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칠(黃漆)나무 (Dendropanax morbifera Leu.)
학명은 라틴어로 만병통치약을 지칭하는 인삼나무를 의미하는 말이다.
황칠은 세계에서 딱 한 곳, 한국에서만 나며 그것도 난대림이 펼쳐진 해남 완도 등 서남해안에서 생산된다. 한때 한반도의 황칠나무 중 70%가 자생했다는 제주도는 도민들 대부분이 황칠나무를 잘 몰라 땔감이나 부목용으로 벌채를 해 지금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계곡(서귀포시 상효동의 자생군락지)에만 남아 있다.
황칠은 옻칠처럼 나무의 표면에 흠집을 내고 받아낸 수액을 정제해 만드는 도료이다. 성질이 맑고 투명하여 장식물이 가진 본연의 재질을 살려주면서도 스스로 화려한 황금 빛을 내뿜는다. 그 빛은 매혹적이나 천박하지 않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이 황칠나무에서 채취하는 황칠액에는 그 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있다.
아름다운 '황금빛을 내는 금빛 수액'으로 천연투명도료로서 매우 귀하게 사용된다.
그 향은 ‘베타큐버빈’이라는 방향성 정유성분인 '안식향'으로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맑게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200도를 견뎌내는 내열성과 내구성, 내습성, 빛깔의 우수성을 가지고 있으며,자외선 흡수도 뛰어나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황칠은 예전엔 도료로서의 가치를 우선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원료 물질로서의 가치도 중요시 되고있다. 또한 항산화성이 뛰어난 생약성분을 가지고 있어 여러가지 치료제로도 한창 개발중이다.
● 황칠나무의 역사
황칠나무는 적어도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 수종이다.
삼국이 정립한 이래, 백제는 활발한 무역을 통하여 인삼과 황칠, 모시저포를 중국과 일본 등지에 수출하였다. (홍사준1972) 따라서 백제에서 산출되는 황칠은 이미 인접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백제 무왕 25년(627), 당고조는 백제 땅에 사신을 보내어 황칠을 채취하게 하였고, 그것을 철갑에 칠하니 모두 황금색으로 빛났다. (책부원구, 외신부 조공조)
당시 당고조는 618년에 일반 백성들이 의복을 적황(赤黃)으로 염색하는 것을 금지 시킨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금빛으로 우러나는 갑옷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위엄과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아들 당태종도 백제가 만든 금칠 갑옷에 다섯 가지 색깔로 칠하여 갑옷을 만들어 입으니, 그 갑옷 또한 햇빛에 빛났다. (신당서, 동이 고려전)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금칠에 대한 중국인의 인상은 아주 깊었다. 당나라 때 두우(枓祐)는 『통전(通典)』에 “황칠나무는 백제의 서남해안과 탐라 즉 제주도에서 자라며, 음력 6월 무렵에 채취하는데 워낙 소량이긴 하지만 기물에 칠하면 금색 광채를 띤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후 ≪당서≫를 비롯한 숱한 기록들이 금칠에 주목하였고,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등 황실과 이 땅에 온 많은 사신들이 황칠을 요청했던 것도 신비로운 금칠나무였기 때문이었다.
백동 장식에 입힌 황칠
금칠은 자금성(태화전, 건녕전, 황제의 용상 , 어탁 등)부터 경복궁까지 사용되었고, 궁궐 이외에도 갑옷과 무기류, 임금의 책상, 공주비녀에 이르기까지 아주 귀하게 이용되었다. 또한 황칠은 귀신을 쫓는다하여 의례에도 썼고, 선비들도 황칠을 지니고 있으면 대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 행랑주머니에 지니고 다닐 정도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황칠나무는 수액(水液)과 수지(樹脂)를 분리하여 수액은 금칠로 이용 하였고, 수지는 안식향(安息香)으로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순조때 유희는 여러 사물을 설명한 《물명고(物名攷)》라는 책에서 황칠나무를 설명하면서 “기름같이 맑은 것은 수안식향(水安息香)으로 삼고, 말려서 덩어리된 것은 건안식향(乾安息香)으로 삼는다”라 하였다.
안식향은 사람 몸을 편하게 하고 여러 종류의 역기(疫氣)를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어 안식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를 향으로 피우면 피로가 풀리고 남성에게는 신장을 강화 시켜주고 여성에게는 생리불순 등을 해소해주며, 갑작스런 심장병이나 어린이 복통, 어린이가 놀랐을 때, 관절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본초강목》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특히 중풍과 치매에 효과적인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황칠나무의 정혈 효과
황칠나무의 정혈 효과
약용으로서의 가치
1928년과 1937년에 조선총독부 중안시험소 야스다구니가 <황칠의 정유에 대하여>라는 연구논문 2편을 발표하였는데,
황칠은 상쾌한 향기를 방출하고 쓴맛을 나타낸다.
주 성분은 세쓰키테르펜(Sesquiterpene)으로서 물, 검(gum), 알콜, 에스테르 등을 함유하고 있다.
1990년 농진회에서 펴낸 한국의 자생식물(목본류 267p.)에 의하면
황칠 수지액은 거풍습(풍-신경마비, 습-신경통을 제하고) 및 활혈(혈액순환)에 효능이 뛰어나다</SPAN></SPAN></STRONG><SPAN style="FONT-SIZE: 9pt"><SPAN style="FONT-SIZE: 10pt">고 한다.
황칠은 민간에서 위장, 생리불순 등의 약용으로도 쓰이고 있다.
또한 염료분야에서는 황금빛 천연염색에 모기 등 각종 해충을 퇴치하는 독특한 향을 지닌 의류제품을 상품화 시킬 수 있어 염료사업에 밝은 전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황백 전남대 교수(생명과학부)는
“황칠은 진정효과가 뛰어나 향수, 방향성 약품개발과 방부·방음제로 이용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전남 함평의 유모(乳母)사의 공락 스님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최고 오랜 황칠나무 연구자이자 가장 오래 재배해 오신 분으로 알려 졌는데 공락스님께서 황칠을 합죽선 약 60개를 칠해 나누어 주신적이 있었는데 중풍에 쓰러진 사람이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서 합죽선 요청이 쇄도한 경우도 있었다. 이경우는 황칠의 안식향 때문으로 여겨진다.
* 알파-Cubebene : 간질,신경장애,불면증,실신,히스테리,편두통,우울증 치료에 쓰임
* 베타-Elemene : 중앙신경계와 호르몬계를 자극하여 남성 호르몬계와 우울증 치료에 사용
* 베타 -Selinene : 식욕자극제,구토와 설사, 임신중의 구토에 효과
* 알파-Muurolene : 소화기 질환,강장제,발한제 감정완화와 진정제에 쓰임
* Germacrene D : 신경통,얼경불순,두통,혈뇨치료,및 지혈
* 베타-Sitosterol :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시토닐" 현대약품)의 주요성분
- 간세포 보호효과를 갖는 황칠 추출물,분획물 및 이들을 함유한 약학 조성물
- 경 조직 재생 및 증식효과를 가지는 황칠 추출물, 황칠 분획물 및 이를 함유한 약학 조성물 경 조직을 재생하고 현재까지 연구되어 온 것 (염증치유인대 세포증식, 치은 세포 증식)과 달리 조골세포의 증식을 증가 시켜 치료하는 물질.
- 천연 항산화제로 사용되는 a-Tocopherol과 같은 항산화 효과(노화방지)를 나타냄.
- 이시진, 본초강목, 중국 문광 도서
- 갑작스런 가슴아픔(卒然心痛), 어린이 복통(小兒腹痛), 어린이 경기(小兒驚邪), 관절통(歷節風痛)
- 이시진, 본초강목, 중국 문광 도서
이러한 효과로 인해 안식향은 많은 약재로서도 사용되었는데 명나라때 주숙은 그의 저서《보제방》에서 안식향으로 만들 수 있는 약재를 무려 100여 가지가 넘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숙종 때에 이미 안식향으로 ‘지보단(至寶丹)’을 만들었는데, 이 약재는 열을 내리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세가지 보약인 온병삼보(溫病三寶): 우황안궁환, 지보단, 자설단)에 들 정도이다.
이 약재는 효과가 현저하고 약품이 귀중하여 ‘지극한 보배(지보 : 至寶)로 불리게 되었는데, 열을 내리고 독을 없애는데 사용되었고 안정제의 효과가 있으며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 들어가 답답한 경우나 어린 아이의 경기, 중풍, 더위 먹은데 효과가 크다 하였다. (진사문(陳師文),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劑局方)》).
이처럼 안식향은 향 뿐만이 아니라 약재로서도 중요했기 때문에 왕실의 건강을 담당하는 전의감이나 백성의 병을 돌보는 혜민서에서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약재였다.
약초연구가 전동명의 치료제로서의 황칠나무
http://cafe.daum.net/namu8386/4iWP/85
(글/ 약초연구가 전동명 )
혈액순환촉진 관절염 편두통 중풍에 효험
▶ 진통작용, 염좌상, 안식향, 황금색의 천연 도료, 풍습비통, 반신 불수, 혈액순환촉진, 중풍, 편두통, 월경불순, 관절염, 사지마비동통에 효험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v.)는 두릅나무과(오갈피나무과) 황칠나무속으로 동아시아, 말레이 반도, 중앙 및 남아메리카에 약 75종이 분포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1종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 남쪽 및 제주도의 바닷가와 섬의 그늘지고 습한 늘푸른 활엽수림 또는 산비탈의 관목림 속에 자라는 늘 푸른 큰기나무이다. 키는 15미터 가량 자란다. 잎은 표면에 털이 없고 매끈하며 어긋나고 달걀형~타원형으로 잎몸이 전혀 갈라지지 않거나 3~5갈래로 손가락처럼 깊게 갈라지는 것도 있으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오래된 노거목의 잎들은 보통 둥근 형태인데 반해서 새로 나온 잎들이 갈라지는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여름에 가지 끝의 산형꽃차례에 자잘한 황록색 꽃이 모여 핀다.
핵과 열매는 거의 타원형이며 5개의 모서리가 있으며 각 모서리에는 또 세로의 모서리가 3개 있다. 검은색으로 익는다. 개화기는 6~8월이고 결실기는 10월이다. 꽃은 양성화이고 꿀샘이 있으며 꽃자루는 길이 5~10mm이고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끌이 5갈래이며 꽃잎도 5장이다. 수술은 5개이고 씨방은 5실이며, 암술머리는 5갈래이다.
우리나라 황칠나무의 분포도를 보면 제주도, 전남 완도, 대흑산도, 거문도, 외나로도, 전북 어청도, 경남일대 바닷가 등에서 자라고 있다.
황칠나무라는 뜻의 학명은 <나무인삼>이라는 뜻(Dendro-panax Morbifera Nakai)을 가지고 있다.
황칠(黃漆)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황칠나무껍질에 상처를 내면 노란색의 액체가 마치 옻나무의 옻칠처럼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황칠나무를 <노란옻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잎이 마치 오리발을 닮았다고 하여 압각목(鴨脚木) 또는 압각판(鴨脚板), 압장시(鴨掌柴)라고도 부르며, 황금색 닭발을 의미하는 금계지(金鷄趾)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 황금색이 나는 칠을 옛날에 가구에 칠하였는데 번쩍거리는 황금색의 이 도료(塗料)는 귀중한 칠 재료로 사용되어 온 나무이다.
황칠나무의 다른이름은 풍하리(楓荷梨, 편하풍:偏荷楓, 압각목:鴨脚木, 이하풍:梨荷楓, 반하풍:半荷楓: 강서초약), 이풍도(梨楓桃, 목하풍:木荷楓, 오가피:五加皮, 풍기수:?氣樹, 압각판:鴨脚板, 반변풍:半邊楓, 변하풍:邊荷楓, 압장시:鴨掌柴, 백산계골:白山鷄骨, 금계지:金鷄趾: 절강민간상용초약), 수삼(樹參: 중약대사전), 황칠나무, 노란옻나무 등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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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펴낸 <중국본초도록>에서는 황칠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문헌:<광서약용식물명록, 331면>
[백반풍하(白半楓荷)]
기원: 오갈피나무과(두릅나무과;Araliaceae)식물인 변엽수삼(變葉樹參: Dendropanax proteus (Champ.) Benth.)의 뿌리이다.
형태: 소교목이다. 잎은 단엽(單葉)으로 어긋나며 혁질(革質) 또는 지질(紙質)이고 선점(腺點)은 없으며 잎의 형태는 변이가 많아서 분열하지 않는 잎은 타원형(?圓形)이거나 타원상(?圓狀) 피침형(披針形) 내지 선상(線狀) 피침형(披針形)이며, 분열하는 잎은 도삼각형(倒三角形)이고 2∼3갈래로 얕게 갈라지며 양면에는 털이 없고 기출맥(基出脈)은 3개이며 뚜렷하지 않을때도 있다.
화서(花序)는 산형화서(傘形花序)로 단생(單生)하거나 2∼3개가 취생(聚生)하며 꽃잎은 5장이고, 암술대는 합생(合生)하여 주상(柱狀)을 이룬다. 열매는 구형(球形)으로 세로로 된 능선이 없고 직경은 5∼6mm이다.
분포: 산골짜기나 시냇가의 숲속 또는 산비탈 길가에서 자란다. 중국의 화남(華南) 및 호남(湖南), 복건(福建)에 분포한다.
채취 및 제법: 가을과 겨울철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다
효능: 거풍제습(祛風除濕), 서근활혈(舒筋活血).
주치: 풍습비통(風濕痺痛), 반신불수(半身不垂), 염좌상(捻挫傷), 편두통(偏頭痛).
용량: 하루 15∼30g을 물로 달여서 복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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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균씨가 쓴 <한국본초도감>에서는 황칠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풍하리(楓荷梨)]
두릅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v.)의 뿌리와 가지이다.
성미: 맛은 달고 성질은 따뜻하다.
효능: 거풍습(祛風濕), 활혈맥(活血脈)
해설:
① 풍습성으로 인한 반신불수, 사지마비동통에 유효하며,
② 생리불순에는 이 약물 20그램에 물 500ml를 넣고 달여서 복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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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취]
황칠나무의 뿌리 및 줄기를 가을 또는 겨울에 채취한다.
[성미]
<강서초약>: "맛은 달며 성질은 따뜻하다."
[효능]
풍사(風邪)를 몰아내고 습사(濕邪)를 없애며 혈맥을 잘 통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풍습 비통, 반신 불수, 편두통, 월경 불순을 치료한다.
1, <강서초약>: "풍사를 몰아내고 습사를 없애며 월경을 조절하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효능이 있다."
2, <절강민간상용초약>: "풍사를 몰아내고 습사를 없애며 근육과 힘줄을 풀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며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하루 20~40그램을 물로 달여서 복용한다. 또는 술에 담가서 복용한다.
[주의사항]
<강서, 중초약학>: "임신부는 금기이다."
황칠나무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1, 풍습비통(風濕痺痛)
황칠나무뿌리, 구등근(鉤藤根), 각 37.5그램, 우슬초뿌리, 계지(桂枝) 각 12그램, 홍당(紅糖), 미주(迷酒) 등을 섞어 달여서 차처럼 만들어 마신다. 연속 3일 복용하고 2일 중지한다. 이것을 1치료 기간으로 하여 5치료 기간을 계속한다. [강서초약]
2, 진상(陳傷), 풍습성 관절염
황칠나무뿌리, 호장근(虎杖根), 홍총목근(紅?木根: 서향나무의 뿌리), 발려근(??根: 청미래덩굴뿌리) 각 600그램, 목통(木通: 으름덩굴줄기) 300그램을 소주 3600그램에 담가 7일 동안 두면 풍습주(風濕酒)가 된다. 이것을 하루에 한 작은 술잔씩 복용한다. [강서민간상용초약]
3, 편탄(偏?: 사지마비, 중풍)
황칠나무뿌리 20~40그램을 물로 달여 3개월 동안 계속 복용한다. [강서민간상용초약]
4, 편두통
황칠나무 줄기 75그램을 물로 달여서 찌꺼기를 버린 후 계란 한 개를 넣고 끓여서 즙과 계란을 복용한다. [강서초약]
5, 월경 불순
황칠나무 뿌리 19그램을 술로 볶은 후 달여서 1일 1컵씩 빈속에 복용한다. [강서초약]
황칠나무는
황칠나무는 종자로도 번식이 되며 꺽꽂이로도 번식되므로 잘 가꾸기만 하면 용도가 매우 다양한 나무로써 조경수, 공원수, 약용 및 천연도료 등 그 가치가 대단히 뛰어난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라남도 완도 정자리의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u.)는 수령이 400년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황칠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서의 학술적 가치는 물론 황칠나무를 대표하는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효능이 뛰어나고 귀해 주로 왕실이나 황실에서 사용해 왔던 전통도료 황칠과 관련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황칠도료의 우수성에 대해 백제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기록이 있으며, 신들린 나무로 인식해 마을 가까이 위치한 유용자원인데도 보존해 온 역사적 및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하여 2007년 현재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 나무의 서식지는 정확히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 산115-7번지, 전라남도 기념물 제 154호, 수고 15m, 밑동둘레 1.8m, 흉고둘레 북쪽가지 0.9m, 남쪽가지 1.24m, 문화재보호구역 1필지 1256㎡(나무주위 반경 20m)이다.
황칠나무의 향은 안식향으로 향기가 좋아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와 동시에 아름다운 황금빛 천연 투명 도료인 황칠을 많이 심고 가꾸어 옛정신을 되살리고 냄새도 역겹고 인체에 해로운 화학 페인트을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간절히 고대해 본다.
하지만 황칠나무는 이러한 가치 때문에 도리어 수난을 받게 된다. 특히 공물로서 많이 요구되었는지라 지방 관원들은 농민들을 채근하여 구하려 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러한 당시의 현실을 '황칠'이라는 시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茶山詩文集》권4, 詩 黃漆
공물로 지정되어 해마다 실려가고 〔貢苞年年輸匠作〕
징구하는 아전들 농간도 막을 길 없어 〔胥吏徵求奸莫防〕
지방민들 그 나무를 악목이라 이름하고〔土人指樹僞惡木〕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每夜村斧潛來?〕
* 이 시는 당시 명나라의 공물로 중요시 되었던 황칠 때문에 백성의 수난을 적은 것이다.
이처럼 농민들은 공물 수탈을 피하고자 나무를 베어내고 또 있는 곳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제주도와 완도, 보길도 등에 있던 황칠나무는 서서히 잊혀져 갔던 것이다.
고문서에 등장하는 황칠
<고전에 나오는 황칠의 쓰임>
황칠은 가구의 도료로 쓰이는데,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궁중에서 가구, 갑옷, 투구에 쓰였구 지금에 와서는 주로 나무목재류의 칠에 쓰입니다. (찻잔 받침. 탁자. 나무 예술품, 도자기 등 많은 곳에 쓰임니다.)
물명고(物名攷)(순조 때 유희) :
‘기름같이 맑은 것은 수안식향으로 삼고, 말려서 덩어리 된 것은 건 안식향으로 삼는다.’
본초강목(本草綱目) :
‘안식향은 사람을 편하게 하고 여러 종류의 역기를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어, 이를 향으로 피우면 피로가 풀리고 남성에게는 신장을 강화시켜주고 여성에게는 생리불순 등을 해소해주며 갑작스런 심장병이나 어린이 복통, 어린이가 놀랐을 때, 관절통에 효과가 있다’
보제방(普濟方) :
‘치루에 효능이 있다’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濟局方)(진사문) :
‘열을 내리고 독을 없애는데 사용 되며, 안정제의 효과가 있으며,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 들어가 답답한 경우나 어린아이의 경기, 중풍, 더위 먹은 데 효과가 크다.’
의방유취(醫方類聚) :
‘부녀자의 풍혈적체치료, 매번 월경 시에 무릎아래 통증이 있을 때 효과가 있다.’
중국 25史와 영파사지(英坡寺誌). 책부원구(冊府元龜) :
진시황제가 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 가져온 나무가 바로 황칠나무이며 통일 신라 때 해상 왕 장보고의 교역 상품 중 최상품이 황칠액이었다고 전한다.
해동역사(海東繹史) :
‘백제 서남해에 나며 기물에 칠하면 황금색이 되고 휘황한 광채는 눈을 부시게 한다. ‘
외신부 조공조책부원구(外臣部 朝貢朝冊府元龜) :
백제무왕 때, 당 고조는 백제 땅에 사신을 보내어 황칠을 채취하게 하였고, 그것을 철갑에 칠하니 모두 황금색으로 빛났습니다.
신당서(新唐書). 동이고려전(東夷高麗箭) :
당 태종은 백제가 만든 금칠 갑옷에 다섯 가지 색을 칠하여 갑옷을 만들어 입으니, 그 갑옷 또한 햇빛에 빛났다.
통전(通典) :
당나라 때 두우는 ‘황칠나무는 백제의 서남해안과 탐라에서 자라며 음력 6월 무렵에 채취하는데 워낙 소량이긴 하지만 기물에 칠하면 금색 광채를 띤다.’
중국통전(中國通典) :
백제의 서남쪽 바다 세 군데 섬에서 황칠이 나는데 수액을 음력 6월에 채취하여 기물에 칠하면 황금처럼 빛이 난다. 백제로부터 조공으로 황칠 5되 3홉을 거두었다
지봉유설(芝峯類說) :
‘세상에 이보다 더 한 보물이 있겠는가
<고문서에 등장하는 황칠>
우리의 전통 칠은 옻나무 진에서 얻어지는 옻으로 짙은 적갈색을 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지금은 없어져 버린 칠 공예의 한 기법으로 황금빛이 나는 황칠(黃漆)이 있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의 빛을 낼 수 있는 황칠은 바로 황칠나무에서 얻어진다. "황금으로 도금한 것 같다"하여 아예 금칠(金漆)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의 황칠은 중국 쪽에 더 잘 알려졌다.
계림지(鷄林志)라는 고문헌에 "고려 황칠은 섬에서 나고 본래 백제에서 산출된다. 절인(浙人)은 신라칠이라고 부른다"하였으며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는 백제 서남해 바다 속에 3섬이 있고 그곳에 황칠수(黃漆樹)가 있는데 칠이 황금빛과 같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옻칠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를 한결같이 한반도 서남해안에서만 나는 ‘신비의 도료’라고 적고 있다. 삼국 시대부터 귀중한 특산물임을 알 수 있다.
황칠은 백제시대의 당태종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서 금칠을 채취하여 산문갑(山文甲)에 칠하거나 전투용 갑옷과 투구에 칠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도 귀히 대접하였다.
중국 책부원구(冊府元龜),영파사지(英坡寺誌), 등 각종 박물지에는 진시황제가 ‘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서 가져온 나무가 바로 ‘황칠나무’이다 라고 전한다. 중국의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주역(周易)의 서문(序文)에도 황칠판(黃漆板) 위에서 이 책을 명상하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고려도경, 고려사절요, 임원경제십육지, 통전, 지봉유설, 등에는 '세상에 이보다 더한 보물이 있겠느냐?' 하는 구절이 나오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징기즈칸은 황금마차를 타고 황금 투구를 쓰며 황금 기갑부대를 거느렸는데, 이는 백제국에서 나는 것으로 황제가 아니면 쓰지못하며 황제가 쓰는 모든 기물은 이황칠로 칠하였다, 라는 구절이나온다.
우리의 황칠을 직접 구하기 어려웠던 발해는 서기 777년 사신 사도몽을 보내어 일본 황칠을 수입하기도 하였다.
고려에 들어서는 원나라에서 황칠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여러번 있었다.
원종 12년(1271) 왕은 '우리나라가 저축하였던 황칠은 강화도에서 육지로 나올 때 모두 잃어버렸으며 그 산지는 남해 바다의 섬들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역적들이 왕래하는 곳이 되었으니 앞으로 틈을 보아서 가져다가 보내겠다. 우선 가지고 있는 열 항아리를 먼저 보낸다'. 그 역즙(瀝汁)을 만드는 장인은 "황칠이 산출되는 지방에서 징발하여 보내겠다" 하였으며 이어서 충렬왕 2년(1276)과 8년(1282)에는 직접 사신을 파견하여 황칠을 가져다 주었다.
150여년전 다산 정약용의 시에 보면 황칠에 관한시가 나오는데 읽어보면 당시에도 채취하기가 매우 어려웠음을 알수 있다.
궁복산(弓福山) 가득한 황금빛 액 / 맑고 고와 반짝 반짝 빛이 나네 / 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받듯 하네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 /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나니.
조선왕조실록 정조18년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장계에 본도의 지방인 강진·해남·영암 등 세 읍에다 모두 연례적으로 황칠을 바치는 것이 있었고 왕왕 더 징수하는 폐단이 있었다.
<근년 이래로 황칠나무의 산출은 점점 전보다 못한데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더 늘어나고, 관에 바칠 즈음에는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고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날로 더 많아지니 실로 지탱하기 힘든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 근년에 바람의 재해를 입은 후에 큰 나무는 또한 말라 죽은 것이 많고 겨우 어린 나무 약간밖에 남지않았으니 마땅히 심고 가꾸어 국용에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10년동안은 조공을 금하여 으레 바쳐오던 것을 감면하여 크게 키워 많이 수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옛날 상태를 회복하여 예전대로 납부하게 될지라도 법외에 징수하는 폐단은 엄격히 영을세워 일체 엄금해서 백성들의 민폐를 풀어주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황칠은 이와 같이 200여년 전만 하여도 널리 재배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자 백성들이 심기를 꺼려하여 차츰 맥이 끊겨 버렸다. 최근 전통 황칠을 다시 살리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황칠나무에 대해 다시 연구되기 시작했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도료와 염료, 건강식품과 음료, 생의약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물로서 20여건의 특허가 등록을 마친 상태다. 일천여년 동안 내려온 우리 수종 황칠나무가 21세기에 이르러 서서히 그 신비한 모습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황칠 특허 및 임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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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칠나무의 발굴
중국의 사서에 백제에서 가져다 썼다는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문헌에 황칠이 등장하지만 정작 우리 땅에서는 100여년 전부터 명맥이 완전하게 단절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칠은 한반도의 서남해지방에서만 자생하는데다가 그 생산량도 미미하기 짝이 없어, 그 희소성으로 인해 엄청난 수탈과 노역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다산 정약용의 시에 씌어 있기를 ‘백성들은 이 황칠나무를 악목(惡木)이라 하여 모두 베어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그 전통 또한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찬란한 황금빛을 내는데다 은은한 안식향을 풍기기 때문에 대대로 귀하게 쓰였으나 워낙 구하기가 힘들고 그 채취나 정제법이 까다로워 100년 전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동안 숨겨졌던 황칠나무가 그 ‘비밀’의 빗장을 풀고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까지에는 황칠에 ‘미친’ 한 농부의 20여 년의 추적과 집념이 있다. 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가 그 주인공이다.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의 황칠나무 발굴이야기
도료의 황제(黃帝) 황칠 다시 살아나다.
◇황금빛 비색, 탁월한 내열, 내구성… 전자파 완전 흡수, 이용 가능한 곳 무궁무진◇
칭기즈칸 테무진의 갑옷과 천막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데, 이는 ‘황칠’이라는 비기(秘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궁전과 집기류 등 황제의것이 아니고는 사용치 못했으며 불화살로도 뚫을 수 없는 신비의 칠이라고 전한다.’(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백제의 서남쪽 바다 세 군데 섬에서 황칠이 나는데 수액을 6월에 채취하여 기물에 칠하면 황금처럼 빛이 난다’ ‘백제로부터 토공(공납)으로 황칠 5되 3홉을 거두었다.’(중국 통전)
‘ 황칠’(黃漆). 옻칠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를 한결같이 한반도 서남해안에서만 나는 ‘신비의 도료’라고 적고 있다.
중국 25사와 영파사지(英坡寺誌), 책부원구(冊府元龜) 등 각종 역사책들은 진시황제가 ‘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서 가져온 나무가 바로 ‘황칠나무’이며, 통일신라 때 해상왕 장보고의 교역상품 중 최상품이 황칠액이었다고 전한다. 심지어 중국의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주역의 서문에도 ‘황칠판 위에서 이 책을 명상하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황칠나무의 국제학명조차도 덴드로-파낙스(Dendro Panax), 라틴어로 만병통치약을 지칭하는 인삼나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에만 존재했다던 황칠나무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토록 유명했던 황칠을 우리는 왜 모르고 있는가. 중국의 사서(史書)들은 낯설기만 한 황칠나무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게 한다.
◇해남에 ‘황칠나무’ 3천 그루 자생◇
하지만 황칠나무는 이제 전남 해남군 일대와 완도지역에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순금의 비색과 신비한 약효로 ‘사라진 나무’라 칭해졌던 황칠나무가 전남 해남군 서남해 일대에 실존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기 때문. 그것도 한두 그루가 아닌 수만 그루가 자생하고 있으며, 이나무에 대한 양묘사업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1000년 동안 숨겨졌던 황칠나무가 그 ‘비밀’의 빗장을 풀고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까지에는 황칠에 ‘미친’ 한 농부의 20여 년의 추적과 집념이 있다. 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49)가 그 주인공.
▲ 황칠 관련 고문헌을 보여주는 '황칠 박사' 정순태 씨
▲ 황토로 지은 '아침산막'으로 들어가는 길
공학도로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던 그는 지난 80년 한학자인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와서 지은 시(詩)에서 ‘황칠(黃漆)’ 이라는 시를 우연히 발견하며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그대 아니 보았는가. 궁복(장보고의 호)산 가득한 황금빛 수액을. 그빛이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
껍질 벗겨 즙을 받길 옻칠 받듯 하는데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색 없어지니 잘 익은 치자물감 어찌 이와 견주리요.
이 나무의 명성이 천하에 자자해서 박물지에 줄줄이 그 이름 올라 있네…
(중략)
서예가의 경황지(硬黃紙) 이로 하여 더 좋으니 납지(蠟紙), 양각(洋角) 모두 다 무색해서 물러나네.
이후 그는 중국 문헌은 물론 우리의 사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천금목(千金木)이라 하여 그 진은 안식향(安息香)으로 쓴다’ (임원십육지),
‘황칠의 주산지는 전라도 완도’(해동역사)….
문헌을 바탕으로 10년간 틈틈이 서남해안 섬들과 해남 지역을 헤매던 그는 결국 완도 상황봉과 보길도, 진도 첨찰산, 해남군 두륜산 등 전남 도서지역과 해안 일대 19개 지역에서 황칠나무가 자생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지난 90년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가족과 함께 해남 땅으로 내려와 귀농 생활에 들어간 것.
순금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황금빛 비색과 상상을 초월하는 내열성과 내구성, 벌레를 쫓아내고 정신을 맑게 하는 안식향(安息香), 중풍 - 오십견 - 항암제로도 사용되는 약용 성분 등 각종 문헌들에서 밝혀진 황칠의 역사적 효능들은 그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다산의 황칠시에서 ‘아름드리에 겨우 한 잔’이라고 표현했듯, 문헌상의 채취 방법으로는 도저히 경제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각 지역에 흩어진 자생림이 모두 50년생 안팎의 황칠나무인 것을 알고는 크게 낙담했다. 그 수액을 채취한 결과 극소량인 점을 알게 된 것. 동시에 바로 이 점이 황칠나무의 존재를 우리 역사에서 증발시킨 장본인이었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공납으로 해마다 공장에게 옮기는데 관리들 농간을 막을 길이 없다. 지방민이 이 나무를 악목(惡木)이라 여기고서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
다산의 황칠시의 한 부분은 황칠의 희귀함에서 오는 민폐가 얼마나 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 자금성의 용상과 어좌를 비롯한 각종 집기류와 천장, 벽면을 모두 도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황칠액이 필요했겠는가. 병자호란을 거친 후 청나라는 조선의 임금에게까지 황칠 사용을 금지한 뒤, 세계 유일의 황칠 생산지인 전남 해안에 대한 감시와 수탈을 강화한다.
‘수탈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황칠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를 넣어 나무를 말라죽게 하거나 밤에 몰래 도끼로 아예 베어내 버렸다’ (목민심서 ‘산림’편) ‘갑인년 어느날 소금비 내린 뒤로 모조리 말랐다.’ (다산 탐진촌요 제2수)
다산은 황칠나무의 ‘멸종’을 중국 황실의 횡포와 1801년에 내린 소금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다산에서 시작해서, 그에게 절망하고, 다산에서 다시 희망을 얻었습니다.”
정씨는 다산의 시 모음집인 탐진촌요(耽津村謠) 제8수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 지난해 황칠 공납이 없어진 뒤 베어낸 밑둥치에서 새싹이 나고 가지가 뻗었다.’
1803년에 쓰인 이 시가 해남 유배 당시 쓰인 점에 착안한 그는 해남 지역 산지를 샅샅이 훑었다. 그 당시에 다시 싹이 났다면 대단위 군락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지난 95년 그는 해남 모 지역에서 200년 이상 된 3000여 그루의 황칠나무 군락을 발견한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죠. 허리까지 다쳐 한 달 동안 기어다니다시피 하다가, 이제 오늘까지만 하고 집어 치우자 하고 산으로 올라 갔어요.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굴렀는데 깨어나 보니,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수백년생 황칠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거요. '아! 이제 내가 죽었구나, 그토록 만나고자 했더니 저승 가는 길에서야 만나는구나' 하는데 멀리 절에서 저녁공양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는거요. 이게 꿈이 아니라니! 3백년생 황칠나무를 끌어 안고 원없이 울었소."
▲ 정순태씨가 황칠나무 기르기를 포기하기 직전에 발견한 3백년생 황칠나무.
수백년 전에 수액을 채취했던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다.
▲황칠의 영화(榮華)를 꿈꾸며 재배에 나선 정순태씨.
◇인공조림 성공… 상품개발 박차◇
이에 고무된 그는 아침재 산막 인근 2000여 평 비닐하우스 11동에 2만5000그루의 황칠나무 묘목을 심어 5년 만에 완전한 성공을 거뒀다. 자라나는 시기를 앞당김으로써 칠액 채취 시기도 10년생 이상에서 5년생으로 앞당겼다.
시험삼아 황칠액을 칠한 전통 태극선 부채를 700만원에, 가구를 6000만원에 내놓았더니 사겠다는 문의전화가 쇄도했지만 팔지 않았다. 조림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 팔다보면 황칠이 고갈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황칠나무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자 전남도는 자생 실태의 전면 조사에 나서는 한편, 연구진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황칠 연구를 벌였다.
산림청의 이명수 사무관은 “전남도의 최종 보고서에 의하면 200도를 견뎌내는 내열성과 내구성, 내습성, 빛깔의 우수성을 확인했다”며, “이로써 황칠이 래커나 니스, 옻칠 등 기존 도료와는 상대가 안 되는 초특급도료임을 증명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번 조사를 통해 안식향의 성분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황칠 속에 든 ‘베타큐버빈’이라는 방향성 정유성분이 머리를 맑게 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효과를 낸다는 것.
정씨는 이런 연구 성과를 토대로 지난해 6월 ‘파낙스 골드’라는 농업벤처를 설립하고, 황칠을 이용한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황칠 염료, 도료, 향료, 신약, 전자파 흡수제 등 갖가지 종류의 상품이 출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그의 이런 도전과 함께 농협은 이를 전남 지역의 주력상품으로 지정했으며, 서울대 생명공학부 등 국내 굴지의 연구소까지 경제적 효용가치에 대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박사는 “조사 결과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조할 아이템임이 충분한 것으로 판명됐다”며 “이제는 어떻게 경영을 할 것인지의 문제만 남았다”고 단언했다.
“ 미래에는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전투기의 도장재료로 이용될 것입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벤처농업포럼이 주최하는 심포지엄에서 충격적인 발언으로 청중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가 근거로 내놓은 목포해양대학교의 실험 자료는 그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전자파 흡수율에 대한 연구 결과 대부분의 도장제가 전자파를 반사시키거나 통과시킨 반면, 황칠은 전자파를 완전히 흡수해 버린 것.
“스텔스 폭격기의 도장사가 일본인인 걸 아십니까? 일본이 일제시대를거쳐 1970년대까지 황칠을 훔쳐간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황칠의 비밀을 풀었지만, 일본의 황칠나무에서는 수액이 나오지 않으니 어쩌겠습니까.”
정씨는 ‘황제의 나무’ 황칠나무로 ‘산림부국’(山林富國)을 이룰 꿈을 꾸고 있다.
“성씨(姓氏)라는 것이 핏줄에 따라 편을 가르고 학연, 지연 같은 것도 생겨나 사는 것을 제약하니 나는 내 이름을 ‘산마을’로 바꿀 생각이오. 아들은 떡 ’적’ 자를 써서 ‘산적’, 아내는 ‘오는비’ 어떻소? 내 생각이?”
우산(愚山 - 우공이산에서 따 왔을 그의 號) 다우신 말씀인데 오는비 여사께서는 남편 말씀에도 무심하게 콧노래를 부르며 수박을 나른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
<주간동아 제276호> 2001-03-19
이제 황칠은 정순태씨의 15년여,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노력을 통해 5만여평 3만여 그루의 황칠나무 숲으로 환생하게 되었다. 또한 과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황칠은 도료의 기능만이 아닌 염료, 향료, 신약, 전자파흡수제 등의 미래산업으로서의 가치까지 인정받게 되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순태씨가 기거하는 아침산막은 황칠나무 숲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안식향, 하루내 피워 두는 쑥연기의 향으로 그윽하기 그지 없다. 거기에다 황칠나무 밑에서만 자란다는 ‘뇌원차(腦原茶)’까지 곁들여지니 선계(仙界)가 따로 없다. (2003년 9월 오마이뉴스)
뇌원차 (腦原茶)
중국 문헌에서 나온 차의 일종으로 황칠 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녹차잎으로 만든 차이며 황제만이 마셨다는 차이다.
차의 새순이 주로 진한 갈색을띄며 차의 뿌리와 황칠뿌리가 어우러저 어떤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황칠향도 차나무가 흡수하는것으로 추정하고있다.
현재 완도와 하동 등지에서 녹차나무 사이에 황칠나무를 심어 뇌온차를 가꾸고있다.
육묘장에서 자라고 있는 10년생 황칠나무.
아래쪽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식물이 뇌원차나무이다.
황칠차
1.나무잎과 가지를 물에 씻고
2.물1리터에 잎과 가지를 30그람넣고 약한 불에 30-40분끓임
3. 끓인 후 냉장보관하며 드시기 바랍니다
4.드시는 것은 뜨겁게도 드시고 차게도 드실 수 있으며 언제든지 양껏드십시오
효능:
1.콜레스테롤 분해, 다이어트, 심장병, 중풍........효과가 탁월합니다
2.요리에 이용 할 수 있으며 황칠닭, 황칠오리 등 요리중 이재료를 첨가 하면 지방분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 위원이셨던 이종석 선생님은, 황칠이 금빛을 띠면서 바탕의 나무 결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여 공예품을 한층 화사하게 치장하는 최상의 도료이며, 황칠을 부채에도 칠 할 수 있는 것은 락카나 옻칠과는 다른 抗破斷性의 장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옛 선비들은 갓끈에 매단 구슬에 황칠을 하면 잡귀를 물리 칠 수 있다고 믿어 이를 애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귀한 우리 고유의 고급도료인 황칠이 거의 200년 가까이 그 맥이 끊기었으나, 丁炳碩黃漆硏究所에서는 황칠 재현을 위한 연구를 활발하게 추진하여 왔다. 그동안 황칠나무의 특성 연구, 황칠 정제, 황칠의 분비 기작, 황칠의 도료적 특성 연구 등을 추진하였고, 황칠 부채나 황칠 목공예품 등을 재현하였으며, 여러 가지 전통황칠공예품의 실용화를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정병석 한국황칠연구소장
고부가가치 산업 '황칠'에 관심을
정병석 한국황칠연구소장
지난 2002년 황칠과 옻칠에 대한 연구를 위해 광주·전남지방중소기업청 김광수 과장과 함께 일본 와지마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와지마현의 칠공예는 일본 칠공예의 맥을 이을 정도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일본 칠공예의 진면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방문했다.
그곳에서 60세 전후로 보이는 한 장인을 만났는데 이 분은 선친으로부터 칠공예 기술을 전수받아 지금까지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분에게 혹시 황칠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선뜻 잘 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일본에도 황칠나무는 있다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 옮겨갔을 터인데 이렇게까지 실용화되고 있을까, 내심 깜짝 놀라며 한번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또 흔쾌히 보여줬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노란 돌가루를 꺼내어 "이것을 옻칠과 섞어서 사용하면 황칠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나는 속으로 안심하면서 우리의 황칠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니 천연 안식향과 품격높은 황금색을 보면서 "정말 신비롭다. 대단하다"라고 여러번 감탄하는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것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또한 구영국(황칠공예 명인 127호)씨는 200년간 끊어진 전통 황칠공예의 맥을 이으려는 장인(匠人)이다. “옻칠은 잘 알면서도 우리의 전통 황칠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그는 경기도 분당에 있는 작업실에서 다양한 소재에 황칠을 시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 사람이 황칠나무 잎만 따도 잡아간다고 했어요.” 당시 일본으로 한국의 황칠이 유출됐으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일본은 이미 황칠의 비밀을 풀었지만 정작 국내에는 확인된 황칠 유물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옻칠이 천년이면 황칠은 만년이라고 했어요.” 보존성이 뛰어난 황칠의 특성상 국내 어딘가에는 유물이 남아 있으리라고 구씨는 확신한다. 박물관 수장고를 뒤져서라도 황칠 유물을 찾는 것이 그의 바람이고 숙제다. 그 숙제를 푸는 날 우리는 빛나는 전통문화 하나를 되찾으리라.
황칠나무를 이용한 공예가 구영국씨
황칠나무를 이용한 공예가 구영국씨
[서울신문]
‘그대 아니 보았더냐. 궁복(장보고의 호)산 가득한 황금빛 액/ 맑고 고와 반짝 반짝 빛이 나네/
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받듯 하네/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나니/ 잘 익은 치자나무 어찌 이와 견줄소냐‘
정약용의 ‘황칠’이란 시다. 다산이 시를 지을 정도로 칭송한 황칠은 200년전 맥이 끊긴 우리의 전통 칠공예다.
황칠나무 수액에서 난 황금빛 도료를 칠하면 금박을 입힌 듯 은은한 황금색이 나고, 내수·내열·내구성이 강해진다. 좀과 녹이 슬지 않아 몇백년이 지나도 투명한 금빛이 유지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원적외선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안식향이 나오고, 전자파는 흡수한다.
삼국시대부터 쓰였으나, 맥이 끊어진 황칠, 이를 되살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구영국(45)씨. 그는 황칠의 빼어난 화려함에 반해 26년째 변변한 스승과 참고서적도 없이 황칠공예를 연구해온 장인이다.
●황칠나무 수액에서 색을 뽑다
황칠은 황칠나무 껍질에 상처를 입혀 뽑아 낸 수액이다. 처음에는 유백색이던 액이 시간이 지나면 공기 중에서 서서히 황색으로 바뀌는데 이 진을 없애고 정제해 만든 것이 황칠이다.
황칠나무는 거제도, 완도, 보길도, 홍도, 제주도, 전남 고흥과 해남 두륜산 등 남서해안 도서지역에서 자란다.15년 이상 자라야 수액 채취가 가능하고, 채취량은 나무당 평균 8.6g에 지나지 않는다. 아예 황칠액이 나오지 않는 황칠나무도 많아 황칠은 원료 자체를 구하기 매우 힘들다.
황칠공예가 사라진 것은 수액 채취량이 극소량이었던 데다 장인에서 장인으로만 이어지던 비법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황칠은 그 희귀함 때문에 병자호란 이후 조선 왕실에서조차 사용이 금지되고 중국 베이징 자금성의 천장, 벽, 용상 등에 황제의 명예를 높이는 데만 사용됐다. 중국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황칠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를 넣어 나무를 말라죽게 하거나 밤에 몰래 도끼로 아예 베어내 버리기도 했다.(목민심서 ‘산림’편).
중국에 황칠을 갖다 바치기에도 모자라자 조선에서는 치자물에 들기름을 발라 황칠을 대신했다 한다.
●우리 전통 황칠, 일본서 연구되는데…
그는 황칠보다 먼저 나전칠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9년,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정말 사람 손으로 만들었을까 싶을 만큼 번쩍번쩍 빛나는 것을 봤다.“지독히도 화려했던 물건은 나전칠기였죠.”그 아름다움은 한 청년을 평생동안 칠공예에 입문하게 한다.
정계훈, 신강작, 이택영 선생 등 공예의 장인들에게 배우던 시절에는 밤잠을 잊고 전통공예 디자인에만 몰두했다. 선생의 집에서 먹고 자면서 1년 동안 학그림만 그리며 수련했다.
그렇게 나전칠기와 옻칠공예를 하던 구씨는 85년 더 좋은 칠이 없을까 고민하다 전북 김제의 금산사를 찾는다. 노스님은 “백제시대부터 전래된, 사람의 손으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신비의 도료가 있다.”면서 황칠을 소개했다. 구하기 힘들고 돈이 많이 들어 힘들 테지만 한국 칠공예에 족적을 남길 마음이 있다면 도전해 보라고 덧붙였다.
스님이 알려준 황칠은 단박에 그의 맘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황칠을 아는 사람도, 구체적인 기록도 없었다. 혼자서 조약돌, 나무, 종이 등 온갖 물건에 칠해가며 황칠을 연구했다.
그러다 90년 일본 구주공대에 시찰을 갔다가 그곳의 일본인 교수가 황칠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한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 우리나라에서 건너갔는데 한국에서는 맥이 끊긴 전통공예가 일본에서 자세히 연구된 것을 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일본의 연구에 자극받은 그는 해외에 활발하게 우리의 황칠을 알리기 시작한다. 밀라노·네덜란드·벨기에·미국·브라질 등지에서 열린 박람회 등에 황칠(Gold Lacquer) 공예작품을 출품했다.
외국인들은 처음에 금을 입힌 줄 알다가 나무 수액이 황금빛을 내는 것을 알고는 놀라워했다.“금칠이 딱딱하고 답답한 느낌을 내는 데 비해 황칠은 은은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며 보면 볼수록 질리지 않는 빛을 낸다.”는 것이 외국인들의 평. 황칠을 모르는 사람들도 황칠을 보면 한눈에 그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다.
구씨의 작품은 91년 청와대 신축본관 및 영부인 접견실 등에 문갑, 화장대, 이층장 등이 전시됐다. 지난해에는 육군박물관에 작품이 전시되고 감사장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전국 순회 전시회를 준비중이며 ‘한국의 황칠공예’란 책도 발간할 예정이다. 지난 2월에는 일본 칠기계의 사장단이 작업실을 방문,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전통공예가 외면받는 이유는 현대공예와 접목시켜 조화와 발전을 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골프채, 지갑, 벨트 버클, 지팡이, 상, 차기, 만년필 등의 황칠 작품을 만들어 생활에 접목을 시도했다.
그동안은 작품을 거의 팔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작품 판매도 활발히 할 생각이다. 황칠도자기의 가격이 1000만∼1600만원, 황칠합죽선이 400만∼800만원으로 워낙 고가라 대중화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매일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이물질이 떨어지지 않는 깨끗한 상태에서 황칠붓을 잡는다. 수십 수백번씩 목기로 된 찻그릇에 황칠을 하면 수백 수천가지 오묘한 색깔이 난다. 구씨는 “작가가 온힘을 바친 전통공예를 사랑하는 소비가 살아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영국씨는 1978년 서울 문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예계에 입문하여 옻칠 명인 이상호 선생, 동양화의 거장 가향 허영 선생 등을 사사했다.2002년 신미술대전에서 대상을,2003년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에서 특별상을 받았다.2002년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 벨기에 왕국 전통공예, 미국 세계예술페스티벌 등에 초대됐다.
[저작권자 (c) 서울신문사]
”제주 황칠나무가 최고예요”
제주일보 2007-08-30
황실서 쓰던 천연도료...”제주황칠로 10억짜리`작품`제작중”
“제주에 자생하는 황칠나무가 최고입니다.”
국내 유일의 황칠공예장인 구영국씨(47)가 지난 25~28일 제주를 방문해 황칠나무의 자생 실태조사와 표본목을 선발하는 조사를 실시했다.
황칠은 금빛의 천연도료로, 황칠나무에 상처를 내고 추출한 수액이 처음 유백색에서 차츰 황색으로 바뀐 후 진을 없애 정제해 만든다. 황칠은 또 삼국시대부터 장인간에 비법이 전해지다 200년 전 맥이 끊긴 전통 칠공예를 일컫는데, 구씨가 20여 년 연구끝에 복원해 냈다.
그는 이번에 산림청 연구진과 함께 동반조사를 벌였는데(사진`앞쪽) 적정 온도, 습도와 함께 소금기를 함유한 바닷바람을 요구하는 황칠나무의 생장 요건에 제주가 최적이란 사실을 재확인했다.
황칠나무는 세계에서 제주와 거제도, 완도, 보길도, 전남 고흥, 해남 두륜산 등 남서해안 도서지역 등에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년 이상 자라야 수액이 채취되는데 그 양이 나무 당 7g정도이고 아예 안 나오는 것도 많다. “그 중 제주에선 5·6곳에 황칠 채취가 가능한 나무 150여 그루가 자생중인데 수액 채취량이나 품질이 모두 가장 우수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구씨의 이번 제주방문엔 중요한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그가 지난달부터 심혈을 기울여 제작중인 ‘한지한복황칠수의’에 사용할 최고 품질의 황칠을 구하는 것으로 물론 뜻을 이뤘다. 이 작품은 연말께 완성예정인데 그 가치가 무려 10억원에 달한다고 그는 귀띔했다.
황칠은 금속, 피혁, 목재 등 어떤 소재에도 뛰어난 도장기능을 내는데다 좀과 녹이 안 슬고 열에도 강해 금박을 입힌 듯 아름답고 투명한 금빛을 오래 유지한다. 옻칠이 천년이면, 황칠은 만년 간다는 말이 전할 정도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안식향을 내며, 전자파를 흡수한다.
본래 워낙 귀했던 황칠이라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져 왕실에서만 쓰였는데, 이를 근거로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TV역사극들도 왕실세트장을 꾸미는데 그의 황칠작품을 활용했다. 제주에서 촬영돼 곧 방송될 ‘태왕사신기’에도 그의 대형 도자기 작품 4점이 등장한다.
제주에 대한 애착이 강한 구씨는 한미FTA체결로 생명산업에서 위협받고 있는 감귤을 황칠나무가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단연 최고품질의 제주황칠은 수입창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차원에서 전략사업으로 추진하고 연구소 설립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구영국씨는=1978년 나전칠기의 화려함에 이끌려 공예계에 입문 후 장인들을 사사하며 전통공예디자인에 몰두했다. 그러다 1985년, 금산사 노스님에게서 “백제 때부터 전래되던 신비의 도료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을 사로잡힌 그는 구체적 기록도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연구에 매달린 끝에 복원에 성공했다. 1990년 이후 각국 박람회에 황칠공예품을 출품했다. “금칠과 달리 편안하고 질리지 않는 빛”이라고 호평 받았다.
1991년 청와대 신축본관과 영부인 접견실에 문갑, 문장대, 이층장 등을 전시했다. 2002년 신미술대전 대상, 2003년 대한민국전통공예대전 특별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파리국제박람회, 벨기에 왕국전통공예, 미국 세계예술페스티벌 등에 초대됐다. 서울산업대 평생교육원에서 황칠공예를 강의중이다
<ⓒ 제주일보(http://www.jejunews.com) >
일제는 1930년대부터 한국의 황칠나무 분포와 성분 등을 조사해 자국에 이식하려 했으나 기후가 안맞아 실패한 걸로 알려졌다. 1928년과 1937년에 조선총독부 중안시험소 야스다구니가 <황칠의 정유에 대하여>라는 연구논문 2편을 발표하였는데, 황칠은 상쾌한 향기를 방출하고 쓴맛을 나타낸다고 적혀있다.
황칠나무와 일본 그리고 스텔스
파를 완전히 흡수해버리는 일종의 스텔스 원료이자 이를 가공한 도료는 매우 환상적인 금빛색상을 일구어내기에 '신비스런 종'으로 알려진 원료.
'황칠'(黃漆).
옻칠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를 한결같이 한반도 서남해안에서만 나는 '신비의 도료'라고 적고 있다.
중국 25사와 영파사지(英坡寺誌), 책부원구(冊府元龜) 등 각종 역사책들은 진시황제가'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서 가져온 나무가 바로 '황칠나무'이며 통일신라 때 해상왕 장보고의 교역상품 중 최상품이 황칠액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황칠나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자파를 완전히 흡수한다는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임과 동시에 한국에게는 최고의 호기가 될것이다.
지금의 전장은 진화하고 있다. 차츰차츰... 스텔스화된 병기로 육-해-공 전장에 배치 되어질것이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것은 스텔스 기능..그중에서도 단연 스텔스화 시키기위한 원리.. 즉, 스텔스의 원리인것이다.. (현재 스텔스 기술을 완전히 보유한나라는 미국과 일본 두나라 뿐이다. 프랑스와 독일,영국등은 기초적인 스텔스 기술을 보유 했을뿐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 그 답을 일부 얻어 내었다.
황칠이란 나무가 스텔스 효과가 아주 탁월한 완전한 전자파-흡수재이기 때문이다.
스텔스 폭격기의 원조 도장사가 일본인인것을 아는 사람은 다들 아실것이다.
(최초로 스텔스 기술이 나온곳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일본은 1930년대 후반에 군비를 확장하면서 자신들의 취약점인 레이더에 잘 노출되지않는 항공기를 제작하기 위해 가볍고 전파의 흡수능력을 가진 재료의 발굴에 힘을 쏟게 된다. 그 결과 당시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서 자생하는 나무에서 그답을 얻게 된다. 그리고 황칠이란 나무를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져가서 성분분석과 그 효능을 테스트하게 된다. 또, 이 나무를 이용하여 레이더에 잘 걸리지않는 항공기, 이른바 스텔스 항공기를 개발 하기위해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당시의 일본의 공업력으로서는 그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제 일본이 일제시대를 거쳐 1970년대까지 황칠을 훔쳐간 사실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왜? 일본은 '황칠'이란 나무를 그리도 꾸준히 도둑질하였을까?
황칠나무란.. 위에서 밝힌바와 같이 전자파 즉, 모든 전파를 완전히 흡수하는 타고난 전파 흡수재이니 만큼... 그들은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는 항공기를 제작하기 위해 '황칠'이란 재료를 사용하여 항공기의 스텔스도료로 사용하고자 수십년간 암암리에 도둑질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들은 이미 황칠의 비밀을 풀었지만, 그들이 훔쳐간 일본의 황칠나무에서는 더이상의 수액이 나오지 않고있다.. 이는 지질학상으로 한반도의 지질과 화산재로 주로 구성된 일본지질과의 차이가 엄격히 나기때문에 더이상의 수액이 나오지 못하는것이다.
한국에서 자생하는 황칠같은 경우에는 수백년간 계속 수액이 나왔던것과 비교해서 일본의 것이 1세기도 안되어서 수액이 더이상 안나온다는 것은 일본의 지질이 한국의 황칠이 주로 자생하는"전라남도 완도 상황봉"과 "보길도","진도 첨찰산","해남군 두륜산"등 '전남도서지역'과 '해안 일대' 19개 지역의 토양과 지질 특성이 판이하게 차이가 났으므로 일본의 황칠나무는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이제 '종의 운명'을 다하게 된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앞으로 스텔스화된 병기가 육-해-공 전장에서 활약하게될 가까운미래에도 우리는 '황칠'이란 원료를 잘만 활용하면 우리의 기술로 우리 나름대로의 스텔스 기술을 보유하고 활용할 날도 머지않을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종'에서 보는것처럼 '황칠'나무가 고갈되지 않도록 '황칠나무'를 보호하고 장려-재배해야 할것이다.
● 황칠나무의 특성
남부 지방의 해변과 섬 지방에 자라는 늘푸른 넓은 잎 큰 나무로 키가 15m에 이른다. 껍질은 갈라지지 않아 매끄럽고 어린 가지는 초록빛이며 윤기가 난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처음에는 3-5개로 갈라지나 나이가 먹으면 긴 타원형에 톱니가 없는 보통 모양의 잎만 남는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6월에 흰빛으로 띠며 타원형의 열매는 30~40여개씩 공처럼 모여 달리고 10월에 검은 빛으로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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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 명 :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상록교목이다.
# 학 명 : Dendropanax morbifera Lev.
최저기온 2℃이상, 연평균 기온 14℃ 이상의 한반도 남해 도서와 해안지역에서 잘 자라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독특하고 다양한 우리나라 난대림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난대수종(暖帶樹種)이 바로 황칠나무이다.
난대림(暖帶林)이란
연평균기온 14℃ 이상, 1월 평균기온 0℃ 이상, 강수량은 1,300~1,500mm, 북위 35°이남의 남해안과 제주도, 울릉도 지역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온화하고 일교차가 적으며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상록활엽수(늘푸른넓은잎나무)림을 말한다.
완도수목원은 이런 난대림을 대표하는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 후박나무, 감탕나무, 완도호랑가시, 굴거리나무 등 조경 및 식·약용으로서 가치가 높은 상록활엽자생수림이 2,000여ha에 분포하고 있는 식물자원의 보고이다.
<완도수목원>
# 생 육 : 수고 15m에 달하며, 꽃은 6월에 백색으로 피고 열매는 11월에 흑색으로 익는다. 그늘에서 잘 자란다.
황칠은 음력 6월쯤 이 나무의 껍질에 상처를 내어 채취하는데, 매우 적은 양이 나오며 처음에는 우유 빛이나 공기 중에서 산화되어 황색이 된다. 예로부터 그 특유의 황금색과 희소성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주성분은 세쓰키테르펜(Sesquiterpene)으로서 물, 검(gum), 알콜, 에스테르 등을 함유하고 있다. 1990년 농진회에서 펴낸 한국의 자생식물(목본류 267p.)에 의하면 황칠 수지액은 거풍습(풍-신경마비, 습-신경통을 제하고) 및 활혈(혈액순환)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황칠나무는 내한성이 약하고 내음성과 내조성이 강하며 특히 어릴때의 생장이 빠르다. 내공해성과 내병충해성이 크고 이식력이 양호하고 해풍에 잘 견딘다. 내병충성이 크므로 관리상 편하다.
이 나무에는 우리나라 천 여종의 나무에서 오직 자기만 갖고 있는 "수평수지구(水平樹脂溝)"라는 세포가 특징이다. 황칠이 고귀한 만큼이나 나무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함인지 모른다.
황칠나무는 잎의 생김새가 특이하다. 황칠나무의 어린잎은 다섯 갈래로 갈라져 꼭 단풍잎 같다. 좀 더 자란 잎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더 자란 잎은 타원형처럼 한 덩어리다. 나이를 먹으면서 잎이 점점 단순해지는 셈이다. '겨울나무 쉽게 찾기'의 저자 윤주복씨는 "나이 먹으면 점점 더 둥글어지고 단순해지는 점이 꼭 사람 같다"고 했다.
● 황칠나무에 대한 전반적인 개황 (산림청의 자료)
황칠나무 일반
황칠나무 일반
(가) 개요
황칠은 상록 교목인 황칠나무에서 채취되는 우리 나라 고유의 전통수지 도료이다.
황칠공예는 삼국사기, 계림지, 고려사절요, 고려도경, 임원십육지 등 여러 문헌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황칠은 갑옷과 투구에 금과 같은 황금색을 나타내기 위한 도료로 매우 소중하게 사용되었고, 이 칠은 백제지역에서만 난다고 하였다.
이처럼 귀중한 문화유산인 황칠에 대하여는 전통칠 장인도 지식과 정보가 전혀 없고, 황칠공예 장인도 현존하지 않고 있어 사실 그 맥이 끊어진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값싸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인공합성 도료의 개발로 인하여 천연도료(옻칠 및 황칠)의 생산활동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또 이로 인하여 채취 수목자원의 고갈이 촉진된 것으로 여겨진다.
황칠은 대량증식만 가능하다면 많은 양의 황칠을 확보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천연도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분포 및 입지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veille)는 두릅나무과에 난대상록 활엽수로 잎은 호생이며, 길이 10∼20cm로 난형 또는 타원형으로 3∼5열로 갈라지며 꽃은 양성으로 6월에 백색으로 피고 열매는 핵과이며, 타원형으로 10월에 검게 익으며 종자대에 암술대가 붙어 있다.
내한성이 약한 반면, 내음성과 내조성이 강하고 계곡부위의 토심이 깊고 비옥하고 적윤한 곳이 적당하며, 동백나무, 후박나무, 사스레피나무와 함께 혼생한다.
분포지는 전남 완도, 보길도, 대흑산도, 어청도, 제주도 등지이며 자생지의 입지조건을 보면 월평균 최저기온이 2℃ 이상이고 지형은 화산암으로 산록∼산복에 분포하고 있었으며, 표고는 150∼700m에 걸쳐 생육하고 있었다.
1990∼1992 년에 걸쳐 지역별로 조사한 바에 다르면 전남 완도나 보길도 지역은 표고 150∼200m에 많이 분포하고 수령은 20∼30년, 흉고직경은 평균 7.5cm, 정도로 소경목이었다. 반면에 제주도 지역은 표고 400∼600m에 주로 분포하고 수령은 30∼50년, 흉고직경은 10cm로 대체로 타지역에 비하여 경급이 높고 수령이 오래된 것이었다.
특히 제주도 지역에서는 수악계곡보다 서귀포 돈내코계곡이 생육조건이 양호해 종자결식이 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황칠나무의 분포가 많았으며 자생지의 토양 pH는 4.9∼5.9로 약산성이며 수분함량이 16.5∼27.4%로 비교적 습기가 많은 곳에서 생육하였다.
토양성분 중 유기질 함량, 전질소, 양이온 치환용량(C.E.C), 칼슘, 나트륨 등도 제주 지역이 완도나 보길도에 비하여 월등히 높았고, 미량원소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인자에 있어서도 여름철 7∼8월에 제주지역의 강우량이 완도나 보길도 지방에 비하여 많고, 겨울철인 1∼2월의 평균기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생지에 대한 황칠나무의 분포를 보면 먼저 완도지역이 ha당 425본이었으며, 보길도 지역이 350본, 제주지역이 270본으로 이 3곳의 약 100ha에 3만여본의 황칠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황칠나무는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 우두마을에 있는 것으로 수고가 17m이고, 직경이 51cm인 지상 80cm 높이부위에서 Y자형으로 갈라져 직경 23cm, 다른 줄기가 직경 34cm로 수령은 1백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 번식방법
황칠나무의 번식방법은 파종과 삽목에 의한 2가지 방법이 있다.
파종은 10월 하순에 채취한 종자를 바로 파종하든지 아니면 채취한 종자를 건조되지 않도록 습기 있는 모래에 섞어서 노천매장 시킨 후 이듬해 3∼4월에 파종한다. 발아율은 80%이나 과육에는 발아 억제물질이 있으므로 과육을 붙인채 파종하면 발아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삽목에 의한 방법이 있는데, 삽목 시기는 8월중이 적당하며 다른 시기에 삽목한 것보다 발근율이 10∼20% 더 높게 나타났으며, 발근율이 60%정도이었다.
(라) 황칠의 채취
1) 재래식 채취방법
황칠나무 수지액의 분비시기는 5월부터 11월까지이나 채취시기는 옻칠과 마찬가지로 더울때인 7월부터 9월사이이나 대체로 장마철에 채취한 수지액은 수분이 많이 함유되어 다소 질이 떨어지므로 장마철은 피하는 것이 좋다.
수지액의 채취방법은 수간에 칼로 V자나 O자형으로 상처를 내면 유관에서 황색의 액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유백색의 액이 나오나 공기 중에서 서서히 수분을 잃고 황색이 된다.
그리고 채취시기별로 보면 8월 하순부터 9월 중순이 가장 많이 분비되었으며 재래식 채취방법은 V자나 O자형으로는 1회 채취량이 약 2mg/㎠으로 아주 미량이었다.
채취방법에 있어 중요한 것은 수지구에 다소 깊게 내어야 한다는 것이며, 재래식 방법으로는 한 나무당 연간 채취량이 15년생일 경우 0.03g으로 옻칠 7년생일 경우 채취량 150g에 비해 큰 차이를 보였다.
2) 파라코트 처리에 의한 대량 채취방법
황 칠나무 수지액의 채취에 있어 기존의 방법으로는 단위면적당 2mg/㎠밖에 채취할 수 없었으므로 파라코트 처리에 의한 수지액을 대량으로 채취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파라코트 처리의 최적시기는 7월중이며, 분비부위는 수피로 밝혀졌으며, 파라코트 처리에 의한 수지액의 분비는 처리1개월 후부터 반응이 일어나 서서히 황칠수지액이 분비되며 이 현상은 음지에 있는 수목보다는 양지쪽에 있는 수목에 대하여 반응이 더 잘 일어났다.
또 경급별로 경급이 클수록 많이 분비되었으며, 처리회수가 가급적 적을수록 수목에 피해를 덜 주었다. 가장 적절한 처리시기 및 회수는 7월 중에 1회로 밝혀졌으며, 처리방법은 수간둘레의 1/4 박피한 것이 적절하였으며, 재래식 방법에 비해 약 150배의 증수로 15년생 1본당 연간 5g정도의 채취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파라코트 처리시 주의해야 할 것은 한 나무에 대해 처리회수를 많이 한다든지 직경급 5cm이하인 나무에 파라코트를 처리할 경우 나무가 고사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3) 균접종에 의한 방법
파라코트 처리에 의해 재래식 방법보다 다량의 황칠의 채취가 가능하나 유독성 약제의 사용으로 인한 작업의 위험성 및 수목 고사의 우려성 등이 문제시되고 있어 새로운 방법에 의한 황칠의 채취가 요구되고 있다.
최근, 황칠나무수피에 상처를 내고 회색고약병균(Septobasodoum sp)을 접종한 결과 접종구당(면적 12㎠) 평균 2g정도 분비되었으며 가장 많이 분비된 경우는 27g까지 분비되었으며 또한 황칠이 분비되는 동안 임목에 큰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다만 재래식 채취법(2mg/㎠)에 비해 단위면적당 80배 정도 더 많이 분비되나 파라코트 처리법(357mg/㎠)보다 약 절반 정도 적게 분비되었다. 다만 이 방법은 장마철에만 효과가 있는 단점이 있다.
(마) 황칠의 가공법
1) 생칠가공
수피에 칼로 상처로 내고 나서 10일쯤 지나면 분비된 액즙이 서서히 수분을 잃고 황색으로 변할 때 채취하여 그릇에 모은다. 어느 정도로 칠할 수 있는 양이 모아졌을 때 100수매리 망사로 걸러 이물질을 제거한 후 사용하는데 이때 모아둔 그릇에 침전하는 것은 광택도와 투명도가 떨어지는 저질이고 상층액이 양질이다.
2) 알코올·벤젠추출
태풍과 바람으로 상해수지구가 형성되어 몇 십년이고 몇 백년에 걸쳐서 고드름처럼 흘러내려 굳어진 황칠덩어리를 Soxhlet추출기의 원통여과지에 넣고 에틸알코올:벤젠(1:2)혼합액으로 노랑색깔이 다 빠져 나올때까지 추출한다.
(바) 황칠의 도장성능
황칠 수지액은 비중이 0.93이고 점도는 123 cP이며, 저장 안정성이 매우 양호한 천연의 투명 도료로서, 황금색을 띠는 고광택의 도막을 형성하며, 도장 초기에는 상쾌한 향기를 지니나, 도장 후 시간이 경과하여 방향성 물질이 휘산되면 향기는 없어진다. 황칠은 물에는 희석되지 않고 층분리가 일어나나 유기용매에는 희석이 가능하다.
황칠나무에서 곧바로 채취한 황칠 조수지액에는 협잡물이 다량 혼입되어 있는데 황칠의 분리, 정제는 압착법의 경우 수율이 25∼30% 정도이나, 원심분리하면 75∼80% 정도 회수 이용이 가능하다. 분리·정제 작업시 유기용매를 사용해야 할 경우는 황칠 고유 광택의 유지를 위하여는 아세톤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였다.
황칠은 광중합성(photo-induces polymerization) 도료이기 때문에 햇볕에 건조시킬 경우 2시간정도 소요되나, 음지(실내)건조는 24시간 이상, 60∼80℃의 고온건조는 10∼4시간 소요되었다.
황칠도막의 색상은 붉은색(a값)이 14.0, 노랑값(b값)이 28.3인 투명성의 황금색을 나타내는 고광택 도료이며, 도막의 광변색(photo-induced polymerization)은 도막 자체의 변색이라기 보다는 바탕재의 변색에 의해 유발되었으며, 광조사로 인하여 황칠도막 자체의 고유광택이나 색상변화의 징후는 없었다.
황칠나무 수지액의 물리적 성질을 보면 수분함량이 19.5%로 높은 편이었으며, 투명도는 1차 도포시 95%, 2차 도포시 55%로 양호한 편이며, 색상은 황금색에 속했고, 점도는 도장하기에 알맞은 편이었다.
그리고 황칠의 주성분은 세스퀴테르펜이며 유기용매에 대한 수지액의 용해성을 보면 에테르, 아세톤, 알코올-벤젠등 유기용매에 잘 용해되며, 물에는 희석되지 않아 옛날 사람들이 황칠을 보관할 때 물에 넣어 보관하였던 것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 문헌 계림지에 의하면 황칠의 도장, 건조가 곤란하다고 하였으며 도장에 요하는 시간은 칠하기, 건조하기가 모두 하루이면 충분하고 도장회수는 3번 반복해서 칠한다. 그리고 합죽선에 칠할 때는 들깨기름을 먼저 바르고 말린 후에 솔로 칠하고 햇볕에 말린 후에 다시 솔로 칠하며 햇볕에 말리는 일을 3번 반복해서 광택을 내었다. 목제품일 경우 들깨기름을 바르지 않고 황칠을 바로 칠하는데 칠한 후 말리는 일은 합죽선과 마찬가지로 3번 반복하였다.
실제로 황칠의 도장성능을 보면 경도는 수종에 관계없이 보통으로 나타났으며, 부착력은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내 충격성과 내한열성은 양호하나 일반적인 투명 래커에 비해 투명도, 광택도 등이 다소 떨어졌으며 같은 천연도료인 옻칠에 비하여 색상이 뛰어나고 작업성도 좋으나 도막의 경도나 내화학성 등은 다소 떨어진다.
한편, 황칠도막은 80℃에서 30분 경과하면 건조도막의 연화(軟化)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열안정성이 매우 약한 도료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사) 황칠의 용도
황칠은 그 채취량이 극소량이기 때문에 소량의 황칠을 사용하여 고부가가치를 지닌 제품을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서 몇 가지 이용 가능한 용도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황칠은 황금빛 찬란한 천연도료로써 목공예품을 화려하게 보이게 하기 때문에 고품격의 목재용 화장도료로 최적격이며, 특히 향기가 좋기 때문에 안방가구나, 합죽선, 목침, 병풍 등에 칠하여 한국 고유의 칠기 제품으로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황칠도막은 열에 대한 안정성이 매우 약하므로 생활가구 중 열이 있는 물체를 올려놓게 되는 식탁이나 탁자의 상판, 천판 등으로서는 사용이 곤란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한편, 황칠은 금속공예 중 은공예품의 내외벽에 칠하면 은빛이 황금색으로 되기 때문에 은공예품에 금박을 넣은 것 같이 보여 은공예품의 가치를 더 한층 높이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 황칠나무의 육묘 및 황칠 생산현황
현재 전남도내 각 지자체 산림과 및 임협에서 황칠육묘를 매년 시도하고 있으나 종자채취 수량이 한정 되어있고 싹틔우기가 힘들어 성공사례가 거의 없으며 삽목도 큰 성과가 없어 각 지자체별로 대규모 조림 계획을 가지고 있으나 묘목의 절대부족으로 조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남과 완도가 어느 지역보다 많은 황칠 자생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몇몇 개인들도 황칠의 종묘나 삽목에 성공한사례가 있으며 현재 일정량을 육묘중인 개인도 있다.
황칠나무 재배현황 및 황칠 생산현황
황칠의 종자채취는 9월에서 10월 사이에 80프로 이상 익은 종자를 따서 냉암소에 보관하며 이듬해에 땅에 묻어두었다가 4월경에 무균상토에 파종하며 삽목은 2년생 가지를 5cm정도로 잘라 마르지않게 하여 소독한 강모래로 모판을 만들어 삽목. 시기는 5월에서 장마전까지나 하는 사람에따라 차이가있음. 그동안 여러 농업 기관에서 파종이나 삽목을 시도하였으나 거의 실패하였고 현재 해남지역에서 몇몇 전문가들이 성공하여 흔히 묘목을 구할수있음.
구입가격은 실생 2년생은 3000원~5000원정도이며 5년생이상은 10000원에서 50000원까지 상태에따라 다양함.
황칠나무 재배지
황칠(20년생이상)재배지
해남 송지면 갈산리 20여그루 (밭에심어 종자채취중)
해남 화산면 관동리 30 그루 (갈산리와 같은시기에 심은 것으로 추정됨)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 50그루 (가장오래된 재배지이나 밀 밀식으로 인해 종자가 맺지않으며 황칠도 나지않음.)
10년생 이상
해남 마산면 상등리 50그루 (밭에심음. 황칠이 약간보임)
해남 송지면 일대 30여그루 (밭둑에 몇 그루씩 심음)
3년생 이하 육묘
해남 삼산면 신리 15000여그루(3년생 종묘)
해남 마산면 상등리 20000여그루(4~5년생종묘)
해남 화산면 마명리 1500그루 (2년생)
기타 100그루 (2~5년생)
지역별 추정 생산량:
현재 자생지에서 황칠 채취량은 년간 최대 10리터~20리터가량 (해남지역 5리터~10리터, 완도지역10리터~15리터)으로 추정하며 개별채취하여 개인판매 중인 상태다. (필름통기준으로 1통에 30만원~50만원에 거래됨)
현재 해남지역에 자생하는 황칠나무는 100년생이상으로 1000여그루 이상있으나 황칠이 나오는 나무는 5%도 되지않는다.
(여기에 생물학적 방법으로 50%이상 채취 가능한 기술이 있음)
생산 가능제품
부채 (1리터 당 약 100여점 황칠가능)
삼단장 (1리터당 3~5점 )
은수저 세트 (1리터당 500여점 )
향수 (안식향 발산으로 기계, 전자적 스트레스 해소)
침구
생약 (항산화성이 특히우수 (산림청시험)하여 효과가 기대됨)
기타 전자파 흡수 도료로 이용전망.
● 황칠을 이용한 유망사업
황칠나무는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토종 수종으로써 육묘 재배의 어려움이 있으나 여기에서 채취된 황칠은 적용분야가 다양하면서 그 특성이 우수하여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 획기적인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한국 고유 상품을 선보일 수 있는 유망수종이다.
더보기
첫째, 도료분야에서의 황칠은 투명한 황금색을 자아내면서 목재는 물론 금속에 강한 접착력을 지니면서 내열성 및 방습성이 뛰어나 지금까지 도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옻칠에 비교되지 않은 상품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염료분야에서는 황금빛 천연염색에 모기 등 각종 해충을 퇴치하는 독특한 향을 지닌 의류제품을 상품화시킬 수 있어 염료사업에 밝은 전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 밖에 황칠 주류 및 음료, 황칠에서 내뿜는 안식향을 이용한 향수, 생약성분 이용한 신약원료, 신육묘법을 통한 묘목분양 및 전자파 흡수 기능을 전자제품에 적용하는 방법 등 황칠을 이용한 사업분야는 다양하다.
또한 주성분은 세쓰키테르펜(Sesquiterpene)으로서 물, 검(gum), 알콜, 에스테르 등을 함유하고 있다. 1990년 농진회에서 펴낸 한국의 자생식물(목본류 267p.)에 의하면 황칠 수지액은 거풍습(풍-신경마비, 습-신경통을 제하고) 및 활혈(혈액순환)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1. 도료사업
황금빛의 투명하고 향기로운 효능이 있는 황칠은 목재나 금속재료 등에 강력한 접착력을 지니고 있어 전통적으로 탁월한 천연 도료로서 각광받아오고 있다.
2. 향료사업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안식향이 함유되어 있어 각종의 액세서리나 소가구, 고급 화장품 등에 활용 가능하다.
3. 염료사업
안식향을 발산하며 전자파 흡수 기능까지 있어 염료분야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수요가 예상 된다.
4. 전기·전자 분야
유해 전자파를 흡수하는 황칠의 특성으로 전기와 전자산업 등에서 많은 수요가 예상 된다.
5. 묘목사업
황칠나무는 황칠관련 제품 생산을 위한 황칠원료로서의 수요 뿐만 아나라 사시사철 천연안식향을 발산하는 관상수로서도 매력적인 수종이다. 황칠나무는 한국 토종으로써 희소성을 갖는 고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특수 수종이다. 황칠나무는 내한성이 약하고 내음성과 내조성이 강하며 특히 어릴때의 생장이 빠르다. 내공해성과 내병충해성이 크고 이식력이 양호하고 해풍에 잘 견딘다. 내병충성이 크므로 관리상 편하다.
6. 주류 및 음료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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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칠작업
황칠은 [唐書]를 비롯한 중국 고대의 문헌과 [계림유사][고려도경][동국여지승람] 등 국내 문헌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특수한 도료로서, 칠하면 황금빛이 감도는 매우 특이한 칠이며, ‘백제칠’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지기도 했을 만큼 중국에서도 성가가 높았다.
특히 삼국시대의 문헌에는 갑옷에 칠할 경우 그 빛이 눈부셔 적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다고 기록될 만큼 각광을 받았던 우리나라 고유의 칠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 말기,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그 기술은 철저히 단절되고 말았다.
황칠의 특성은 투명성 도료로서 종이와 같은 유연한 재료에 칠한 경우에도 박락이 되지 않는 항파단성(抗破斷性)을 지녔으며, 다갈색 또는 암흑색의 옻칠과 달리 재료가 가진 본래의 재질감을 드러내면서도 칠빛이 황금색을 뛰는 매우 독특한 성질을 지녔다.
황칠장 보유자
황칠장 보유자
홍동화(洪東和)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2호 (2002.4.23)
충남 평택에서 출생한 홍동화는 1964년에 목제 조각을 가르치던 학원과 도자가마 등의 견학을 통해서 공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68년 형의 권유로 옻칠공예가 백선원을 만나 칠공예분야에 입문하였다. 10년간의 사사를 통해서 옻칠과 관련된 전 공정을 집중적으로 배웠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1990년까지 여러 가지 특수한 기법을 배우고 자문받았다.
1980년부터 잊혀진 고유의 전통칠인 황칠에 관심을 가져, 문헌과 관련학자, 황칠수의 자생지인 남해연안의 도서를 수 차례 답사한 끝에 황칠수를 발견하였을 뿐 아니라, 그 수액을 채취하고 정제하여 목재와 종이, 가죽, 금속 등 각종 재료에 적용하는 데 필요한 전 과정을 반복실험을 통하여 고대의 황칠 기법을 재현하였다.
황칠나무에서 진을 채취 황칠진을 잘 저어서 황색을 발색시킨다 고운 망으로 잘 걸러서 깨끗하게 한다.
진을 고운망으로 여러번 거른다. 진을 2번 3번 거른다 진을 여러번 걸러 칠할 수 있게 된 황칠.
칠할 바탕을 사포로 곱게 갈고난 뒤, 귀얄로 조금씩 칠을 찍어 얇게 펴서 곱게 바르고, 건조시킨 후 여러번 반복하여 황칠을 한다.
● 관련정보
황칠나무 전문가 및 관련기관과 보고서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NICS Online 작물정보센터 황칠나무편
http://crop.nics.go.kr/main.asp?m=10&s1=155&s2=638
전문가
나천수 : 산림청 임업연구원 ☎ 02-961-2651,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2동 20
오찬진 : 전라남도 산림환경연구소 ☎ 061-336-6300
정순태 : ☎ 061-535-1181, 534-6841
김선곤 : (전남농업기술원) 061-330-2684, 061-336-4976,
soung@chonnam.rda.go.kr 전남나주시 산포면 산제리 206-7
관련 기관
산림청 임업연구원 http://www.kfri.go.kr/
전라남도 산림환경연구소
연구보고서
전라남도 1996. 고유 농수산품목 세계화 대상품목의 연구조사 (황칠나무편)
전라남도 산림환경연구소 1999.
황칠나무 우량개체 선발 증식 및 자원화 방안. 1999년 시험연구보고서 제26호
저온 및 온탕침지가 황칠나무 종자의 발아에 미치는 영향 1998. 한국자원학회지 11호 1권
수목학 1993. 향문사
임업연구원 임업기술정보 http://www.kfri.go.kr/
제 4편 임산물 가공 이용
제 5장 단기임산소득 특용수
황칠나무에 관한 연구논문들
[황칠나무와 황칠의 해부학적 특성과 화학적 특성]
1994년 과학기술처 특정연구사업중 국책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됨
시행처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연구자 : 임기표 . 김윤수 , 정우양 박사
연구내용: 황칠의 물리특성과 성분분석
[황칠나무 수액(樹液)의 도료(塗料)적 성질과 도막의 성능(性能)]
시행처 : 임업연구원 임산공학부
연구자 : 공영토 연인섭 박사
연구내용 : 황칠의 내구성 채도 명도의 과학적 분석
[황칠나무의 분포 및 황칠의 성분분석에 관한연구]
한국 생물공학회지 제10권제4호 발표논문
시행처 : 광주 광역시 교육과학 연구원 .호카이도 대학교 .동신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전남대학교 생물학과
연구자 : 정병석 (연구관) 조종수 .(농학박사) 표병식(교수) 황백(교수)
[전통 황칠 도료 개발에 관한 연구] 전통황칠 도료의 주성분 분석
1994년 과학기술처 주관 국책연구 개발사업
시행처 : 전남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공학과
연구자 : 홍동화 정우향 임기표 (농학박사)
[황칠나무의 칠액(液) 분필(分泌) 촉진(促進)]
시행처 : 경상대학교 농과대학 산림과학부 (1998년)
연구자 : 김세현 정남철 나천수 김삼식 (농학. 이학박사)
연구내용: 황칠나무의 황칠 증산에 관한 연구
[일본황칠나무의 계통 유전학적 유연관계] 기초과학연구지원
시행처 :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물학과
연구자 : 한상현 정용환 고미희 오유성 고석찬 김문홍 오문유
[황칠나무의 경정배양에 의한 기내번식]
시행처 : 순천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한약 자원과
연구자 : 최성규 윤경원
연구내용: 황칠나무의 대량번식에 효과적 방법모색
[황칠나무 수피 추출물 및 삼출액의 화학적 특성과 도료용 오일 특성]
시행처 :과학기술처 특정과제 연구개발사업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연구자 : 정우양 임기표
연구내용:황칠추출액의 화학특성과 타 도료와의 비교 분석
[황칠나무의 천연(天然)집단(集團)과 유전(遺傳)변이(變異)]
시행처 : 수원 임업연구원
연구자 : 김세현 이석우 김영중
연구내용: 황칠나무의 유전적 상관관계 규명
[황칠나무잎의 면역 활성 증진기능 탐색] 암에대한 저항력연구
시행처 :농림부 농림기술 지원센터
연구자 :강원대학교 바이오 산업공학부 전남대 생물학과 임업연구원
이서호 오지택 박영식 황백 김재현 이형용
연구목적: 황칠나무잎의 인간암에 대한 대항력 실험 연구
[천연도료의 개발동향]
시행처 :서울대학교 생물자원 공학부 접착 및 바이오 복합재료 연구실
연구자 : 김현중 이병후 (서울대학교 교수)
연구목적:무공해 친환경적 도료의 개발을 중심으로
- 잊혀져 가는 것들(황칠), 방영일자: 2003년 10월 25일(전체 8분 28초)
- 한국의 미(황칠을 찾아서), 방영일자: 1992년 9월 13일(60분)
- 특선 MBC 다큐멘터리(황칠, 그 천년의 신비) 방영일자:1999년 7월 28일(44분 56초)
- 테마기획 정보뱅크(황칠) 방영일자:1999년 4월 14일(10분 10초)
황칠묘목 판매...부농 꿈 영근다
황칠묘목 판매...부농 꿈 영근다
입력 : 2001.03.12
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마을을 내려다 보는 옥녀봉. 해남읍에서 8㎞쯤 떨어진 이곳 계곡안 평평한 지대엔 나지막한 산막 한채와 비닐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다. 푸근하게 피어 오르는 연기를 보며 찾아간 이곳에는 어른 키를 웃도는 줄기에 푸른 색 잎이 시들지 않은 황칠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산막의 주인은 정순태(52)씨. 황칠로 부를 일구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시작입니다. 올 여름에 3년생 50만그루를 희망자에게 분양할 계획입니다. 전남과 경남지역 서남해안 지역에 사는 250여명이 신청해놓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300 여년만에 명맥을 되살린 황칠인만큼 첫 분양가가 형성되지 않았다.
정씨는 그러나 “일반묘목의 10배 이상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올 분양 예정가는 수십억원대”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100만그루를 분양할 예정. 대상자는 물론 선정돼 있다. 묘목 판매만으로도 엄청난 부를 일굴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작 그의 관심은 황칠을 이용한 부가상품 개발. 그는 지난해 황칠의 상품화 가능성에 뜻을 함께 한 사람들과 자본금 10억원으로 회사 ㈜파낙스 골드를 설립했고, 박사연구원 5명으로 구성된 회사부설 황칠연구소(소장 한종수)를 한밭대학교(옛 대전산업대)에 세웠다.
황칠의 가능성은 우선 희귀성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황실 가구를 칠했던 것이 바로 황칠. 우리나라가 중국황실에 보냈던 교역품이었다. 중국은 생산량이 적고 정제기술이 떨어져 상품화 하지 못하고, 일본에는 아예 수종이 없는 실정. 연평균 14℃이하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만 자라는 특수종이라는 것. 중국의 최고급층을 겨냥해 황칠을 한 ‘황실가구’시장을 크게 공략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황칠엔 전자기파를 흡수하는 물질이 있는 것으로 판명돼 휴대폰 등 각종 전기전자 장치에 부착하는 등 이용도가 무진하다는 것. 또 심신을 치유하는 기능을 하는 ‘꿈의 향수’ 안식향이 황칠에서 나오기 때문에 황칠염을 한 의류염색, 신약개발 등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의 대표를 맡은 정씨는 “황칠수액을 채취해 정제하는 도료제 공정기술을 특허 출원해 놓았다”며 “올 하반기 그동안 연구해온 각종 개발품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마케팅을 맡을 사무실도 설치했다.
황칠의 채취량은 하루 평균 50 정도. 수령 10년부터 채취가 가능하다. 옻칠은 채취후 나무가 죽지만 황칠은 100년 이상 채취할 수 있다.
정씨는 “야산의 박토에서도 퇴비를 하지 않고 기를 수 있는 수종”이라며 “황칠의 상품화 가능성을 예견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재배하면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장흥태생인 그는 황칠을 찾아 연구하다 지난 90년 황칠이 자생한 해남에 정착했다.
황칠나무농장 묘목사진
● 황칠나무 이야기들
황칠 임상례
안녕하세요..
카페 쥔장이구여. 노인복지시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치매, 중풍을 치료해 보고자 이 일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어르신들의 남은 삶이 밝고 건강하게 또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라는 작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작부터 저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루 종일 함께 지내다가도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지를 까마득하게 잃어버리시곤 누군데 아는척이야... 의야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울 어르신들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과 아이처럼 해 맑은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던 어르신들의 밝은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모두 함께 치매, 중풍으로 고생하시는 어르신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드리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치료를 해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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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운영자 (-나뭇꾼-) 입니다
저는 해남 조경수 생산자 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우리고유 수종중에서 세계에 유일무이한 황칠을 보급코자 이카페 주인장과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 해남 조경수 생산자 협회 에서는 중풍과 치매로 고생하시는 분들게 옛날부터 전해오는 한방 치료의 일종인 황칠나무 수액을 채취하여 무상으로 보급 하고 있습니다.
황칠 나무는 두릅나무과의 인삼나무속이며 피를 맑게 하는 정혈 작용과 거풍습(중풍 치매)에 특효를 보인다고 중국의 각종 서적에 전해 오고 있습니다.
각종 중국의 박물지에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고 중풍든 자를 돌아 오게 한다</SPAN></STRONG><SPAN style="FONT-SIZE: 9pt">고 기록 되어 있으며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세상에 이보다 더한 보물이 있겠느냐? 고 했을 만큼 훌륭한 우리나라 고유의 보물 이었으나 근래 200여년간 전멸되어 민간 에도 그맥이 끊겨 졌으나 몇몇 훌륭한 연구자들과 관계기관의 노력으로 근래들어 그맥을 잇고 드디어 황칠 3리터를 모았을 만큼 실적을 거두 었습니다.
우리 나라 전역의 공식적 생산량은 일년에 1리터를 넘지 못하니 얼마나 귀중한지 짐작 할수 있을 것입니다. 황칠나무 한그루 (약50년생) 에서 일년 채취량이 10그램을 넘지 못하며 그나마 나오지 않는 황칠나무가 훨씬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간 민간에 보급되지 못하고 오직 황제만이 사용할수 있었던것같습니다.
옛날에는 황제 들만이 사용하였다고 각종 문헌에 나와 있습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지봉유설.통지 ,임원십육지등)우리나라 생산량 전량을 중국에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전해옵니다. 우리나라는 임금의 나라로서 황칠을 사용했던 옛기록을 찿을수 없습니다. 오직 중국의 각종 박물지와 궁중 의서에 적혀내릴뿐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시에 보면 관리들의 공출이 심하여 백성들이 악목이라 여기고 밤중에 몰래 베어 버렸다는 기록이 나올만큼 조선 시대의 국가의 중요한 공출 품목이었습니다.
지금은 돌아 가신 고금도에 할아버지 한분은 산속 깊은 곳에 자생한 황칠나무에서 황칠을 채취하여 중풍든 사람들을 고쳐 주었으며 함평 유모사의 공락 스님은 수십여 명을 치료해 주신적도 있었습니다. (2000~2001년)
저희가 이번에 황칠을 보급 키로 결정한 것은 예로 부터 남부 서해안에서 거풍습(치매 중풍)의 치료에 사용되온 황칠의 임상례를 확보 하기 위해서 이며 어떠한 금품의 대가도 요구 하지 않습니다. 단지 결과를 기록하여 보고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황칠을 사용하여 나을 수 있는 확률은 단언할순 없으나
중풍의 경우 현저한 상태 호전 또는 완치가 되는것같습니다
저희가 보급한 마스크 속에는 황칠을 원액 그대로 발라 두었습니다. 이 마스크를 착용하시고 가능한 운동량을 크게 하시어 몸속깊숙히 황칠향이 스며들도록 하십시오 .가능한 장시간 착용하시어 피속의 노폐물과 찌꺼기가 용해 되도록 호흡을 깊게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가능한 하루 종일 착용하는것이 좋으나 한시간에 30분만 착용하여도 좋습니다
착용한 모든 분들은 착용즉시 머릿속이 맑아지고 개운해 지는 것을 느끼실수 있을것입니다.
황칠은 장기간의 복용이나 오랫동안의 노력끝에 결과를 얻어 내는것이아니고 단시간 (1일-한달) 정도의 마스크 착용으로 완치 또는 현저한 상태 호전이 됩니다
이황칠은 복용하면 몸에 쓰나, 이보다 더한 보물이 세상에 어디 있겟느냐 하는 구절이 이수광의 지봉유설 중 19책 복용편에 나옵니다. 황칠은 향을 맡는것이지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완치 후에도 한달에 한번 정도의 마스크 착용이 필요합니다 만약 완치 가 되지 않으신 분들은 오랫동안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황칠은 요즈음 각광받는 원예치료(아로마) 의 일종으로 이해 하시면 됩니다. 보호자 또는 환자 본인은 황칠 마스크의 착용시간과 완치 또는 상태호전 등을 기록하여 알려주십시오. 착용한 모든 분들게 신의 가호가 함께할 것입니다. 더많은 분들께 보급하기 위하여 치료사례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까페에 가입 하시는 모든 요양원, 환자 또는 보호자 분들께 황칠을 무상으로 보급하여 드립니다
보관시에는 반드시 비닐봉지등 밀폐용기에 보관 바랍니다
이미 오래전 옛날부터 남부서해안 에서는 황칠로 많은 중풍 치매 환자들이 치료 되었습니다
이마스크에는 황칠나무의 천연 추출물 이외에 어떠한 첨가물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부디 치료에 임하시는 분들께서는 반드시 나을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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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마스크에 황칠 천연액을 작은 꺼즈에 묻혀 바깥쪽 꺼즈의 사이에 넣었으며 사진에 보이는 노란 색은 황칠이 스며든 것입니다. 거즈가 얼굴쪽을 향하게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보관시에는 외부 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비닐 포장재에 넣은 채로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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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터 한분씩 시작을 해보았습니다. 치매증세로 거부하시는 분을 달래며 산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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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漆抽出物의 특허 및 임상자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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