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스크랩] 약으로 쓰는 140년 된 장

그린테트라 2010. 7. 3. 22:15
약으로 쓰는 140년 된 장 (곡성 백부잣집 장독대) | 2005.05.11 20:21
영혼의산(coffeeblues) http://cafe.naver.com/coffeeblues/532
바나나우유라는 게 있다.
보통 사각의 종이팩이 아니라 통통한 항아리 모양의 용기가 인상적인 이 우유는
한때는 시류 따라 날씬한 팩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항아리우유’의 승리!
가운데를 둥그렇게 궁글린 이 용기의 장독 이미지가 유년시절의 추억 같은,
외할머니의 기억 같은 따뜻한 정서를 불러내는 힘이 되었을 터.
우리에게 장독대는 그런 곳이다.
세월 속에서 서서히 익어 가는 것들이 머무는 곳.
바람도 만나고 햇살도 쪼이면서,
혹은 어둠 속에서 저 혼자 삭여낸 시간을 품은 것들의 세상.  
그곳엔 오래 묵어 좋은 것이 있다.
장. 얼마나 되면 ‘오래 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한 140년쯤 되는 간장이라면….
 
바람도 만나고, 햇살도 쪼이고, 어둠도 삭여내고
그 장을 수소문하여 나선 길.
마을 들머리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아하, 백부잣집’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길 묻는 낯선 이의 한 걸음이라도 아껴줄 요량으로 손주를 업은 할매가 종종걸음으로
길 안내를 해 준다.
열두 대문집이었던 게 길 앞을 지나는 도로에 잘렸다고 했다.
백부잣집(곡성 삼기면 괴소리)  수원 백씨 종손인 백계춘(70) 어르신은 보일러 공사에
손을 넣고 있는 중이었다.
흙투성이 바지에서 그가 건너온 삶의 갈피를 짐작한다.
“우리 집은 소금을 스무 가마 서른 가마씩 사 놓아.
갱수(간수)가 빠져야 장이 맛있거든.”
안주인과 더불어 가정을 ‘경영’해 온 꼼꼼한 내력 없으면 소금독 간장독 속을 어찌 알겠는가. 종손이기에 더욱,
남한테 해가 되는 일 빼고는 안해 본 것이 없었다 한다.

“재물이 아니라 선덕을 쌓아야 한다고 그렇게 배우고 살아 왔지.”
6·25 나고 빨치산이 지나간 길목에 있으면서도 마을 유지인 그의 집안이 두루 멀쩡했던 것은
30리 안팎에 소문난 ‘적선지가(積善之家)’였던 탓이다.
“백정이든 산지기든 소작농들이든 사람을 천대하는 내력은 우리 집안에 없었어.”
반상 차별 없어진 요즘 세상에 돈 가진 것 배운 것 내세워 행세하는 사람들이 그는 마뜩찮다.
“나는 공부 복을 못 탔어.
그러나 사는 길은 알고 왔어.”
그 징글징글한 68년 한해(旱害) 때 그는 문전옥답의 물꼬를 터서 산비탈 꼭대기 남의
천수답까지 물길을 끌어올렸더라 한다.
남의 가슴 타는 사정을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농사꾼한테는
명줄이나 다름없는 물길을 내놓았다.

“우리 할아버지가 여기서 광주까지 걸어서 왕복을 하신 분이야.
당신 몸 위하는 건 푼돈도 아까워했지만 소작인 서운하게 대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
‘홀테 밑에 나락 모가지 보고 소작한다’던 시절,
그렇게 소작인들이 홀대 당하던 시절에도 흉년 밥상은 그들과 한가지여서 콩잎밥,
생키밥, 도토리밥깨나 먹었다.
“부자가 3대 못 간다 하지만 좋은 부자는 달라.
가문을 잇는다는 건 재산을 지키는 게 아니라 정신을 잇는 거야.”
지난 82년 삼기군 농협조합장을 맡으면서 농협주유소라는 것을 처음으로 열었다.
이권이 달린 사업이니 아무리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라 해도 말 빼볼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가능했다.
괴소리 인근에 봄이면 매화꽃 훤한 것도 당시 매화를 장려한 그의 발자취.
소득은 차치하고 농약 덜 치니 땅한테는 오래 좋을 노릇이다 싶었다.

마을일이든 집안일이든 대소사에 심부름꾼 노릇을 도맡으면서도 ‘궂게 됐다’는
 말 들어본 일 없는 비법이 있다.
사심을 버리고 사람을 옳게 쓰는 것.
“나무도 글방 기둥 될 나무 있고 서까래 될 나무 있듯이 그 사람 그릇에 맞춰 쓰면
상호간에 찡그릴 일이 없어.”
평생 에헴 하고 뒷짐 진 일 없었다.
남의 손에 흙 묻히려면 먼저 내 손에 흙 묻혀야 되는 줄 알고 살았다. 
 
30리 안팎에 소문난 ‘적선지가(積善之家)’
한때는 5대가 한 집에 살던 종가집.
한 끼에 쉰 명 가까운 식솔들이 밥을 먹기도 했다.
게다가 무명 삼베 낳아서 옷을 지어 입던 시절이었다.
일년 열두 달 베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으니 길쌈에 ?수발에 음식 수발에
집안 여자들이 어느 세월에 잠을 자겠는가.
하루 한 시간 잠도 많은 성 싶던 어머니가 어린 마음에도 참 딱하더니,
그의 아내도 종갓집에 드나드는 사람 수발에 골병이 다 들었단다.
“저 사람이 참 고생 많이 했어.”
‘인심이 노적’이라 했으니 그 노적가리 쌓는 데 종부 강기엽(65)씨의 몸공이 오죽했으랴.
그의 손으로 퍼내는 것 중에 그 중 귀한 것은 장독대에서 난다.
이 집 장맛은 소문이 났다.
‘된장 좀 주시오’ 하는 청이 끊이질 않는다
▲ 140년 된 장이 담긴 항아리.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우물 속 같다.
동그랗게 비친 건 봄하늘.
 
 
‘장맛 변하면 그 집 인심 변했다’고 했다.
‘장맛 보고 며느리 고른다’고도 했다. 한 집 음식을 결정하는 맛임에랴.
백씨 종가집 장독은 크기도 크다.
“1년이면 얼추 콩 두 가마가 장독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지.”
양이 문제가 아니다.
장은 담그는 날부터 까다롭게 택일했다.
 ‘털날’이 좋다 해서 음력 정월 말(馬)날인 오일(午日)을 어기지 않으려 했다.
신일(申日)에 담그면 시어지고,
사일(巳日)에 담그면 구더기가 생긴다고.
‘옛날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전에는 장 담그는 날 메주 한덩어리에 붉은 고추,
소금을 소반에 올려놓고 고사를 지내고  장 담글 때 그것을 같이 넣기도 했다.
“붉은 고추 꺼멍 숯은 잡귀가 겁나서 못 달라들게 하려는 방책”이었고 그래도 행여
장맛 변할까 거꾸로 붙인 버선 모양을 장독에 붙이기도 했다.
(맛이) 다시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된장 좀 주시오’ 하는 청 끊이질 않아
“담근다고 끝나는 게 아녀. 햇빛 나면 열어야지,
비 오면 담박질해서 닫아야지….”
후두두 빗방울 떨어지면 빨랫줄보다 장독대로 내달렸다.
그리 해도 공이 없었다.
당연히 할 일 해 놓고 유세 떠는 걸 ‘비오는 날 장독 덮기’라 이르듯.

오죽하면 ‘마마는 좋아도 장고마마(궁궐 장독대를 관리하는 직책)는 사양한다’ 했으랴.
중매쟁이도 그 집 규수는 안 봐도 그 집 장독대는 보고 간다 했으니.
“하루 온종일 밭에 엎드려 살아도 장꽝 그릇은 번질번질 해야 해.
내 몸 닦는 것보다 장독 몸뚱아리 닦는 것이 더 중했어.”
오죽 정갈하면 기도의 공간으로 삼았을까.
“애기들 여섯 놈 시험 볼 때마다 빌었지.
새복에 남 길러가기 전에 첫물 깨끗한 물 떠다 장독에 놓고 빌었어.
한 놈도 안 빼고.”
쌀 다섯 가마니가 들어갔다는 거대한 쌀독,
그 옆엔 간장독 그 앞으로는 된장독,
또 그 앞줄은 고추장이며 장아찌 항아리,
올망졸망 젓갈 단지까지 흡사 대가족의 가족사진인 양 모양 있게 들어찬 옹기들.
그저 항아리며 독이 아니라 모양 따라 용도 따라 자배기, 옹배기, 단지, 귀때동이,
소줏고리 이름도 가지가지.

“예전엔 옹기 사 오면 엎어놓고 속에다 불을 피워.
연기 새나오는 그 틈이 숨구멍이야.
그러니 새 항아리엔 간장은 못 담가. 된장을 먼저 담가서 틈새가 막히면 간장독으로 썼지.”
그 중 장은 잘 생기고 좋은 독에 담갔다.
“사람으로 치면 도량이 크고 후덕하고 묵직하고 믿음직한 사람 같은 독”이
잘 생긴 독이라 한다.
그 독에 풀잎 같기도, 물결 같기도 한 무늬들이 천연스럽다.
익살맞은 옹기장이가 장난삼아 손가락으로 휙 스친 듯한 무늬.
속내로는 공들인 일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짐짓 명랑한 듯 마감한 내공.
무심한 듯,
그러나 당찬 무늬를 들여다본다.
 
‘애기 서고 담근 장으로 그 애기 혼인 때 국수 만다’
누대를 건넜다는 장독들 그 가운데 140년 된 간장을 안은 항아리가 있다.
“전쟁통에도 멀쩡한 독아지였는디 애기들 숨바꼭질에 주둥이를 다쳤어….”
다행히 장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아 고스란히 새 그릇에 옮겨졌다 한다.
뚜껑 한번 열어달라고 하기조차 조심스럽다.
항아리에 담긴 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우물 속처럼 짙은 어둠.
140년 세월이다.
“1년에 한 번씩 장을 담그고 한 바가지씩 새로 떠 부어.
선영에 신고하는 것이지.
올해 장 담가서 바칩니다, 하고.”

시집온 이래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의식이다. ‘애기 서고 담근 장으로 그 애기 혼인 때
국수 만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더라 한다. 
친구와 장은 오래 될수록 좋다 하였던가.  
“약으로 쓴다고 한 종지만 달라고 얻으러 오는 사람이 있어.”
140년의 햇빛과 바람, 별빛과 달빛, 눈비와 서리, 수없는 축원을 품은 장.
찍어 먹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약이었다.
 
 
 
 
 
 
                           전라도닷컴/남인희기자,사진/김태성기자
출처 : 막사발 생태마을
글쓴이 : 난아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