서 “기름같이 맑은 것은 수안식향(水安息香)으로 삼고, 말려서 덩어리된 것은 건안식향(乾安息香)으로 삼는다”라 하였다.

안식향은 사람 몸을 편하게 하고 여러 종류의 역기(疫氣)를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어 안식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를 향으로 피우면 피로가 풀리고 남성에게는 신장을 강화 시켜주고 여성에게는 생리불순 등을 해소해주며, 갑작스런 심장병이나 어린이 복통, 어린이가 놀랐을 때, 관절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본초강목》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특히 중풍과 치매에 효과적인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황칠나무의 정혈 효과


이러한 효과로 인해 안식향은 많은 약재로서도 사용되었는데 명나라때 주숙은 그의 저서《보제방》에서 안식향으로 만들 수 있는 약재를 무려 100여 가지가 넘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숙종 때에 이미 안식향으로 ‘지보단(至寶丹)’을 만들었는데, 이 약재는 열을 내리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세가지 보약인 온병삼보(溫病三寶): 우황안궁환, 지보단, 자설단)에 들 정도이다.

이 약재는 효과가 현저하고 약품이 귀중하여 ‘지극한 보배(지보 : 至寶)로 불리게 되었는데, 열을 내리고 독을 없애는데 사용되었고 안정제의 효과가 있으며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 들어가 답답한 경우나 어린 아이의 경기, 중풍, 더위 먹은데 효과가 크다 하였다. (진사문(陳師文),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劑局方)》).

이처럼 안식향은 향 뿐만이 아니라 약재로서도 중요했기 때문에 왕실의 건강을 담당하는 전의감이나 백성의 병을 돌보는 혜민서에서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약재였다.

약초연구가 전동명의 치료제로서의 황칠나무



하지만 황칠나무는 이러한 가치 때문에 도리어 수난을 받게 된다. 특히 공물로서 많이 요구되었는지라 지방 관원들은 농민들을 채근하여 구하려 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러한 당시의 현실을 '황칠'이라는 시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茶山詩文集》권4, 詩 黃漆

공물로 지정되어 해마다 실려가고       〔貢苞年年輸匠作〕
징구하는 아전들 농간도 막을 길 없어  〔胥吏徵求奸莫防〕
지방민들 그 나무를 악목이라 이름하고〔土人指樹僞惡木〕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每夜村斧潛來?〕

* 이 시는 당시 명나라의 공물로 중요시 되었던 황칠 때문에 백성의 수난을 적은 것이다.

이처럼 농민들은 공물 수탈을 피하고자 나무를 베어내고 또 있는 곳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제주도와 완도, 보길도 등에 있던 황칠나무는 서서히 잊혀져 갔던 것이다.

고문서에 등장하는 황칠


일제 강점기 때부터 황칠나무에 대해 다시 연구되기 시작했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도료와 염료, 건강식품과 음료, 생의약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물로서 20여건의 특허가 등록을 마친 상태다.
일천여년 동안 내려온 우리 수종 황칠나무가 21세기에 이르러 서서히 그 신비한 모습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황칠 특허 및 임상자료



황칠나무의 발굴

중국의 사서에 백제에서 가져다 썼다는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문헌에 황칠이 등장하지만 정작 우리 땅에서는 100여년 전부터 명맥이 완전하게 단절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칠은 한반도의 서남해지방에서만 자생하는데다가 그 생산량도 미미하기 짝이 없어, 그 희소성으로 인해 엄청난 수탈과 노역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다산 정약용의 시에 씌어 있기를 ‘백성들은 이 황칠나무를 악목(惡木)이라 하여 모두 베어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그 전통 또한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찬란한 황금빛을 내는데다 은은한 안식향을 풍기기 때문에 대대로 귀하게 쓰였으나 워낙 구하기가 힘들고 그 채취나 정제법이 까다로워 100년 전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동안 숨겨졌던 황칠나무가 그 ‘비밀’의 빗장을 풀고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까지에는 황칠에 ‘미친’ 한 농부의 20여 년의 추적과 집념이 있다. 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가 그 주인공이다.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의 황칠나무 발굴이야기

이제 황칠은 정순태씨의 15년여,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노력을 통해 5만여평 3만여 그루의 황칠나무 숲으로 환생하게 되었다. 또한 과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황칠은 도료의 기능만이 아닌 염료, 향료, 신약, 전자파흡수제 등의 미래산업으로서의 가치까지 인정받게 되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순태씨가 기거하는 아침산막은 황칠나무 숲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안식향, 하루내 피워 두는 쑥연기의 향으로 그윽하기 그지 없다. 거기에다 황칠나무 밑에서만 자란다는 ‘뇌원차(腦原茶)’까지 곁들여지니 선계(仙界)가 따로 없다. (2003년 9월 오마이뉴스)


뇌원차 (腦原茶)

중국 문헌에서 나온 차의 일종으로 황칠 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녹차잎으로 만든 차이며 황제만이 마셨다는 차이다.

차의 새순이 주로 진한 갈색을띄며 차의 뿌리와 황칠뿌리가 어우러저 어떤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황칠향도 차나무가 흡수하는것으로 추정하고있다.

현재 완도와 하동 등지에서 녹차나무 사이에 황칠나무를 심어 뇌온차를 가꾸고있다.





육묘장에서 자라고 있는 10년생 황칠나무
아래쪽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식물이 뇌원차나무이다.




 


황칠차

1.나무잎과 가지를 물에 씻고
2.물1리터에 잎과 가지를 30그람넣고 약한 불에 30-40분끓임
3. 끓인 후 냉장보관하며 드시기 바랍니다
4.드시는 것은 뜨겁게도 드시고 차게도 드실 수 있으며 언제든지 양껏드십시오

효능:

1.콜레스테롤 분해, 다이어트, 심장병, 중풍........효과가 탁월합니다
2.요리에 이용 할 수 있으며 황칠닭, 황칠오리 등 요리중 이재료를 첨가 하면 지방분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 위원이셨던 이종석 선생님은, 황칠이 금빛을 띠면서 바탕의 나무 결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여 공예품을 한층 화사하게 치장하는 최상의 도료이며, 황칠을 부채에도 칠 할 수 있는 것은 락카나 옻칠과는 다른 抗破斷性의 장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옛 선비들은 갓끈에 매단 구슬에 황칠을 하면 잡귀를 물리 칠 수 있다고 믿어 이를 애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귀한 우리 고유의 고급도료인 황칠이 거의 200년 가까이 그 맥이 끊기었으나, 丁炳碩黃漆硏究所에서는 황칠 재현을 위한 연구를 활발하게 추진하여 왔다. 그동안 황칠나무의 특성 연구, 황칠 정제, 황칠의 분비 기작, 황칠의 도료적 특성 연구 등을 추진하였고, 황칠 부채나 황칠 목공예품 등을 재현하였으며, 여러 가지 전통황칠공예품의 실용화를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정병석 한국황칠연구소장

또한 구영국(황칠공예 명인 127호)씨는 200년간 끊어진 전통 황칠공예의 맥을 이으려는 장인(匠人)이다. “옻칠은 잘 알면서도 우리의 전통 황칠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그는 경기도 분당에 있는 작업실에서 다양한 소재에 황칠을 시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 사람이 황칠나무 잎만 따도 잡아간다고 했어요.” 당시 일본으로 한국의 황칠이 유출됐으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일본은 이미 황칠의 비밀을 풀었지만 정작 국내에는 확인된 황칠 유물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옻칠이 천년이면 황칠은 만년이라고 했어요.” 보존성이 뛰어난 황칠의 특성상 국내 어딘가에는 유물이 남아 있으리라고 구씨는 확신한다. 박물관 수장고를 뒤져서라도 황칠 유물을 찾는 것이 그의 바람이고 숙제다. 그 숙제를 푸는 날 우리는 빛나는 전통문화 하나를 되찾으리라.

황칠나무를 이용한 공예가 구영국씨


일제는 1930년대부터 한국의 황칠나무 분포와 성분 등을 조사해 자국에 이식하려 했으나 기후가 안맞아 실패한 걸로 알려졌다. 1928년과 1937년에 조선총독부 중안시험소 야스다구니가 <황칠의 정유에 대하여>라는 연구논문 2편을 발표하였는데, 황칠은 상쾌한 향기를 방출하고 쓴맛을 나타낸다고 적혀있다.

황칠나무와 일본 그리고 스텔스







황칠나무의 특성

남부 지방의 해변과 섬 지방에 자라는 늘푸른 넓은 잎 큰 나무로 키가 15m에 이른다. 껍질은 갈라지지 않아 매끄럽고 어린 가지는 초록빛이며 윤기가 난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처음에는 3-5개로 갈라지나 나이가 먹으면 긴 타원형에 톱니가 없는 보통 모양의 잎만 남는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6월에 흰빛으로 띠며 타원형의 열매는 30~40여개씩 공처럼 모여 달리고 10월에 검은 빛으로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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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나무에 대한 전반적인 개황  (산림청의 자료)

황칠나무 일반



황칠나무의 육묘 및 황칠 생산현황


현재 전남도내 각 지자체 산림과 및 임협에서 황칠육묘를 매년 시도하고 있으나 종자채취 수량이 한정 되어있고 싹틔우기가 힘들어 성공사례가 거의 없으며 삽목도 큰 성과가 없어 각 지자체별로 대규모 조림 계획을 가지고 있으나 묘목의 절대부족으로 조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남과 완도가 어느 지역보다 많은 황칠 자생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몇몇 개인들도 황칠의 종묘나 삽목에 성공한사례가 있으며 현재 일정량을 육묘중인 개인도 있다.

황칠나무 재배현황 및 황칠 생산현황



황칠을 이용한 유망사업

황칠나무는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토종 수종으로써 육묘 재배의 어려움이 있으나 여기에서 채취된 황칠은 적용분야가 다양하면서 그 특성이 우수하여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 획기적인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한국 고유 상품을 선보일 수 있는 유망수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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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작업

황칠은 [唐書]를 비롯한 중국 고대의 문헌과 [계림유사][고려도경][동국여지승람] 등 국내 문헌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특수한 도료로서, 칠하면 황금빛이 감도는 매우 특이한 칠이며, ‘백제칠’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지기도 했을 만큼 중국에서도 성가가 높았다.

특히 삼국시대의 문헌에는 갑옷에 칠할 경우 그 빛이 눈부셔 적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다고 기록될 만큼 각광을 받았던 우리나라 고유의 칠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 말기,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그 기술은 철저히 단절되고 말았다.

황칠의 특성은 투명성 도료로서 종이와 같은 유연한 재료에 칠한 경우에도 박락이 되지 않는 항파단성(抗破斷性)을 지녔으며, 다갈색 또는 암흑색의 옻칠과 달리 재료가 가진 본래의 재질감을 드러내면서도 칠빛이 황금색을 뛰는 매우 독특한 성질을 지녔다.

황칠장 보유자


 
 

황칠나무에서 진을 채취                        황칠진을 잘 저어서 황색을 발색시킨다    고운 망으로 잘 걸러서 깨끗하게 한다.

 
 

진을 고운망으로 여러번 거른다.             진을 2번 3번 거른다                              진을 여러번 걸러 칠할 수 있게 된 황칠.

 
 

칠할 바탕을 사포로 곱게 갈고난 뒤, 귀얄로 조금씩 칠을 찍어 얇게 펴서 곱게 바르고, 건조시킨 후 여러번 반복하여 황칠을 한다.



● 관련정보

황칠나무 전문가 및 관련기관과 보고서들

 




황칠묘목 판매...부농 꿈 영근다

황칠나무농장 묘목사진

 



황칠나무 이야기들

황칠 임상례

 

黃漆抽出物의 특허 및 임상자료 요약

출처 : 진선인과 함께 마음의 여유를
글쓴이 : 진선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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