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스크랩] “매화마름 덕에 청정마을 됐죠” (정성진/조선)

그린테트라 2007. 6. 26. 12:21

“매화마름 덕에 청정마을 됐죠”

“풀 살리자고 농사 막나” 군락지 사들인 환경단체 처음엔 ‘감금’
구렁이·참게 돌아오고 무농약 쌀 인기끌면서 이젠 주민들이 더 열성


“어?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구렁이야!”

18일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의 한 논에서 주민 임종수(49)씨가 멸종위기 동물 Ⅰ급인 구렁이를 보며 말했다. “어렸을 때는 잘 보이던 놈인데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구렁이뿐이 아니다. 멸종위기 Ⅱ급인 금개구리도 농수로에서 임씨를 보고 있었고 참게도 놀고 있다. 모두 최근에 돌아온 것들이다. 

 

임씨는 “3만4000평 정도 되는 이 지역 논에는 2004년부터 화학 비료를 하나도 안 쳤는데 그 영향이 이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약을 안 치니 풀이 많아졌다. 풀이 많으니 개구리도 많아졌다. 개구리가 많으니 구렁이까지 돌아왔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동네 농민들이 농약을 안 치게 된 계기는 다른 논과 구획돼 있는 900여 평 논을 깨알같이 하얗게 덮은 ‘매화마름’ 때문이었다. 멀리서 보면 논에 종이가 뿌려진 듯하지만 가까이 보면 예쁘게 만개한 매화마름이다. 멸종위기 Ⅱ급 식물인 매화마름은 논이나 습지에서 살며 4~5월에 지름 1㎝의 꽃이 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것 때문에 주민들은 몇 년간 큰 싸움을 벌였다.

 

1998년 5월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매화마름의 집단군락지를 이곳에서 발견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문화 유산을 시민의 돈으로 사서 보존하는 운동.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이곳을 첫 번째 대상으로 삼고 땅을 사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주민들이 논을 갈아엎는 경지정리 작업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매화마름을 보존하기 위해 경지 정리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시작됐다.

 

인하대 최중기 교수 등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회원 등은 주민들에 의해 마을회관에 갇힌 적도 있다. 최 교수는 “주민 수십명이 ‘경지 정리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하지 않으면 못 나간다’며 회관에 우리를 가두기도 했다”고 말했다. ‘감금’뿐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서울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매화마름 군락지에 주민 임종수, 이장 김태만, 주민 이증무(왼쪽부터)씨가 모여 환하게 웃고 있다. /정성진기자
주민 이증무(52)씨는 “당시 동네 어른들은 농사에 방해만 되는 그따위 풀을 살리겠다고 숙원사업인 경지 정리를 못하게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흥분했다”고 말했다. 겨우 만들어진 합의는 매화마름 군락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도에서 경지정리를 하고 900여 평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사서 관리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변화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우리 어른들은 환경운동하는 사람들을 딱 두 가지로 알고 있었죠. 하나는 ‘쇼’를 하면서 일만 저질러 놓고 매스컴 몇 번 타면 주민에게 다 밀어 넣고 튀는 사람들, 하나는 머리에 띠 두르고 경력 만든 뒤 정치하는 사람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계속 남아 있더라고요.”
 

이증무씨는 “젊은층부터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매화마름 군락지의 운영 주체인 강화 매화마름위원회의 반수는 주민들이다. 매화마름 군락지를 계기로 우렁이를 이용하는 친환경 농법도 2004년부터 시작됐다.

 

이렇게 생산된 쌀이 농약 없는 쌀로 인정되고 더 높은 값을 받으면서 혀를 차던 노인들도 매화마름을 인정하게 됐다. 임종수씨는 “요즘 동네 어른들은 손주들에게 ‘우리 마을은 매화마름 마을’이라고 자랑하더라”며 “170도는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근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 모임의 이름은 ‘매화마름 작목반’으로 바뀌었다. 초지리 이장 김태만(55)씨는 “옛날에는 참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정말 잘 지낸다”고 말했다.
 

임종수씨는 “매화마름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씨는 “수입 쌀에 대해 우리 농민들이 싸울 수 있는 길은 친환경 쌀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며 “매화마름이 자라는 깨끗한 마을을 만들고 비싼 친환경 쌀을 만들어 소득을 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김금호 부장은 “지금까지 ‘매화마름’이라는 상표를 우리가 산 900여 평에서 나온 쌀에만 붙였는데 앞으로는 더 확대하겠다”며 “어떤 환경 운동도 마찬가지지만 매화마름이 유지되느냐 아니냐는 주민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강화=정성진기자 sjchung@chosun.com
입력 : 2006.05.20
출처 : 오두막 마을
글쓴이 : 나무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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