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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석빙고(石氷庫)

그린테트라 2013. 2. 26. 17:32

 

한국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석빙고(石氷庫)

아치구조 빙실… 요철 둬 냉기 오래 보관

바깥 온도 영향 없는 천연적 지형에 설치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것을 골라 보라면 석빙고를 들고 싶다. 석빙고는 냉장고 역할을 하는 인공적인 구조물이다. 현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냉장고는 얼음이나 냉기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계장치이지만 빙고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겨울에 채집해 두었던 얼음을 봄, 여름, 가을까지 녹지 않게 효과적으로 보관하는 냉동 창고이다. 사실 얼음을 보관하는 시설은 돌로 만든 석빙고만이 아니라 목재로 만든 목빙고도 있었다. 그러나 목빙고는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없고 구전으로만 전해오므로 여기서는 석빙고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1.석빙고의 유래

석빙고의 유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노례왕(24~57년)때 이미 얼음창고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도 지증왕 6년(505년)에 얼음을 보관토록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다.


2.석빙고의 특징

석빙고의 규모는 대부분 30평 이상, 적은 경우에도 10평이 넘었다. 석빙고에 저장하는 얼음의 두께는 12cm이상이 되어야만 했다.

빙고의 바닥은 흙다짐이나 흙다짐 위에 넓은 돌을 깔아 놓았고 바닥을 경사지게 만들어 얼음이 녹아서 생긴 물이 자연 배수되게 했다. 빙고 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빙실 천장을 아치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형식은 전체를 아치로 만든 구름다리나 성문들과는 달리 일정 간격으로 세우고 이를 구조재로 해 그 사이를 석재로 쌓거나 판석을 얹었다. 석재는 화강석으로 규적은 대체로 0.5톤 정도. 석빙고 건축 때 철물과 회를 많이 사용했는데 철물은 석재와 석재 사이가 서로 분리되지 않도록 삽입했다. 회를 많이 사용한 것은 봉토 조성 때 진흙과 함께 혼합해 외부에서 물이나 습기가 침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용도였다. 천장에는 빙실 규모에 따라 환기구멍을 만들었다. 환기공은 봉토 밖으로 나오게 해 그 위에 환기공보다 큰 개석을 얹어 빗물이나 직사광선이 들어가지 않게 했다.


3.석빙고의 우수성

석빙고는 열 전달율이 높은 화강암으로 내부를 만들고, 외기가 쉽사리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위하여 열 전달율이 낮은 진흙과 석회등으로 지붕을 덮어 단열을 시키고, 잔디를 식재하여 태양열 복사로 인하여 지표가 뜨거워지지 않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입구에는 벽을 설치하여 안으로 유입된 더운공기가 석빙고 상부쪽으로 대류시켰고, 유입된 공기가 대류하면서 실내의 차가운 공기와 부딪친 다음 석빙고 내의 얼음에 닿도록 하여, 더운공기때문에 얼음이 빨리 녹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얼음이 전혀 안녹는건 아니다. 얼음이 녹으면 그 녹은 물은 빨리 석빙고에서 빼내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석빙고 바닥에는 경사진 배수로가 나 있다.

즉 외부에 있는 얼음이 내부의 얼음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얼음이 녹으면서 빼았아가는 기화열을 이용한것이다.

석빙고는 기체대류, 열전달율, 태양열복사 등을 이용한 상당히 과학적인 시설물입니다.

4. 석빙고의 원리

보통 땅에 있는 돌은 겨울철에도 섭씨 10~15。를 유지하지만, 석빙고의 돌벽은 0~5。C 까지 내려간다. 이는 겨울철 경주지역의 공기흐름을 이용,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입구를 내고 최대한 바람이 골고루 퍼지게 해 냉각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특히 출입문쪽에 설치된 돌벽은 바람을 모으는 "바람받이" 기능을 담당하며, 석빙고 표면에서 돌출된 통풍구의 윗부분은 태양열에 쉽게 가열되는 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통풍구까지 올라온 공기가 온도 상승과 함께 쉽게 빠져나간다. 이밖에 진흙 지붕 위에 잔디를 심어 태양의 복사열을 차단한 점, 바닥 한 가운데에 배수로를 내 얼음에서 녹은 물이 즉각 빠져나가게 한 점 등도 석빙고의 과학적 냉각기법으로 보인다.


5. 과학으로 풀려지는 석빙고

겨울에 채취하여 가을까지 남아돌았다는 석빙고는 얼마나 효율적이었을까?

계명대학교의 공성훈 박사는 우선 석빙고의 실내 환경 분포를 측정하였다. 현존하는 석빙고는 여러 곳에 있지만 그 중 경주 석빙고의 예를 들었다. 경주시 인왕동 449-1에 위치하며 빙실의 규모가 35평 정도로 남한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석비에는 영조 14년(1738년)에 완성된 것을 3년 후에 옮겨 개축하였다고 적혀 있다. 길이 19미터, 너비 6미터, 높이 5.4미터의 규모로 입구가 월성 안쪽으로 나 있고 계단이 있다. 천장은 아치형으로 다섯 개의 기둥에 장대석이 걸쳐져 있고, 환기용 구멍 3개가 장대석을 걸친 곳에 있으며 바닥 한가운데가 경사지게 되어 있어 녹은 물이 밖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경주 석빙고의 여름철 건구 온도와 상대 습도, 기류 속도 조건의 분포 등을 측정한 실험이 있었다. 1996년 8월 29일∼9월 1일까지의 4일 간에 이루어진 실험 결과 석빙고는 비교적 날씨가 따뜻한 경우 실내 온도 조건의 분포 범위는 평균 19.8도로 온도교차 범위는 1.3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실외의 온도 교차 범위는 8.2도로서 이와 같이 실내 온도 교차 범위가 낮은 것은 장기적인 얼음 보관을 위한 석빙고 외부 구조체의 축열 성능과 잔디 식재에 의한 복사열의 효율적인 산란 작용 등에 의한다고 추정했다.


경주 석빙고 단면도(신동수 교수 논문).



석빙고의 부위별 구조는 여름철까지 냉기를 잘 보관할 수 있도록, 자연 환기구의 적절한 배치, 유선형의 외부형태, 배수구의 이용, 흙과 돌의 열전도율의 차이를 이용한 축열 구조의 채택 등을 통해 더운 외기의 영향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내외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석빙고의 위치도 중요하다. 석빙고의 위치는 외기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묘한 천연적 지형에 설치하였음은 물론이다.

충남대학교의 장동순 교수는 석빙고가 반지하 냉동 창고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즉 단열재로 사용한 볏짚이나 갈대의 존재 여부 및 얼음의 충진량에 따른 계산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다.

얼음의 충진량이 50%인 경우 짚이 없을 때는 석 달 후에 얼음량의 감소가 6.4%, 여섯 달 후에는 38.4%가 되는 반면에 짚이 있을 경우 석 달 후의 얼음량 감소는 0.04%, 여섯 달 후에는 0.4%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얼음의 충진량이 100%인 경우 짚이 없을 때는 석 달 후에 얼음량의 감소가 9.2%, 여섯 달 후에는 51.8%로 절반 이상이 감소한 반면에 짚이 있을 경우 석달후의 얼음량 감소는 2.8%, 여섯 달 후에는 18.4%나 되었다. 얼음의 양과 볏짚의 유무에 따라 얼음의 저장 능력을 조절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였다.

여기에서 볏짚(k:0.04W/m°C)의 역할인 단열재란 열을 전달하지 않는 재료로서 그 원리는 재료가 비어있는 공간을 많이 갖도록 한 것이다. 현대 건축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스티로폴(k:0.03W/m°C)이나 우레탄은 미세한 공기구멍을 되도록 많이 포함하여 열을 차단하고 있다. 석빙고에서 사용한 볏짚도 속이 비어 있는데다 재료 자체가 열을 잘 통과하지 않는다. 장 교수는 볏집이 냉장고의 단열재인 폴리우레탄 폼과 같이 복사열 차폐와 유동열 억제로 외기 온도에 의해 얼음이 녹지 않도록 단열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계명대학교의 신동수 교수는 볏짚보다는 왕겨나 톱밥(k:0.059W/m°C)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나 이들 재료의 단열적인 성격 역시 유사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볏짚은 농사를 짓고 난 뒤 부산물을 이용하는 것으로 일석이조이다. 볏짚으로 짠 가마니로 저장한 쌀이 더 맛이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볏짚은 통풍도 잘되고 습기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병충해 방제 효과도 있으므로 항상 최적의 보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나 아랍 사막에서는 여름에도 얼음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겨울에 채취하여 얼음을 저장하는 수동적인 방법이 왜 그렇게 과학적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우리들도 여름에 얼음을 만들었어야 이집트와 비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이집트와 한국의 지역적인 기후를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이 사막에서 어떻게 얼음을 만들 수 있었는가 알아보자. 이집트인들은 추운 날 밤(기온은 그래도 영상) 흙으로 빚은 용기 안에 물을 넣어두고 바깥 표면을 계속 적셔준다. 그러면 물의 기화 작용으로 용기가 냉각되어 안에 있는 물은 얼음이 된다. 사막은 낮 밤의 온도차이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사막 지역에서는 하루에 제곱미터 당 최소한 5∼6킬로그램의 얼음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집트와 같이 낮밤의 온도 차이를 얻을 수 없으므로 자연 현상을 이용하여 얼음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한국의 선조들은 이집트와 같이 얼음을 만드는 대신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여름에도 쓸 수 있도록 최적의 기술을 적용하였다.


사실 얼음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것은 한국의 기술이 더욱 효율적이다. 이집트에서는 항상 얼음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음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일사량이 높은 날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는 그날 그날의 일사량에 따라 피동적으로 얼음을 만드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봄, 가을은 물론 여름의 삼복 중에도 녹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여름의 한나절로도 저장된 모든 얼음이 녹을 수 있으므로 계절을 넘기면서 얼음을 보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석빙고는 그 위치는 물론 조그마한 문이나 계단, 배수로 등을 세밀한 설계에 의해서 건조한 것이다. 더구나 얼음을 채취하여 보관할 때에도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잘 녹지 않는지를 수많은 재료로 실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점을 감안할 때 단순하게 얼음을 짚으로 덮는 것으로 보이는 석빙고가 어떤 기계적인 장치에 비견하여 결코 떨어지는 과학적 기술이 아니다.

더구나 석빙고와 같은 시설을 만들어 여름에 항상 얼음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다는 것을 부연하면 우리 조상들의 슬기에 으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의 이상협은 빙고제도에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성종 때 얼음을 대신들에게 나눠주는 빙고제도는 대신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조선 초기의 양반 관료 중에는 청렴한 사람이 많아 대신이라고 해도 집안이 가난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조정에서 얼음을 나눠주는 것은 좋았지만 서빙고까지 가서 얼음을 집으로 운반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이 당시 얼음을 지급할 때는 패(牌)를 나눠주어 이것을 갖고 서빙고에 가면 얼음을 주었는데 하인이 없는 대신들은 얼음을 수령하는 패를 묵힐 수밖에 없었다. 이때 눈치 빠른 사람들이 가난한 대신들 집에 가서 묵혀둔 얼음 수령패를 얻어다 얼음을 수령 받은 후 도성 내에 비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15세기에 이미 얼음장수가 출현했다는 이야기로 경제논리를 아는 사람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는 S그룹과 함께 별도 장치 없이도 일정한 온-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현대판 석빙고를 건설하였다. 산 속에 지하 냉장-냉동 저장 시험 동굴을 목적으로 한 현대판 석빙고는 지상 냉장창고보다 연간 에너지 소비량을 34%, 냉각 설비 용량 크기를 6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캔사스시티에선 석회석 광산에 60만 평 규모의 세계 최대 식품 저장 지하 공간을 조성, 미국 전체 농수산물의 10%를 보관하고 있으며 호주는 1970년대부터 수천 톤 규모의 곡물을 6개월 간 저장할 수 있는 지하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고대의 석빙고 개념을 도입한 현대판 석빙고가 소기의 성과를 얻는다면 에너지 절약 면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6. 석빙고의 예

(1)창녕석빙고


․ 소재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 규모 : 빙실길이 13.05m

너비 4.65m

높이 약4.75m

․ 재료 : 화강석

․조선 영조 18년(1742년)에 축조 하였다. 현재는 시가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석빙고와 마찬가지로 고분 형태이며 빙실형태는 전체적으로 터널과 같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경주 석빙고와 다르게 환기구가 2개인 것이 특징이며 바닥면의 경사나 배수구 등 다른 구조는 다른 석빙고와 비슷하다.


(2) 현풍석빙고

․ 소재지 : 경북 달성군 현풍면


․ 규모 : 빙실길이 9.75m

너비 5.0m

높이 약6.0m

․ 재료 : 화강석

․ 조선 영조 6년(1732년)에 축조되었으며 출입구가 강과 다른 북쪽으로 나 있으며 이것은 남측으로 부터의 태양광선의 인입을 최소화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 하부로부터의 인입되어지는 우수의 처리를 위해 비교적 견고한 배수구가 설치되어 있다. 환기구가 2개인 것이 특징이고, 다른 구조는 다른 석빙고와 비슷하다.


(3)안동석빙고

․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성곡동

․규모

방실길이 : 12.5m

너비 : 5.9m

높이 : 약4.9m

․ 재료 : 화강석

․ 조선 영조 16년(1740년)에 축조하였다. 외관상으로 보면 환기공이 있는 커다란 고분처럼 보인다. 다른 석빙고와 다르게 출입구의 위치가 측면에 나 있고 환기공의 위치도 일렬로 나 있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되어 안동의 성곡동으로 이건 하였다.

(4) 경주 석빙고

․ 지정번호 : 보물 제66호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 시대 : 조선

․ 크기 : 길이 18.8m, 홍예 높이 4.97m, 너비 5.94m


․ 보물 제66호. 길이 18.8m, 홍예(紅霓) 높이 4.97m, 너비 5.94m. 남북으로 길게 조영하고, 출입구는 남쪽에 있는데 너비 2.01m, 높이 1.78m이다. 여기에서 계단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빙실의 밑면도 외부의 형태와 같은 직사각형으로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밑바닥은 경사져 있으며, 바닥 중앙에 배수구가 있어 내부의 물이 이 경사를 따라 외부로 배출된다. 내부는 연석(鍊石)으로 5개의 홍예를 틀어 올리고 홍예와 홍예 사이에 길쭉한 네모 돌을 얹어 천장을 삼았다. 벽은 직사각형의 작은 석재로 정연하게 쌓아올렸고, 밑부분은 장대석을 연결하여 지대석(址臺石)을 삼아 견실하게 축조하였다. 천장에는 3곳에 환기 구멍을 마련하여 외기와 통하게 하였는데, 조각한 돌로 구멍을 덮어 비와 이슬을 막고 있어 다른 석빙고와는 달리 정연한 양식과 축조를 보여 주목을 끈다. 환기 구멍은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치우쳐 시설하였는데, 이것은 입구가 남쪽에 있으므로 안으로 내려가는 층계가 몇 단 있어서 그만큼 자리[房]를 차지하고 얼음창고의 주실(主室)은 좀더 깊이 들어간 내부의 북쪽에 있는 까닭이다. 이 석빙고 옆에는 석비가 있어 축조연대를 알 수 있는데, ‘崇禎紀元後再戊午’는 1738년(영조 14)에 해당하고, 다시 입구의 미석(楣石)에 ‘崇禎紀元後再辛酉移基改築’이라 새겨져 있어, 축조한 지 4년 만에 현위치에 옮겨 개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서쪽으로 약 100m 되는 곳에 옛터로 전하는 자리가 있다. 조선 후기에 몇몇 석빙고를 축조하였으나, 그 규모나 기법에서 이 석빙고가 가장 정연한 걸작으로 꼽힌다.



<참고 자료>


http://blog.naver.com/sycjs/20007420217

국정브리핑 2004-11-12 17:01 이종호씀(과학저술가)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13&dir_id=130503&docid=302776

http://culture.phyed.pusan.ac.kr/stone/main.htm

http://www.thenaeun.net/kyeongju/seogbing.htm

http://www.kjnamsan.com/explore-kj1-6.htm

http://www.encyber.com/travelworld/region.php?codestr=1004010214_16_4_0_0_1

1998/05/12일 동아일보 기사.

211.114.169.2/board/main.cgi/석빙고란

출처 : 농촌에서 성공 신화 만들기
글쓴이 :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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