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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술 막걸리 맛은 일본식

그린테트라 2012. 2. 3. 14:40

우리술 막걸리 맛은 일본식
[매거진 esc]
한겨레  
» 공승식 소믈리에가 시음하는 모습.
요즘 뜨는 막걸리 6종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중화 반갑지만 토종술의 개성 실종 아쉬워

막걸리가 뜬다. 물론,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으로 회자하는 ‘신종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말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국내 판매량과 수출이 모두 늘었다.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이 술은 ‘1960~70년대, 농촌, 육체 노동자’를 연상시킨다. 이런 막걸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느는 것도 재미있는 징후다. 호사가들은 “막걸리를 와인처럼 특화하자!”라는 말도 꺼낸다. 어떤 막걸리 업체는 누리집에 ‘라이스 와인’이란 말을 썼다.

소믈리에가 감별한 막걸리의 맛

막걸리는 정말 맛있을까? 그러나 막걸리 제품별로 어떤 맛의 차이가 있는지 제대로 감별한 바 없다. 롯데호텔 서울의 공승식 소믈리에가 막걸리 블라인드 테이스팅(상표를 가리고 시음하는 것)을 부탁하자 흔쾌히 허락한 이유다. 그는 와인 전문가지만 막걸리도 와인 같은 발효주이므로 그의 평가가 정보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막걸리 소믈리에’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탓도 있다. 마트와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여섯 종류의 막걸리를 골랐다. 다음은 테이스팅 노트다.




» 막걸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는다. 맛의 다양화가 과제다.
⊙ 1번

향(nosing) : 새콤한 효모(이스트) 냄새가 코를 시원하게 한다. 약간 신맛(산미)이 있다. 발효 과정에서 누룩을 뒤집었을 때 나는 향이다. 단내도 있다. 희미하게 스테인리스 통 냄새도 난다. 마치 밭에서 무를 막 뽑았을 때 나는 듯한 채소 향기도 있다. 이는 숙성이 덜 됐음을 뜻한다.

맛(palate) : 약간 쓴맛. 알코올이 술과 따로 노는 느낌. 알코올 맛이 강하게 먼저 난다. 충분히 발효시키지 않은 맛이다.

⊙ 2번

향 : 인공 효모를 넣은 듯한 냄새다. 탄산 향이 난다. 마른 야채 냄새도 있다. 1번은 신선한 채소 향인 반면 2번은 마른 채소 냄새다. 술이 좀 더 익었음을 의미한다. 반면, 단내는 덜하다.

맛 : 쓴맛이 강하다. 재료 가운데 뭔가 한가지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 쓴맛이 맵고 짠 음식과는 어울릴 수도 있겠지만, 술 자체로만 판단할 때 균형감을 깨뜨릴 정도로 쓰다. 신맛은 없다. 당이 자연당인 것 같지 않다. 바디(입안에 머금었을 때 묵직한 정도)가 약하다. 끝맛(피니시)은 막걸리 본래의 맛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느낌. 3초간만 본연의 맛이 유지된다. 곧, 묽다는 거다. 단맛·신맛의 균형감이 안 좋다.

⊙ 3번

향 : 토속적인 냄새다. 도자기나 옹기 냄새도 난다. 발효 통이 옹기인 듯. 채소 향보다 곡물 향이 난다. 전반적으로 냄새가 1번과 2번보다 더 낫다.

맛 : 부드럽다. 재료를 좋은 걸 쓴 것 같다. 그러나 개성이 없다. 신맛이나 쓴맛이 안 난다. 충분히 숙성시키지 않고 빨리 병에 넣은 듯하다. 하루이틀 더 익혔다면 더 좋았겠다. 바디는 1, 2번보다 약하지만 끝맛은 더 오래 남는다.

⊙ 4번

향 : 단내와 쌀겨 향 같은 곡물 향이 많다.

맛 : 가스(이산화탄소)가 너무 많다. 가스 배출을 제대로 안 하고 병에 넣은 듯. 누룩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 5번

향 : 여러 가지 발효 통을 쓰는 듯하다. 스테인리스 냄새도 나고 옹기 냄새도 난다. 미세하게 미네랄 냄새도 난다. 좋은 옹기는 아닌 것 같다. 발효 통의 냄새가 나는 건 좋지 않다.

맛 : 괜찮은 술을 만들려고 노력한 게 느껴진다. 조금만 바디가 묵직했으면 좋았겠다.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맛이다.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발효도 충분히 했다. 다만, 장점을 하나 제대로 살려주었으면 좋았겠다. 개성이 없다.

⊙ 6번

향 : 흙내가 먼저 난다. 석회질이 포함된 물에서 나는 냄새 같다. 피망 껍질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다. 식물성 화장품의 냄새라고나 할까? 좋은 냄새가 아니다. 이 냄새가 막걸리의 개성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누룩 냄새가 남아 있다. 발효 숙성이 짧은 듯.

맛 : 재료는 좋은 걸 썼다. 숙성 짧고 물맛도 약간 문제가 있다. 알코올이 발산하지 못하고 숨어 있어 쓴맛이 강하다. 알코올이 자기 발산을 잘하면 술이 한층 부드럽다.

공승식 소믈리에는 ‘개성’을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았다. 그는 이 기준에 따라 4번과 3번을 괜찮은 막걸리로 꼽았다. 재료나 숙성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던 5번은 개성이 부족한 점이 지적됐다. 공씨는 전반적으로 막걸리의 맛이 기대 이하고 특히 인공적인 단맛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1번은 이동 쌀막걸리, 2번 이동 동동주, 3번 맑은 물 秀 쌀막걸리, 4번 서울 장수막걸리, 5번 국순당 쌀막걸리, 6번 운악산 쌀막걸리다.


» 왼쪽부터 홍어초무침, 전과 막걸리. 사진 국순당 제공
막걸리의 단맛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달달해서 좋다는 소비자도 있지만, 인공적인 단맛이 풍미를 해친다는 애주가도 적잖다. 단맛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 비밀은 합성감미료 ‘아스파탐’이다. 테이스팅을 한 막걸리들은 국순당 쌀막걸리를 제외하고 모두 아스파탐을 썼다. 여섯 가지 모두 알코올 도수는 6~7도이고, 이름엔 쌀막걸리라고 돼 있지만 국순당 쌀막걸리와 장수막걸리를 빼고 밀이 20~40% 섞여 있다.

아스파탐(aspartame)은 페닐알라닌과 아스파르트산을 합성해 만든 인공 감미료다. 1982년 일본의 조미료 제조업체인 아지노모토가 개발하였다. 단맛이 설탕의 200배에 이른다. 현재 120여 나라에서 식품·음료 등에 사용되지만,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아스파탐 없이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만들 수 없는 걸까? 장수막걸리를 생산하는 서울탁주협회의 성기욱 연구실장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자체 당분만으로는 막걸리 맛의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누룩만 가지고 담그는 전통 막걸리는 요즘 소비자들이 즐기기에 쓰고 텁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업체들이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기 때문에 아스파탐을 쓴다며 반박했다. 그는 전통 방식으로 탁주를 만들지 않고 물을 섞어 도수를 일부러 떨어뜨리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져 바디가 약해지고 고유의 풍미가 사라지자 억지로 맛을 내려고 아스파탐을 쓴다는 것이다. 원래 발효주는 와인처럼 도수가 10도를 넘는 게 정상이다. 청주와 탁주는 함께 만들어진다. 술을 담갔을 때 위에 뜬 맑은 술이 청주고 밑에 가라앉은 게 탁주다. 따라서 전통 탁주는 물을 섞은 시중 막걸리보다 더 걸쭉하고 도수도 10도를 넘는다. 업체들이 감미료를 쓰기 시작한 게 과거 법률로 쌀막걸리가 금지돼 밀로 막걸리를 만든 데서 연유한다는 설명도 있다. 밀을 섞으면 신맛이 더해지고 비용도 낮출 수 있다. 밀로만 담근 막걸리는 매우 시큼하기 때문에 신맛을 없애려고 감미료를 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울탁주협회는 “술덧(누룩·쌀·물의 혼합체로 청주를 떠내기 전의 상태)을 14도까지 발효시킨 뒤 물을 섞어 도수를 떨어뜨린다”고 밝혔다. 물을 섞어 도수를 떨어뜨리는 이유에 대해 ‘변화한 입맛’을 들었다.

아스파탐 사용 필수인가, 게으름인가

박 소장은 막걸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 되려면, 전통 막걸리 개발에 더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중 막걸리의 맛이 ‘일본식’임을 지적했다. 우리 막걸리는 밀로 만든 누룩과 야생 균을 이용하므로 풍미가 다양하고 바디가 묵직하지만, 술 빚을 때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게 단점이다. 반면 일본식은 쌀로 균을 배양한 뒤 효모를 첨가해 실패할 확률이 적은 장점이 있지만 맛이 획일적이다. 막걸리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균인데, 시중 막걸리는 거의 일본업체의 균을 사용한다. 위 여섯 가지 막걸리 중에 국순당 막걸리를 제외한 나머지 막걸리는 일본산 균을 사용한다. ㈜우리술은 “(일본산 균으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 정부가 한국 토종균을 배양하는 작업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여름 얼음을 띄운 달달하고 가벼운 막걸리를 좋아하는 애주가도 있다. 전통 탁주의 걸쭉한 맛이 무조건 우월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각자 좋아하는 스타일을 즐기면 된다. 문제는 다양한 스타일의 막걸리가 있느냐다. 소비자들의 입맛은 냉정하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출처 : 엄재남의 하늘마음
글쓴이 : 하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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