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왜 '석유중독'을 경고했을까?"
'석유 제로 시대'를 그린다 <1> 임박한 파국과 대안
지난 2006년을 미래의 역사가는 전 세계적으로 '탈(脫)석유 시대'가 의제로 떠오른 해로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간 역대 미국 대통령이 한 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는 '석유 중독'이라는 말을 내뱉은 데 이어, 2020년을 목표로 한 스웨덴의 '석유 제로(0) 선언'은 큰 화제가 되었다.
탈석유 시대가 의제로 떠오른 배경으로는 우선 2000년대 이후 지속된 고유가 사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발효에 따른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대책 마련 등을 들 수 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이 올 경우 석유 생산이 가파르게 하락할 가능성을 전 세계 국가들이 심각하게 인식한 탓도 있다.
이렇게 세계가 탈석유 시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의 논의 수준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2030년까지 풍력,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renewable energy)'가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지금보다 9% 올릴 것을 약속한 노무현 정부의 '2030 에너지 비전'은 그 단적인 예다. 2011년까지 목표치가 5%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은 2007년 에너지 문제를 한국 사회가 중·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시급히 논의해야 할 화두라고 판단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이른바 '석유 제로(0) 시대'를 맞기 위해 세계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또 한국은 그 흐름에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8회에 걸쳐 보여 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현재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관련 논의를 소개하는 한편, 현지 취재를 통해 탈석유 시대 준비를 선도하고 있는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유럽연합 각국의 현실을 소개한다.
'석유 제로 시대를 그린다' 기획은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으로 준비되었다. <편집자>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다녔다. 나는 차를 몰고 다닌다. 내 아들은 제트기를 타고 다닌다. 내 아들의 아들은 다시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격언)
오스트리아 그라츠 시. 세워진 지 1000여 년이 넘은 이 고도(古都)의 버스는 특별하다. 녹색으로 칠해진 벤츠 버스 150대는 한 대도 빠짐 없이 폐식용유를 원료로 만든 바이오디젤유(BD100)를 연료로 사용한다. 그라츠 시는 1994년 처음 2대의 버스에 바이오디젤유를 넣은 후 10년 만에 대중교통 수단 연료의 완전한 전환을 이끌어냈다.
이를 주도한 그라츠 대학의 마틴 미텔바흐 교수는 폐식용유를 수거해 버스의 연료로 사용하는 과정을 직접 설명하면서 "조용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 변화의 중심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었다.
2006년 1월 31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미국은 석유에 중독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를 펑펑 써 온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적인 석유 고갈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을 공개리에 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석유 공급의 불안정성에 대비하는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할 것을 약속했다.
고유가 사태는 '쭉' 계속된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을 압박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유가다. 서부텍사스(WTI)유 기준으로 2002년 배럴당 26달러였던 유가는 2005년 56.82달러로 2배나 올랐다. 유가는 2006년 한 때 배럴당 70달러 수준을 유지해 1970년대 양차에 걸친 석유 파동 때의 수준(80~90달러)에 근접했다.
2002년 유가가 치솟을 때만해도 국내외 많은 전문가는 고유가가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에 따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1980~90년대 저유가 시대로 돌아갈 것을 전망하는 전문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하듯 폴 크루그먼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유가가 한창 치솟던 2004년 5월 15일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 때는 세계적으로 증산 여력이 많아 수급 차질에 대처할 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고유가 사태는 그렇지 않다. 뚜렷한 공급 차질 상황이 없는 데도 중국을 필두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급 상황이 빡빡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서남아시아 불안마저 심화된다면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이런 크루그먼 교수의 분석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석유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공급 능력은 이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고유가 사태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세계 경제가 지탱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생산량 조절을 통해 유가 하락을 저지할 가능성이 높다. 또 석유 회사도 지정학적 위험 증가로 마땅하게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80~90년대 내내 계속된 저유가 시대에 석유 생산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도 공급 능력이 확충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발(發) 석유 파동?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석유회사가 본격적으로 공급 능력을 확충하면 언제든지 과거의 '좋았던 때'로 회귀할 수 있을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런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유가가 한창 치솟던 2004년 초에 발생했다. 세계적인 석유회사 로열더치셸은 9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총 가채 매장량이 20% 감소한 사실을 발표했다.
로열더치셸은 나이지리아, 오만의 가채 매장량이 40% 이상 과대평가돼 있었던 사실을 인정했다. 이 발표로 이 기업의 주가는 바로 25%나 폭락했다. 파장은 훨씬 더 컸다. 그간 석유업계가 가채 매장량을 과장해 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석유업계가 주장해 온 가채 매장량(약 1조 배럴)의 상당량(20~25%)은 실체가 없을 수도 있음을 방증하는 사건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5년 에너지산업 투자기관 사이먼스앤컴퍼니인터내셔널의 매튜 사이먼스 회장은 <사막의 황혼(Twilight in the Desert)>에서 '사우디아라비아발(發)' 석유 파동의 도래를 경고했다. 사이먼스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이 정점에 근접했거나 이미 정점을 지났다"고 결론 내렸다.
사이먼스 회장은 "수년간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에서 일하는 지질학자들이 작성한 200여 편의 논문을 광범위하게 검토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발표하는 석유 매장량 통계에 큰 의심을 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이 하락하는 시점은 전 세계 석유 생산이 하락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사이먼스 회장의 경고에 힘을 실어주기라도 하듯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회사 아람코에서 부사장을 지내다 2004년 퇴사한 사다드 알 후세이니도 영국의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동감을 표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량은 위험할 정도로 과대평가되었다."
임박한 파국, 석유 생산 정점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지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바로 전 세계 석유 생산이 정점에 근접했거나 혹은 이미 정점을 지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04년 3월, 미국 에너지국(DOE)이 발표한 45쪽 분량의 보고서(Strategic Significance of America's Oil Shale Resource)는 석유 고갈 사태에 대한 경고를 인정해 눈길을 끈다.
"현재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은 석유 발견 속도보다 3배나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세계 석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에 대해 일치된 합의는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석유 생산 정점(Peak Oil)' 예상 시점은 2020년을 넘기지 않는다. 미국은 당장 전 세계 석유 생산 정점에 대한 대응을 시작해 경제, 국가 안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상쇄해야 한다."
미국 에너지국은 2005년 2월에도 석유 생산 정점에 대한 보고서(Peaking of World Oil Production : Impacts, Mitigation & Risk Management)를 발표했다. 미국의 조사기관 SAIC에 의뢰해 작성된 이 보고서는 석유 생산 정점이 실제로 도래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석유 생산 정점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전례 없는 위기관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그 충격을 완화할 시의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전례 없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석유 생산 정점이 오기 최소한 10년 전에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시기를 못 박고 있다.
만약 석유 생산 정점과 관련해 대비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 보고서는 "석유 생산 정점에 대비하지 않을 경우 전 세계는 20년 이상 심각한 석유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그 결과 엄청난 경제적 대격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일단 석유 생산 정점이 오면 그 이후부터 석유 생산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이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시작하면, 세계 석유 수요는 공급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석유 생산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대혼란'은 불가피하다.
그라츠 대의 마틴 미텔바흐 교수는 "지난 11월 인도네시아 출장 길에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며 "부시 대통령이 경유 대신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디젤유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세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석유를 대신할 수송 연료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은 석유에 중독돼 있다"며 공개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선 데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었다. 마침 2006년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석유 생산 정점이 올 것으로 예상한 2015년까지 채 10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인류가 한 번도 직면한 적이 없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 세계적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결국은 카산드라가 맞았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낙관론자가 득세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석유회사 에니의 레오나르도 마우제리 부사장이 2006년 말 <뉴스위크>에 기고한 글(The New Age of Oil)은 대표적이다. 그는 "지금은 석유 시대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석유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현재 예상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석유가 지하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낙관론자들이 기대는 것은 바로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석유 매장량 통계와 이에 기반을 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전망이다. USGS는 전 세계적으로 2조600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발표를 근거로 집계한 석유 매장량 1조7000억 배럴에 카스피 해, 서아프리카 등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9000억 배럴을 더한 양이다. 그러나 이 USGS의 석유 매장량 통계는 많은 불신을 받고 있다. 즉 미국 본토의 매장량 통계는 비교적 정확한 반면에 공개되지 않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의 매장량 통계는 과장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사이먼스 회장의 <사막의 황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매장량 통계의 허점을 정확히 짚었다. 낙관론자들은 과학기술이 더 많은 석유 생산을 보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앞으로 발견될 유전은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보다 전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1배럴의 석유를 얻기 위해 1배럴의 석유와 같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경우 그런 유전의 가치는 '0'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그런 석유 탐사에 누가 돈을 댈 것인가? 이런 낙관론자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2010년을 전후한 시점에 석유 생산 정점이 올 것을 경고해 온 ASPO(The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eak Oil & Gas)의 지식인들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쉘 알레크렛 ASPO 의장(스웨덴 웁살라 대학 교수)은 자신을 비롯한 ASPO의 지식인을 트로이의 패배를 경고한 카산드라에 비유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카산드라는 트로이 인에게 무시당했지만 트로이 인은 뒤늦게야 카산드라가 옳다는 것을 알았다"며 "하지만 이미 그 때는 늦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낙관주의자의 얘기는 당장 듣기에는 좋지만 그것이 항상 진실은 아니다"며 "다행히 카산드라의 경고를 경청하는 언론인,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지적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구글(www.google.com)에서 'Peak Oil'이 포함된 문서를 검색해보면 관련 문서가 최근(2006년 11월 말 기준) 6개월 새 300만 개에서 1000만 개로 늘어났다"며 "2001년 창립된 ASPO도 현재 총 19개 국가로 그 네트워크가 확대되었고 조만간 일본, 중국에도 설립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특히 "석유 공급의 안정성을 미국 국민에게 안심시켜야 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인 이유로 현실을 왜곡하는 미국의 에너지정보청(EIA)이 제공하는 편향된 정보에만 의존하지 말고 세계적인 에너지 정책의 큰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석유 생산 정점에 대비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2006년 초에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된 스웨덴의 '2020 석유 제로(0) 선언'이 나오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스웨덴은 2020년까지 난방용으로 쓰는 석유를 '0'로 하고, 수송용, 산업용으로 쓰이는 석유도 현재 수준보다 20~4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알레크렛 의장 인터뷰 전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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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환경 수도'로 불리는 프라이부르크 시내에서 3㎞ 떨어진 보봉(Vauban) 마을. 보봉 마을에 들어서면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된 건물들 사이로 허름한 건물이 하나 눈에 띈다. 이 건물은 1992년 프랑스 군이 철수할 때까지 숙소로 사용하던 것을 개·보수해 난방 에너지 소비량이 연간 100㎾h/㎡도 안 들게 만든 서민 공동주택이다.
1990년에 보봉 마을로 이주한 후, 이렇게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생태 주거 단지'를 만드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안드레아스 델레스케 씨는 "풍력, 태양 에너지를 확충하는 것만큼이나 새로 집을 짓거나 개보수할 때 난방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절약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델라스케 씨는 "독일에서 난방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2002년부터 새로 집을 지을 때 연간 난방 에너지 소비량을 기존 주택(약 200㎾h/㎡)의 2분의 1 수준 이하로 맞추도록 정한 것도 이런 사정 탓"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보다 풍력, 태양 에너지 사용이 1000배 많아져도 석유 시대만큼 풍족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양차 석유파동 이후 사라졌던 목소리가 20년 만에 전 세계에서 메아리가 돼 돌아오고 있다. "아껴라, 아끼는 것만이 살 길이다." 그간 에너지 '공급'에 초점을 맞췄던 세계 각국이 최근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양대 '에너지 폭식 국가'인 미국, 중국을 주목해야 한다.
에너지 절약은 환경주의자의 것이라고 폄하하던 미국이…
2001년 5월,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수개월도 안 돼 딕 체니 부통령은 '국가 에너지 정책(NEP)' 보고서를 내놓으며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국가 에너지 안보는 미국 경제와 성장을 돕는 충분한 에너지 공급에 달려 있다"며 에너지 안보가 미국의 외교 정책 순위의 가장 앞줄에 있음을 선언했다.
2003년 3월, 결국 미국은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세 번째로 많은 이라크를 석연치 않은 이유로 침공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가 석유 탓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바그다드로 진입한 미군은 다른 공공기관의 약탈을 방관하면서 이라크 석유부는 충실히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랬던 미국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등 산유국에서의 영향력 확대 등 '공급'에만 초점을 맞춰 왔던 에너지 정책에 '절약'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이런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부시 대통령이 2006년 1월 발표한 새로운 안(Advanced Energy Initiative)이다. 이 안은 석유 소비 억제를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목표로 정했다.
5년 전 체니 부통령이 "환경주의자들의 주장하는 에너지 절약이 개인적인 덕목인지는 몰라도 에너지 정책을 위한 기본 요건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부시 행정부는 에너지 위기가 미국인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에너지 정책을 펼쳐 나갈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알 수 있다.
에너지 폭식 국가, 중국의 변화
이런 변화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을 블랙홀처럼 흡입해 오던 중국도 변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2001~2005년 국내총생산(GDP)이 9.5% 오르는 성장을 하는 동안 에너지 소비량이 무려 55%나 급증했다. 문제는 중국이 똑같은 GDP를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 소비량이 미국과 비교해도 무려 3.3배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최종 확정된 '제11차 5개년(2006~2010) 계획'에서 "2010년까지는 GDP 1000달러를 창출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2005년과 비교해 20% 감축되도록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경제 정책에 에너지 효율 수치 목표를 넣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에너지 공급에 치중해 왔던 중국도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EU는 2005년 에너지 효율 개선을 강조한 새로운 정책(Green Paper on Energy Efficiency : Doing More With Less)을 내놓았다. 이 안은 "고유가 사태와 같은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지적했다.
EU 역시 2000년 내놓은 정책(Green Paper : Towards a European strategy for the security of energy supply)과 비교하면 변화가 두드러진다. 2000년에는 에너지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에너지 공급의 안전성 확보"에 두며 "풍력,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의 개발·보급 확대"를 강조했었다.
자원 전쟁 해봤더니…
그렇다면 이렇게 에너지 절약 정책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2000년대에 전개된 이른바 '자원 전쟁'이 큰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다수의 에너지 소비국이 과열 경쟁을 하면서 오히려 모두의 이익을 해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그 단적인 예다. 미국이 이라크 점령을 선언한 뒤에도 사실상 내전 상태가 계속되면서 이라크의 석유 생산은 오히려 줄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 유발하는 서남아시아 갈등은 이곳의 위험을 증폭시키며 도리어 고유가 사태를 지속시키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러시아(석유 수출량 : 2위), 베네수엘라(5위) 등 산유국의 자원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추세도 자원 전쟁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게 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6년 4월을 기점으로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가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선언한 것이나, 12월 사할린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개발하던 로열더치셸 등이 러시아 공기업 가즈프롬에 지분의 절반을 넘긴 것도 그 한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에너지 절약 정책이 주목받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2005년 2월 발효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다. EU, 일본 등은 당장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의 배출을 1990년과 비교해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이같은 고유가 사태, 온실가스 배출 등의 문제를 가장 확실하게 줄이는 길은 현단계에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EU, 일본 등에 의해 '사다리 걷어차기' 전략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도 미국, 중국 등을 다급하게 하고 있다. EU는 2005년 8월 11일, 에너지 효율이 높고 환경을 고려한 제품 설계를 의무화한 'EuP(Energy using Products)' 지침을 2008년부터 적용할 것을 발표했다.
미국, 중국 등이 자국 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지 않을 경우 이런 지침은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인텔, 제네럴일렉트릭(GE) 등이 최근 들어 부쩍 다음 세대 제품의 경쟁력은 성능보다는 에너지 효율을 얼마나 높이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해온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2004년부터 '탈석유 전쟁에서 승리하기(Winning the Oil Endgame)'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로키마운틴 연구소의 에머리 로빈스 소장은 20년 만에 부는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의 방향 선회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우리가 '아껴 쓴 에너지'야말로 '가장 싸고 깨끗한 에너지'라는 사실을 이제야 세계가 인식하기 시작했다."
참 한가하다, 한국! 석유 한 방을 나지 않는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에너지 소비는 지난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경제 성장에 비례해서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1990년대 들어 과거와 같은 높은 경제 성장이 지체되는 상황에서도 에너지 소비는 계속 1970~80년대처럼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나라와 비교하면 상황의 심각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2005년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를 석유로 환산하면 약 4.43t 정도다. 이 양은 1인당 국민소득(GNP)이 3만 달러에 달하는 일본(4.18t), 독일(4.22t), 영국(3.91t) 등을 앞지르는 수준이다. 물론 미국(7.84t)과 비교하면 훨씬 낮다. 이렇게 경제 규모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훨씬 큰 데는 '공급'에만 초점을 맞춰 온 에너지 정책의 탓이 있다. 한 번 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자. 한국은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완만하게 된 1995~2005년 10년 동안 에너지 소비가 약 50% 이상 증가했다. 반면 네덜란드, 영국의 에너지 소비는 1980~2000년의 기간에 약 20% 증가했고, 덴마크에서는 같은 기간 에너지 소비의 변동이 없었다. 뒤늦게 한국 정부도 에너지 절약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28일 국가에너지위원회 출범에 맞춰 발표된 '2030 에너지 비전'에서 GDP 1000달러를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를 2030년까지 석유 0.2t 수준(2005년 : 0.358t)으로 낮출 것을 공언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참으로 낯뜨거운 내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정부는 2004년 12월 제10차 국가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에서 GDP 1000달러를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를 2012년까지 0.294t 수준으로 떨어뜨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2012년 이후 20년간 고작 0.094t 수준을 떨어뜨리는 데 만족하겠다는 것인가? 지금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수준(0.201t)을 염두에 두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30년 한국이 OECD 평균 수준에 맞출 경우 EU, 일본 등은 이미 훨씬 더 앞서 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의 에너지 공급 정책을 계속 비판해 온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 생산 정점 사태가 온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
100년만에 부활한 식물연료…시민이 이루는 '탈석유' | ||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3> 수송연료의 전환 |
이런 그라츠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자동차에 석유를 넣지 않는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0여 년간 동서 유럽의 관문 역할을 했던 그라츠가 21세기 '석유 시대'와 '탈(脫)석유 시대'를 잇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미래의 수송연료로 각광 받고 있는 '식물연료'가 있다.
고소한 냄새 풍기는 버스
도시 서쪽에 위치한 그라츠 역에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역 앞 광장에 길게 늘어서 있는 초록색의 벤츠 버스들이다. 시내 곳곳을 운행하는 150대의 버스는 단 한 대도 예외 없이 모두 바이오디젤유(BD100)로 움직인다. 이 바이오디젤유는 모두 그라츠 시, 인근의 레스토랑, 가정에서 수거된 폐식용유를 원료로 만든다.
버스뿐만이 아니다. 그라츠 시에서 운행하는 택시의 60%도 바이오디젤유를 연료로 사용한다. 그라츠 대학 마틴 미텔바흐 교수는 "버스, 택시에 100% 폐식용유를 이용해 만든 바이오디젤유를 사용한다"며 "버스 뒤에 서 있으면 매캐한 냄새 대신에 감자를 튀길 때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폐식용유로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독일의 기술자 루돌프 디젤이 1900년 프랑스 파리 자동차 박람회에 내놓은 세계 최초의 디젤 엔진 자동차 '오토 컴퍼니'는 콩기름으로 움직였다. '사막의 여우' 로멜 장군이 전차를 움직일 연료가 부족하자 전차에 경유 대신 폐식용유를 넣어 위기를 극복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숨은 일화다.
그러나 이렇게 콩기름과 같은 식물 기름을 이용해 자동차를 움직이는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듯했다. 값싼 석유의 등장으로 콩기름으로 가는 자동차를 상상했던 디젤의 꿈은 20세기 내내 유예되었기 때문이다. 1985년 미텔바흐 교수가 식물 기름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폐식용유 수거해 버스 연료 생산
그라츠 시가 미텔바흐 교수의 바이오디젤유에 처음 주목한 이유는 대기오염 탓이었다. 미텔바흐 교수는 "산으로 둘러싸인 그라츠는 특히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했다"며 "바이오디젤유(BD100)는 경유에 비해 미세먼지가 55.4%나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오염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서울시가 경청할 만한 대목이다.
그라츠 시는 우선 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내뿜는 운송수단인 버스에 이 바이오디젤유를 넣기로 결정하고, 1994년 처음으로 2대의 버스에 바이오디젤유를 넣었다. 이렇게 시작된 '에너지 전환'은 10년 만인 2005년에 완성되었다. 그라츠의 가장 큰 택시 회사(Taxi 878)가 이런 에너지 전환에 동참하면서 그라츠 시는 자동차에 석유를 넣지 않는 도시로 더욱 가까워져 갔다.
바이오디젤유의 원료가 되는 폐식용유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미텔바흐 교수는 "그라츠에서 쓰이는 폐식용유는 시내와 반경 50㎞ 이내의 레스토랑,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매장 등에서 나온다"며 한 주일에 2~3번 정도 자동차가 다니면서 수거하는데 그 양은 연간 2000~3000t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폐식용유 수거가 제대로 이뤄지면 연간 40만~50만t의 바이오디젤유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독일과 비교했을 때 오스트리아의 식물연료 정책은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세계가 바이오디젤유에 주목하고 있다"며 "시작할 때만 해도 채 20년도 안 돼 세계의 주목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덧붙였다.
지구 온난화 막는 식물연료
미텔바흐 교수의 지적대로 상황이 변했다. 1990년대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이 전 세계 국가의 화두가 되고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발효가 임박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식물 연료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했다. 온실가스를 내뿜는 수송 연료를 대체할 수단으로 식물 연료가 떠오른 것이다.
유럽연합(EU)은 2010년까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3억2000만t 줄여 교토의정서가 규정한 감축 목표량(1990년 대비 평균 5.2%)의 95%를 달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식물 연료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여줄까? 바이오디젤유(BD100)를 디젤 엔진 자동차에 넣을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경유에 비해 78% 낮아진다.
바이오디젤유와 같은 식물 연료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탁월한 것은 식물 연료가 콩, 유채, 야자수처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식물에서 직접 나오기 때문이다. 식물이 자라면서 대기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디젤기관이 연소해 다시 배출하는 식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EU는 바이오디젤유나 화학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순수 식물성 기름을 통틀어 '수송용 식물연료'로 규정하고 그 사용 범위를 확대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3년 EU는 2010년까지 수송연료의 5.75%를 식물 연료로 대체하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에는 전체 수송연료의 25%를 식물연료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05년 현재 그 점유율이 0.97%에 불과한 것에 비춰보자면 대단히 야심만만한 계획인 셈이다.
20㎞마다 식물연료 주유 가능해
2000년대 들어 계속된 고유가 사태는 바이오디젤유와 같은 식물연료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전 세계에서 바이오디젤유 생산량, 소비량이 가장 많은 독일의 경우 2000년 24만9000t에 불과했던 바이오디젤유 생산량이 2005년 235만t으로 늘었다. 독일 전국 1900곳 주유소에서는 직접 소비자에게 바이오디젤유(BD100)를 주유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에너지·환경 연구소의 귀도 라인하르트 국장은 "독일에서는 20㎞만 가면 100% 바이오디젤유(BD100)를 넣을 수 있는 주유소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독일 곳곳에서는 벤츠, 아우디와 같은 디젤 엔진 승용차에 서슴지 않고 바이오디젤유를 넣는 시민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슈트트가르트의 한 주유소에서 만난 팀 폴머(31) 씨는 자신의 아우디(A6) 승용차에 바이오디젤유를 넣고 있었다. 폴머 씨는 "자동차 회사에서 요구한 대로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를 설치했기 때문에 BD100을 넣어도 문제 될 게 없다"며 "경유에 비해서 싼 데다 환경에도 기여하기 때문에 바이오디젤유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란 경유에 비해 점도가 높은 식물연료에 열을 가해 기체 상태로 디젤기관에 분사하는 장치다. 독일에서는 일부 승용차에 화학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순수 식물연료나 BD100을 넣을 때에는 이 장치를 부착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필터가 막히는 것과 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거꾸로 가는 한국
그라츠에서 수송연료의 전환을 목격하고 있던 2006년 11월 말, 한국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있었다. 자동차를 개조해 폐식용유를 연료로 사용한 오 모(45) 씨가 연료장치 불법개조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것. EU에서는 바이오디젤유뿐만 아니라 순수 식물연료도 수송연료로 규정해 적극 권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폐식용유를 정제해 순수 식물연료로 개발한 네오텍의 이근태 대표는 이렇게 '거꾸로 가는' 한국에서 가장 큰 피해자다. 이미 2년 전에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의 국산화까지 성공해 놓았지만 정부가 순수 식물연료를 수송연료로 인정하지 않아 속만 탈 뿐이다. 그는 이렇게 씁쓸하게 말했다.
"탈석유 시대를 준비하는 자발적인 흐름도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절망이 깊어간다"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식물연료, '밭에서 캐는 황금' 맞아?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과 같은 식물연료는 최근 '밭에서 캐는 황금'이라고 선전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뜨거운 관심의 한편에서는 과연 식물연료가 지구 온난화를 막으면서 석유를 대신할 수 있는 연료인지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이오디젤을 최초로 개발한 화학자 미텔바흐 교수에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쟁점에 대해 물었다. 미텔바흐 교수는 그라츠 대학에서 가장 바쁜 교수 중 하나다. 인터뷰를 한 2006년 11월 22일의 바로 전날까지도 그는 인도네시아에 있었다. 그는 마침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2006년 8월을 포함해 네 번에 걸쳐 한국을 찾아 국내 사정에도 밝았다. - 2005년 독일의 자동차업체는 새로운 디젤엔진 승용차에 바이오디젤유(BD100)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산화질소(NOx)를 엄격히 규제한 새로운 '배기가스 배출기준(Euro Ⅳ)'을 바이오디젤유가 만족시키지 못한 탓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바이오디젤유는 경유와 비교했을 때 오염 물질이 급격히 저감되지만 유독 산화질소가 증가한다. 한국에서도 이것을 이유로 바이오디젤유의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버스, 트럭처럼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을 많이 내뿜는 디젤엔진 자동차의 경우에는 바이오디젤유를 사용했을 때의 장점이 월등하다." - 월드워치연구소와 같은 기관은 식량 문제를 이유로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콩(바이오디젤), 밀(바이오에탄올), 옥수수(바이오에탄올)와 같은 식량 작물이 수송연료로 쓰이는 데에 부정적이다. 더구나 일부 환경단체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서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만드는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나는 낙관적이다. 우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정부가 열대우림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면서까지 플랜테이션을 조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환경단체가 계속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지금 나는 콩, 팜 대신에 자트로파와 같은 식물로 바이오디젤유를 생산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연구 중이다. 자트로파는 독이 있어서 먹지 못하는 데에다 열대 지방에는 지천에 널려 있다. 이렇게 쉽게 수확할 수 있으면서도 식용으로 쓰이지 않는 식물에서 바이오디젤유를 얻어낸다면 식량 작물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바이오에탄올의 경우에는 최근 셀룰로오스를 에탄올로 전환하는 효율적인 과정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령 짚, 줄기, 나무껍질에서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다면 굳이 식량으로 쓰이는 데에다 물 낭비도 심한 밀, 옥수수를 생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을 테니까." - 옥수수와 같은 작물을 재배해 바이오에탄올을 만드는 전 과정을 염두에 두면 화석연료와 비교했을 때 에너지 효율, 환경 영향 등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옥수수에서 생산된 바이오에탄올이 화석연료보다 온실가스를 더 많이 내뿜는다는 연구도 있었다. "옥수수에서 생산하는 바이오에탄올의 경우에는 논란이 있다. 여러 가지 연구가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정확히 뭐가 맞는지 말하기 어렵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바이오디젤의 경우에는 그런 논란이 없다는 것이다. 바이오디젤은 경유를 사용하는 것보다 환경 친화적이고 에너지 효율도 높다." - 바이오디젤과 같은 식물연료를 이용해 지금처럼 자동차 시대를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식물연료는 석유의 3분의 1 정도를 대체하는 것이 최대일 것이다. 그럼 그 나머지는? 30~50년이 걸리겠지만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등이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모두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또 다른 방법을 개발하지 않을까? 전체 에너지를 염두에 두면 바이오에너지, 지열, 풍력, 태양 에너지 등이 10~20%씩 석유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 1980년대 중반이면 석유 값이 매우 쌀 때다. 그 때 바이오디젤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 놀랍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항상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린피스의 회원은 아니지만 그들의 활동에 관심도 많고 지지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화학자로서 지구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식물연료 연구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는 불과 20년 만에 이렇게 전 세계가 나의 연구에 관심과 성원을 보낼 줄 몰랐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과학자다." |
"에너지 위기, 똥 귀한 줄 알아야 극복한다" | ||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4> 바이오매스의 부상 |
진실은 이렇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열병합 발전소는 나무를 땔 때 발생하는 뜨거운 가스를 이용해 물을 데운다. 이렇게 데워진 물은 총 연장 8㎞의 관을 타고 이동해 지역의 각 가구에 열을 공급한다. 물을 데우는 것은 물론이고 처음 투입된 에너지의 약 15%는 전기를 생산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그렇다면 네카스울름의 열병합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나무는 어디서 온 것일까? 발전소 기술 책임자 지그베르트 에펜베르거 씨는 "그대로 두면 모두 썩어 없어질 나무를 수거한 것"이라며 "벌목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 숲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폐목 등이 주로 땔감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조각난 나무 자투리 1㎥는 통상 약 80ℓ(전기 750㎾h)의 석유가 발생시키는 에너지에 맞먹는다.
가축의 똥오줌으로 전기 생산
석탄, 석유에 밀렸던 나무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나무뿐만이 아니다. 독일의 괴팅겐 근처 윤데에서는 가축의 똥오줌이 소중한 에너지 자원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가축의 똥오줌과 옥수수, 보리 건초를 섞어서 썩힐 때 나오는 메탄(CH₄)가스를 태워 전기를 생산한다. 또 이 때 발생하는 열로 물을 데워 마을의 난방을 해결하고 있다.
윤데의 이런 시도를 주도했던 게르트 파펜홀츠 씨는 "이 발전소에 건초와 가축의 똥오줌을 공급하는 농가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메탄을 포집하고 남은 찌꺼기를 유기 비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h당 최고 17.5센트를 지불하고 20년간 전기를 안정적으로 팔 수 있는 것도 부가적인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에서 수십 년간 에너지 자원으로 사용되지 않던 가축의 똥오줌, 건초, 나무 등이 이렇게 주목받게 된 데는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영향이 크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는 이들을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를 추가로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자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초, 나무를 태울 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이미 성장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그만큼 흡수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이산화탄소의 추가적인 배출이 없다는 것이다. 가축의 똥오줌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그 자체로 온실가스이기 때문에 태워 없애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일이다.
이런 사정 탓에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는 화석연료 대신 가축의 똥오줌, 건초, 나무는 물론 식물에서 유래한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 등 '바이오매스(biomass)'를 사용하면 온실가스를 감축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로 윤데의 에너지 전환을 지원한 괴팅겐 대학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렇게 가축의 똥오줌, 건초, 나무 등 '바이오매스(biomass)'를 사용하면 한 마을당 연간 3300t의 온실가스의 감축이 가능하다.
유럽재생가능에너지협회(EREC)는 2010년까지 바이오매스, 풍력, 태양광, 태양열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3억2000만t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 중에서 바이오매스는 1억7600만t으로 전체의 55%에 해당한다. 풍력(9900만t), 태양광(220만t)과 비교하면 온실가스 감축에 바이오매스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풍력, 태양광으로는 역부족…바이오매스가 필수적
바이오매스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오매스는 별다른 전환 과정 없이 바로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기존의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다. 당장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석유 생산 정점에 대비해야 하는 유럽연합(EU)으로서는 큰 전환 비용이 들지 않는 바이오매스는 가장 좋은 미래 에너지 자원이다.
EREC의 자료를 보면 1995~2020년 사이에 재생가능 에너지 중에서 바이오매스는 10%(2000년), 21%(2010년), 24%(2020년)로 단연 그 비중이 높다. 풍력, 태양광 발전이 크게 증가해 재생가능 에너지가 전체 에너지의 3분의 1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바이오매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이오매스의 또 다른 장점은 저장이 용이한 것이다. 풍력, 태양 에너지의 경우에는 생산된 전기를 저장하기 어렵다. 바이오매스는 일단 저장했다가 겨울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난방 연료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다. 저장을 했다가 온도 변화에 따라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난방 연료로 사용하기에 제 격인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장점 탓에 EU의 바이오매스 이용은 최근 수년간 급속도로 증가했다. 가축의 똥오줌, 건초 등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이용해 소규모 발전을 하는 곳은 독일에만 3500곳(2005년)이나 된다. 이 중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1100곳이 2005년 한 해 동안 지어진 것이다.
바이오매스, 또 다른 환경오염?
물론 바이오매스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환경단체 분트(BUND)도 그 중 하나다. 분트의 바이오매스에 대한 비판은 특히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과 같은 수송 연료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이 단체는 열병합 발전소에서 바이오매스를 태울 태, 나오는 일산화탄소(CO), 산화질소(NOx) 등 오염 물질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에 대해서 열병합 발전소를 운영하는 이들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며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에펜베르거 씨는 "네카스울름의 열병합 발전소에서도 나무를 태울 때 나오는 약간의 오염 물질은 거의 100% 걸러지기 때문에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은 거의 없다"며 "네카스울름의 환경단체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역시 열병합 발전을 통해 난방을 하고 있는 프라이부르크 보봉의 안드레아스 델레스케 씨도 "바이오매스를 태울 때 나오는 오염 물질은 양도 적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걸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며 "바이오매스의 사용을 주저할 때 타 없어지는 석유, 천연가스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델레스케 씨는 "풍력, 태양광 발전의 급격한 확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바이오매스는 화석 연료의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개인적으로 바이오매스를 태양 에너지와 똑같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똥 귀한 줄 모르는 한국 최근 스웨덴의 '2020년 석유 제로(0) 선언'의 핵심은 바이오매스의 확대였다. 2020년까지 난방 연료로 석유를 나무, 건초 등으로 대체할 계획을 밝힌 것이다. 유럽뿐만이 아니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최빈국에서는 큰 기술 전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매스의 효율적인 이용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재생가능 에너지 중에서도 바이오매스에 대한 관심이 낮은 편이다. 신·재생에너지 법에 바이오매스가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전체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2011년에도 바이오매스의 비중은 현재 수준과 비슷할 전망이다. 이상훈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의 추정을 보면 가축의 똥오줌과 기타 음식물이 썩는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가스가 연간 13억4000㎥이고 여기서 연간 2600GWh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며 "가축의 똥오줌을 활용한 발전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2600GWh는 원자력 발전소의 연간 발전량의 20~50% 수준이다. 이상훈 실장은 "이런 식으로 가축의 똥오줌을 처리하면 양질의 퇴비를 얻을 수 있어서 발효가 덜된 똥오줌을 들판에 뿌릴 때 생기는 악취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며 "정부가 생산된 전기를 상당 기간 높은 가격으로 구매한다면 이런 움직임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 농림부, 환경부는 이런 목소리에 큰 관심이 없다. 이미 농림부, 환경부는 2013년까지 총 2조 원을 조성해 가축의 똥오줌을 비료로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9월 28일 공포된 '가축 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을 보면 가축의 똥오줌을 비료로 사용하는 방안만 명시돼 있을 뿐 에너지 정책과의 연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난방이 필요 없는 집? 꿈이 아닙니다" | ||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5> 생태 건축의 현장 |
하노버 남동쪽 높은 지대에 위치한 크론스베르크는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저 독일 중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밀, 사탕수수 밭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독일에서 손꼽히는 생태 마을로 탈바꿈했다. 2000년 박람회의 주제어대로 '인간, 자연, 기술'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1만5000명의 주민이 살도록 설계된 크론스베르크는 그 세 가지 개념을 매개하는 고리로 태양 에너지를 선택했다.
난방이 필요 없는 집, 패시브하우스
생태 마을 크론스베르크의 상징은 바로 다양한 생태 건축이다. 크론스베르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택은 자연 상태의 태양 에너지 외에는 따로 난방이 필요 없도록 지은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다. 이 패시브하우스는 독일, 스위스 등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패시브하우스는 에너지를 아주 적게 사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주택이다. 이 집은 난방을 할 때 쓰이는 에너지가 연간 15㎾h/㎡를 넘지 않게 설계된다. 이 수치는 보통 집에서 쓰이는 난방 에너지의 10~20% 수준에 불과하다. 2000년대 이전 독일에서 지어진 집의 연간 난방 에너지 소비량이 200㎾h 정도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사실상 난방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보다 훨씬 햇볕이 덜 드는 크론스베르크에서 이렇게 난방 에너지를 절약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해가 비칠 때 가능한 한 많은 햇볕을 받아들여 집을 데운 후, 그 열을 가능한 한 적게 밖으로 내보내도록 한 것이다. 집으로 들어온 햇볕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에너지 절약 정신이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이다.
우선 크론스베르크의 모든 집은 남향으로 짓는다. 햇볕을 집 내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남쪽으로 난 커다란 창은 기본이다. 문제는 이렇게 받아들인 햇볕으로 확보한 열을 외부로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단열' 기술이 힘을 발휘한다. 바닥, 지붕, 벽, 창틀은 물론 유리까지 단열을 고려한 것이 쓰인다.
단열을 위해 쓰이는 '3중 유리'는 그 한 예다. 유리 사이에는 공기 대신 아르곤(Ar), 크세논(Xe)이 주입된다. 아르곤, 크세논은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낮고 결로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크론스베르크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카린 엥앨케 박사는 "3중 유리를 사용할 경우 대기가 영하 10℃일 때 집 안은 영상 17.3℃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냉방도 필요 없어…가격은 10% 비싼 수준
이렇게 열을 가둬두려다 보면 환기는 어떻게 할까? 따로 난방을 하지 않는 패시브하우스이다 보니 추운 겨울에 환기를 위해 창을 잠시만 열어도 집안의 온도는 급격히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겨울철 내내 신선한 공기를 포기하며 살 수도 없는 일이다. 패시브하우스는 별도의 환기 장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패시브하우스의 지붕에는 두 개의 관이 있다. 하나는 바깥으로 실내 공기를 내보내는 관이고, 다른 것은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들여오는 관이다. 바깥 공기도 그냥 들어오지 않는다. 열 교환기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지는 실내 공기로부터 빼앗은 열로 데워진 뒤 실내로 들어온다. 0℃의 실외 공기는 열 교환기를 거치면 18℃가 된다. (20℃의 실내 공기는 밖으로 나갈 때 2℃가 된다.)
엥앨케 박사는 "이런 패시브하우스는 여름에도 따로 냉방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크론스베르크의 패시브하우스는 태양의 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적어지도록 설계했다. 집을 둘러싼 단열재는 바깥의 뜨거운 열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막는다. 더운 여름에 찬물을 단열재로 감싸두면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패시브하우스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엥엘케 박사는 "새로 지어진 같은 평수의 주택보다 10% 정도 비싸다"며 "이 정도라면 난방비로 수년 내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데는 단열재, 환기 장치를 설치하는 데 비용이 더 드는 대신, 난방 장치를 설치하는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에는 6000가구의 패시브하우스가 있다. 독일에서는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건축회사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엥앨케 박사는 "크론스베르크에 있는 패시브하우스는 32가구이며 앞으로 개발이 진행될수록 더 늘어날 것"이라며 "패시브하우스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값 싸고 효율이 높은 단열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꼭 필요한 난방은 태양 에너지로
물론 난방이 필요한 집들도 있다. 이렇게 난방이 필요한 집에서는 태양열을 이용해 필요한 에너지의 절반을 얻는다. 그러나 정작 햇빛이 가장 뜨거운 여름에는 난방이 필요 없다. 엥앨케 박사는 "여름에 햇볕을 이용해 데운 물을 단열재로 감싸 추운 겨울까지 저장했다가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크론스베르크 외곽에 위치한 지름 20m, 높이 10m의 언덕이 바로 그 온수를 저장하는 수조다.
70㎝의 단열재로 감싼 이 수조에는 크론스베르크 106가구에 설치된 태양열 집열판에서 모은 열로 데워진 물 2750㎥가 저장돼 있다. 엥앨케 박사는 "이렇게 저장된 물은 겨울까지 온도가 90℃를 유지되도록 관리된다"며 "가을, 겨울에도 여름보다는 적지만 햇볕이 계속 들기 때문에 온수의 온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물이 겨울에 크론스베르크의 각 집을 이동하면서 난방도 하고 또 물을 데우는 데에도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크론스베르크에도 열병합 발전소가 있다. 태양열을 이용해 난방을 하고 모자라는 부분(50%)은 바로 이 열병합 발전소에서 얻은 열을 이용한다. 엥앨케 박사는 "열병합 발전소에서도 나무를 때 전기를 얻기 때문에 난방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는 나무와 같은 '바이오매스(biomass)'를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를 추가로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자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초, 나무를 태울 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이미 성장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그만큼 흡수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이산화탄소의 추가적인 배출이 없다는 것이다. )
엥앨케 박사는 "크론스베르크가 이렇게 생태 마을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노버 시가 일방적으로 계획하지 않고 거주할 주민, 건축가, 환경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4년간에 걸쳐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한 덕이 컸다"며 "크론스베르크는 21세기에 도시가 어떻게 개발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라고 덧붙였다.
빗물 한 방울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크론스베르크는 가장 최근에 조성된 생태 마을답게 곳곳에서 참신한 시도가 눈에 띈다. 이곳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을을 지나는 고속도로를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언덕이다. 마을과 도로를 분리해 자연스럽게 방음벽 역할을 하는 이 언덕은 원래 있던 게 아니라 크론스베르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흙으로 쌓은 것이다. 크론스베르크의 토양 유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할 때 나온 흙의 88%는 인근 4㎞ 이내에서 다시 사용되었다. 탄성을 자아내는 이런 세심함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크론스베르크에 지어진 건물의 상당수는 옥상, 벽면, 테라스에 각종 정원을 조성해 놓고 있다. 엥앨케 박사는 "가능한 모든 곳에 녹지를 조성하려고 했다"며 "원래 밭이었던 곳을 개발하는 만큼 녹지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론스베르크는 물 한 방울 허투루 버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크론스베르크 곳곳에 설치된 도랑은 빗물이 바로 흘러내리지 않고 서서히 밑으로 스며들도록 특별히 고안한 것이다. 이렇게 밑으로 스며든 빗물은 도랑 밑에 설치된 배수관을 통해 빗물 저장 수조로 이동한다. 이렇게 저장된 빗물은 초등학교 주변에 조성된 연못으로 흘러간다. 엥앨케 박사는 "연못에 별다른 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기존 크론스베르크 생태계와 유사하게 조성해 자연스럽게 동식물이 섞이도록 했다"며 "학교에서는 연못 생태계를 학생의 환경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못은 초등학교에 허드렛물을 공급하는 기능도 한다. 엥앨케 박사는 "이렇게 연못을 사용함으로써 이 초등학교는 연간 약 550㎥의 물을 절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빗물을 모아 연못을 조성한 예는 크론스베르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빗물을 이용해 정원에 연못도 조성하고, 그 물도 이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
"'윤데의 기적', 그 비밀이 궁금하세요?" | ||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6> 시민 참여의 현장 |
그러나 이 마을은 지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세계 곳곳에서 이 마을을 방문한 이들만 5000명 이상이었다. 2004년 11월 19일에는 독일의 농업부, 환경부 장관이 직접 방문해 정부가 이 마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보여주기도 했다. 도대체 고작 750여 명의 인구가 사는 이 작은 마을이 뭐가 대단하기에, 이렇게 호들갑일까?
소비 전기보다 생산 전기가 많다
윤데의 외곽에는 동그란 돔 모양의 구조물 2개가 나란히 서 있다. 이것은 가축의 똥오줌과 밀, 옥수수 건초를 함께 썩혀서 메탄((CH₄)가스를 만드는 발효기다. 발효기가 돔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 것은 안에서 계속 생산되는 메탄가스의 압력 때문이다. 돔의 천 재질로 된 겉면 바로 밑에는 메탄가스가 새 나가지 못하도록 공기로 된 층이 있다.
이렇게 생산된 메탄가스는 바로 옆에 있는 열병합 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된다. 이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연간 4000㎿h. 윤데에서 연간 사용하는 전기(약 2000㎿h)의 2배에 가까운 양이다. 이 정도면 '에너지 자립'이 아닌 '에너지 플러스'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여야 할 판이다.
윤데는 이렇게 생산한 전기를 마을에서 직접 사용하지 않고 전량 외부로 팔고 있다. 윤데의 변화를 직접 주도한 게르트 파펜홀츠 씨는 "만약 열병합 발전소가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서 이 전력을 마을에 직접 공급하지 않고 있다"며 "'바이오매스(biomass)'로 생산한 전기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에 파는 게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난방은 물론 지역 농가 소득도 생겨
열병합 발전소에서는 전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전기를 생산할 때 나오는 열을 이용해 데운 물은 윤데의 난방을 책임진다. 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열은 연간 5500㎿h. 윤데에서 1년 동안 필요한 열(약 3500㎿h)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양이다. 윤데는 집집마다 열 교환기를 설치해 발전소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로 난방을 한다.
이 따뜻한 물은 집집마다 연결된 6㎞의 단열 처리된 관을 따라 이동하며 윤데를 따뜻하게 한다. 파펜홀츠 씨는 "올 한 해 1750유로(약 210만 원)를 난방비로 사용했다"며 "만약 계속 석유로 보일러를 가동했더라면 1년간 2500유로(약 300만 원)는 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병합 발전소가 주는 이득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발전소를 가동할 때 필요한 메탄가스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가축의 똥오줌은 하루에 30㎥ 정도다. 이 가축의 똥오줌은 한 주일에 한 번씩 윤데에서 농사를 짓는 아홉 가구가 공급한다. 이 똥오줌은 윤데에서 사육하는 400마리의 소에서 나온 것이다.
소의 똥오줌과 섞이는 밀(63%), 옥수수(30%) 등 건초 역시 윤데에서 생산된다. 이렇게 똥오줌과 건초를 공급하는 농가는 연간 22만 유로(2억6000만 원)의 고정 소득을 얻는다. 발효기에서 메탄가스를 얻고 남은 부산물도 쓰레기가 아니다. 이 부산물은 바로 밭에서 쓸 수 있는 양질의 유기 비료가 된다.
파펜홀츠 씨는 "이 양질의 비료는 가축의 똥오줌과 건초를 공급한 농가에서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가져간다"며 "윤데의 농가는 거대 농업 기업으로부터 비료를 살 필요가 없어 또 다른 과외의 이득을 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광우병(BSE) 등으로 고사 직전이던 윤데의 농가에 모처럼 좋은 일이 찾아온 것이다.
'윤데 스토리'…그 중심에는 주민이 있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윤데는 충분히 주목 받을 만하다. 그러나 윤데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이 모든 일이 윤데 주민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윤데 스토리'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드라마를 기획한 곳은 괴팅겐 대학이었다.
유서 깊은 괴팅겐 대학에서 경제학, 사회학, 지리학, 환경학 등을 연구하던 이들이 결성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학제 간 연구 센터(IZNE)'는 1998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평소 자신들이 책상머리에서만 토론하던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 현실에서도 직접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이들은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기로 하고 수많은 마을에 에너지 문제의 해결책을 담은 자신의 구상을 보냈다. 관심을 보인 40여 곳 가운데 1곳이 선택됐다. 바로 윤데였다. 이때만 해도 윤데 주민은 수동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윤데 주민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이다. 파펜홀츠 씨는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괴팅겐 대학에서 열린 설명회에 1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했다. 그 설명회에서 주민은 스위스의 빙하가 녹고 있는 사진, 석유 때문에 발생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 상태라면 200년 후에는 함부르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를 접했다. 대부분 40~50대였던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800년 역사의 윤데…'기적'을 이뤘다
윤데 주민은 우선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2001년 협동조합부터 결성했다. 초대 조합장은 당시 62세였던 파펜홀츠 씨가 맡았다. 일단 조합이 결성된 후에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단 조합원이 각각 1500유로(3구좌)씩 출자해 종잣돈 50만 유로(약 6억 원)를 마련했다. 그러나 시설을 마련하는 데 드는 약 530만 유로(64억 원)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처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중앙정부가 태도를 바꾸면서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윤데 주민은 포기하는 대신 연방정부, 지방정부를 계속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외지인의 참여도 이끌어 내 50만 유로가 추가로 마련됐다.
이렇게 3년이 지나자 꿈쩍 않던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태도가 바뀌었다. 결국 2004년 중앙정부(130만 유로), 지방정부(20만 유로)가 150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약속하면서 윤데 주민의 노력은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아진 돈에 장기 저리 혜택을 받은 은행 융자 280만 유로를 더해 2005년 9월 지금의 시설이 완성됐다. 지난 2005~6년 겨울을 성공적으로 넘긴 뒤 윤데 주민들은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파펜홀츠 씨는 "발전소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첫 해이다 보니 70~80%밖에 가동을 못해서 2006년에는 적자를 봤다"며 "2007년부터는 100% 가동이 가능 때문에 연간 100만 유로(약 12억 원) 매출에 20만 유로의 흑자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발전소에서 지출하는 돈의 대부분은 지역 경제에서 순환되기 때문에 다국적 석유 회사에게 돈이 흘러가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파펜홀츠 씨는 "윤데는 지난 6년간 800년 역사에서 가장 값진 경험을 했다"며 "특히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의 농촌에서 윤데의 경험을 토대로 또 다른 예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6년간은 내 삶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시간이었다"며 "나이 예순이 넘어서 이런 '기적'을 만드는 데 동참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덧붙였다.
프라이부르크 보봉…시민 참여가 마을을 바꿨다 생태 마을로 유명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보봉(Vauban) 역시 현재의 명성 뒤에는 주민의 참여가 있었다. 이곳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주둔지였으나, 독일이 패한 뒤 1992년까지는 프랑스 군이 주둔했다. 마을 이름 '보봉'은 프랑스 군이 주둔할 때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독일이 통일된 후 프랑스 군이 철수하자 이곳을 어떻게 개발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당시 프라이부르크는 싼 집을 얻으려는 서민에게 공급할 새로운 주거 단지를 찾고 있는 중이었고 보봉이 물망에 오른 것이다. 일단 보봉에 새로운 주거 단지를 마련하기로 결정되자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한 학생, 저소득층이 나서서 '보봉 포럼'을 만들었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활동한 이 보봉 포럼에서 오늘날의 '생태 마을'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이들은 일단 프랑스 군이 주택으로 사용하던 건물들을 개·보수해 난방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서민 주택을 만들기로 했다. 벽, 창, 지하실에 단열 처리를 하는 것이 개·보수의 핵심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연간 200~300㎾h 소비되던 난방 에너지는 50~100㎾h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봉 외곽에 있는 주차장에 자동차를 놓고 보봉 안에서는 가능한 한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한 원칙도 이 보봉 포럼에서 만들었다. 보봉 포럼을 주도했던 안드레아스 델레스케 씨는 "손님이 방문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처럼 일상적인 불편이 많아 자동차 진입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보봉에 거주하는 주민의 80%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다. 델레스케 씨는 "바로 집 앞까지 시내와 연결되는 지상 전철 '트램'이 운행되기 때문에 불편함이 전혀 없다"며 "가까운 거리는 물론 자전거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프라이부르크는 도시 전역에 400㎞의 자전거 도로가 있다. 보봉 포럼은 또 공동 주택 단지를 짓기 전에 건축가와 거주할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주택을 지을지 구상하는 전통도 만들었다. 보봉 곳곳에 다양한 외양을 가진 태양열 집열판, 태양광 발전기를 단 생태 주택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델레스케 씨는 기존의 주택을 개·보수해 연간 난방 에너지가 100㎾h 미만으로 사용하도록 한 주택에서 산다. 델레스케 씨는 "보봉이 지난 10년간 이뤄놓은 것은 큰 자본이나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며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이용해 에너지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또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
"우파 정부가 앗아간 '태양 도시'의 꿈" | ||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7> 정부의 역할 |
네덜란드가 '자전거의 나라'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 하나. 2004년 네덜란드에서 이슬람에 비판적인 한 영화감독이 독일계 모로코 인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 영화감독은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그를 암살하려던 이 역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권총을 쏘았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네덜란드에서 자전거가 널리 보급된 이유를 특유의 평탄한 지형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네덜란드에서 자전거가 널리 보급된 것은 1970년대 양차에 걸친 석유 파동을 호되게 겪은 뒤부터다. 도심 교통난 해결에 골몰하던 네덜란드 정부가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내놓은 대안이 바로 자전거 중심의 교통 정책이었던 것이다.
히어휴호바르트의 어긋난 꿈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정책이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성공했다면 에너지 정책은 뒷걸음질 치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치즈로 유명한 알크마르에서 5㎞ 떨어진 히어휴호바르트(Heerhugowaard)는 네덜란드 에너지 정책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여 년에 걸친 주민의 바람이 정부의 방치로 흐지부지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히어휴호바르트 생태 마을이 계획된 것은 1980년. 쾌적한 주거 지역을 원했던 알크마르 시민은 히어휴호바르트에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생태 마을이 조성될 것을 간절히 소망했다. 결국 지방정부, 중앙정부는 20여 년 만인 2002년부터 약 1만 명이 거주할 생태 마을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계획대로라면 히어휴호바르트에 지어질 거의 모든 주택의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기(총발전용량 3.5㎿)가 설치될 예정이었다. 알크마르에 계획된 1.5㎿급 태양광 발전기까지 포함하면 이 지역은 세계적인 태양광 발전 주거단지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2년 공사를 시작한 뒤 4년이 지난 지금, 히어휴호바르트의 모습은 이런 계획과는 달랐다.
얼른 보기에도 태양광 발전기는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히어휴호바르트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피아 포흘 노르란더 씨는 "2002년 개발을 시작할 때 정부가 약속했던 재정 지원이 축소되면서 태양광 발전기를 지붕에 부착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며 "유럽에서 손꼽히는 태양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우파 정부의 역습
히어휴호바르트의 태양광 발전기 건설이 축소된 데는 2002년 네덜란드 정치의 '대격변'이 한몫 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반 외국인 정서를 부채질하며 등장한 우파 정치인 핌 포르타운이 총선 9일 전 암살 당한 여파로 우파 정당들이 약진하면서 급격히 우파 정부가 대두하는 일이 발생했다.
집권한 우파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조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재정 지출을 급격히 축소하는 것이었다. 2003년 우파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인 170억 유로(약 25조 원)의 재정 지출을 삭감해 큰 충격을 줬다. 바로 이 때 태양광, 풍력 에너지를 지원하는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 정책도 철퇴를 맞은 것이다.
당시 우파 정부는 네덜란드 경제가 침체에 빠진 중요한 원인을 높은 임금, 복지ㆍ환경 분야의 '퍼주기'식 재정 지출로 시장의 활력이 떨어진 데에서 찾았다. 우파 정부는 이런 원인 분석에 따라 사회보장, 의료보험, 환경 분야의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런 조치는 특히 에너지ㆍ환경 분야에서는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할 때 주는 보조금을 폐지하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노르란더 씨는 "히어휴호바르트 시, 알크마르 시에서 중앙정부를 설득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지원받았다"며 "2003년 재정 지출이 삭감되자마자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겼고, 2004년부터는 시의 지원도 축소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태양광 발전기를 달면 집값이 비싸져 분양이 힘들다"고 덧붙였다.
노르란더 씨는 "이렇게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서 유럽연합(EU)에 지원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히어휴호바르트의 생태 마을은 태양광 발전기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계획을 제출해 EU로부터도 개발에 필요한 투자를 유치했다.
태양 마을 뉴란트의 성공
히어휴호바르트의 안타까운 모습은 아머스포르트의 생태 마을 뉴란트(Nieuwland)와 크게 대조된다. 아머스포르트는 우파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1990년대 후반 네덜란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태양광 발전 주거단지 뉴란트를 조성했다(1.3㎿급). 이곳은 풍력 발전에 치중하던 네덜란드 정부의 태양광 발전에 대한 투자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뉴란트는 계획 단계부터 태양광 발전기가 다양한 생태 건축과 조화를 이루도록 고려돼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태양광 발전 주거단지로 탄생했다. 특히 태양광 지붕을 단 주택 한 채를 반으로 나눠 두 가구가 거주하는 '제로 에너지 하우스'는 연간 1만5000㎾h의 전기를 생산해 사실상 연간 추가 에너지 수요가 '0'에 가깝다.
지붕 없이 분양된 열아홉 채의 단독 주택도 뉴란트에서 시도된 다양한 실험 중 하나다. 이 주택은 지붕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태양광 발전기를 올렸다. 이 태양광 발전기는 전력회사(REMU)의 소유다. 이 주택은 태양 전지판을 공장에서 생산해 현장에서 직접 조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뉴란트의 주택에서 또 눈여겨봐야 할 것은 태양광 발전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부착해 건축 형태의 다양성을 꾀한 점이다. 태양 전지판을 차양 장치로 활용하거나 주택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부착한 것이다. 이 중에는 90°로 태양 전지판을 부착해 효율이 20% 가까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한 경우도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
히어휴호바르트와 뉴란트의 다른 모습은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이 확대되는 데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노르란더 씨는 "히어휴호바르트도 정부 지원만 계속되었다"면 "뉴란드와 규모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태양광 발전 주거단지로 만들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노르란더 씨는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과 같은 에너지·환경 정책은 좌우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일인데 2003년 재정 지출이 축소되면서 제일 먼저 삭감된 분야가 바로 에너지·환경 분야"라며 "히어휴호바르트는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 확대에 정부 정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우파 정부, 그 때 그 때 달라요! 좌우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모두 네덜란드처럼 에너지 정책이 요동치지는 않는다. 2020년까지 석유의 난방 연료 사용을 '0'으로 만드는 내용은 담은 '2020 석유 제로선언'을 한 스웨덴이 대표적인 예다. 스웨덴은 지난 9월 총선에서 보수당, 자유당 등의 우파가 약진해 사회민주당을 꺾고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자유당 당원으로서 기존 사민당 정부의 '2020 석유 제로선언'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 ASPO(The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eak Oil) 쉘 알레크렛 의장은 "좌우가 바뀌더라도 스웨덴의 에너지 정책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며 에너지 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우파 정부 역시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의 도래, 지구 온난화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과 같은 문제의 시급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석유 의존을 줄이려는 좌파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것"이라며 "더구나 수십 년간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추진해 온 에너지 정책을 단숨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웨덴 역시 우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자력 에너지 정책 등에 있어서는 일부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스웨덴은 지난 1980년 국민투표를 통해 201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전부 폐쇄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우파 정부는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를 개·보수해 사용 연한을 늘리는 방침을 추진 중이다. |
"한국사회, 에너지 격변 감당할 준비 돼 있나?" | ||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8ㆍ끝> 급박한 세계, 느긋한 한국 |
이런 언론의 호들갑에도 저유가 시대가 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번에 유가가 급락한 데에는 예년에 비해 춥지 않은 미국 북동부의 날씨가 한몫 했다. 현재 미국 북동부의 난방유 소비는 예년의 30~40%를 밑도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 북동부는 세계 석유 소비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남은 두 달간의 겨울 날씨에 따라 석유 소비가 급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급락하는 유가를 그대로 방치할 리도 없다. OPEC은 2006년 11월부터 하루 12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정했으나 실제 감산 규모는 3분의 2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유가가 50달러 안팎에서 고착될 경우 OPEC은 추가 감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 2006년 말 OPEC은 오는 2월부터 50만 배럴을 추가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국제 석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투기 자금의 유입 가능성도 크다. 수급 상황에 비해 낙폭이 큰 지금이야말로 투기 자금이 석유를 매수하기에 적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 유가는 바닥에 근접했으며, 장기적으로는 50~60달러 선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유가가 오르기 전인 2002년, 유가는 20~30달러 수준이었다.
나는 일본, 기는 한국
불과 5년 전의 유가도 기억하지 못하는 언론의 저유가 시대 타령은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근시안적 태도로 일관하는 한국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대목이다. 이것은 한국과 여건이 비슷한 일본과 크게 대조된다. 일본 정부가 2006년 5월 발표한 '신국가 에너지 전략'을 같은 해 11월 한국 정부가 발표한 '2030 에너지 비전'과 비교해보자.
일본 정부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에너지 효율을 2030년까지 30% 추가 개선하기로 했다. 특히 일본은 산업 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는 것을 넘어 자동차, 가전 등의 에너지 효율을 대폭 향상시키기로 했다. 일본은 더 나아가 이런 에너지 효율을 중국을 비롯한 에너지 효율 개선이 절실한 국가로 수출하는 것까지 계획 중이다.
한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허점투성이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서둘러 만든 티가 곳곳에 보인다. 2030년까지 정부의 재생가능 에너지 비율을 9%로 올린다는 목표는 단적인 예다. 이미 정부는 2011년까지 재생가능 에너지 비율을 5%로 올리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왔다. 근 20년 동안 고작 4% 올리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석유의 양을 2030년까지 0.2t 수준으로 떨어뜨린다고도 했다(2005년 : 0.358t). 그러나 정부는 이미 2011년까지 0.294t 수준으로 떨어뜨린다고 공언해 왔다. 또 2005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0.201t 수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정부의 안이한 인식을 잘 알 수 있다.
'에너지 절약' 문제에 주목하라
한국의 안이한 대응과 달리 이미 세계는 고유가 시대를 본격적인 에너지 위기 국면을 경고하는 징후로 받아들이고 있다. 2006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석유 중독'을 경고한 것이나, 국제에너지기구(IEA), 미국 에너지국(DOE)이 공식적으로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을 경고하고 나선 것은 그 단적인 예다("부시는 왜 '석유중독'을 경고했을까?").
특히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변화도 엿보인다. '에너지 효율 제고'를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중심에 내세운 일본의 경우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듯이, '에너지 절약'이 전 세계 에너지 정책의 화두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간 '에너지 공급'만을 강조해 온 미국의 변화는 더욱 의미심장하다(20년 만에 부활한 목소리 "아끼고 또 아껴라").
이렇게 유럽연합(EU), 일본 등에서 에너지 절약을 에너지 정책의 중심에 놓게 된 데에는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 감축이 '발 등의 불'이 된 탓이 크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가 2005년 2월 정식으로 발효되면서 당장 2012년까지 1990년과 비교했을 때 온실가스를 평균 5.2% 감축해야 하는 이들로서는 에너지 효율 제고가 가장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수단이다.
지구 온난화의 부정적 효과가 기상 이변, 자연 재해 등으로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도 이런 분위기를 가속화하는 데 한몫 했다. 지난 10월 니콜라스 스턴 전 세계은행 부총재가 기후 변화의 경제적 비용을 분석하면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세계 GDP의 20%나 되는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래된 자원'의 부활
이미 1990년대부터 탈(脫)석유 시대에 대비하는 준비를 해 왔던 EU가 최근 들어 바이오디젤, 메탄(CH₄)가스와 같은 바이오가스 등 '바이오매스(biomass)'에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바이오매스가 부상한 데에는 풍력, 태양 에너지 등으로 대표되는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에 생각만큼 힘이 붙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100년 만에 부활한 식물연료, "에너지 위기, 똥 귀한 줄 알아야 극복한다").
유럽재생가능에너지협회(EREC)의 통계를 보면, EU는 전체 에너지 발전에서 재생가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15.1%(2000년 기준)다. 이 중에서 풍력(5.7%), 태양광(0.03%)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재생가능 에너지 비중이 20%로 증가하는 2010년에도 풍력(25%), 태양광(0.5%)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위기, 온실가스 감축 등을 바로 해결해야 할 EU로서는 당장 이용 가능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 주목받은 '오래된' 자원이 바로 바이오매스다. 수송연료로 식물성 기름(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을 활용하거나, 난방연료로 나무나 가축의 똥오줌에 건초를 섞어 썩힐 때 나오는 메탄가스를 때는 방식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EU의 재생가능 에너지 중에서 바이오매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0%(2000년), 21%(2010년), 24%(2020년)로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EREC는 재생가능 에너지가 세계 에너지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40년까지 50% 수준으로 확대한다면 그 중 바이오매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79%(2001년), 75%(2010년), 66%(2020년), 58%(2030년), 52%(2040년)나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래를 그리는 생태 마을
세계 곳곳에서 보이는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흐름은 정부,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생태마을 조성 움직임이다. 이런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신도시를 개발할 때,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과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를 모색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독일의 하노버 크론스베르크, 네카스울름, 네덜란드의 아머스포르트 뉴란트 등은 이렇게 신도시를 개발할 때부터 생태마을로 조성한 대표적인 예다. 이들 마을은 공통적으로 태양열,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난방, 생태주택, 태양광 발전기를 부착한 주택 등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마을의 전형을 보여준다("난방이 필요 없는 집? 꿈이 아닙니다").
크로스베르크의 홍보를 담당하는 카린 엥앨케 박사는 "기존 도시의 주거 단지를 생태마을로 바꾸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크론스베르크처럼 계획 단계부터 생태마을을 지향해 개발하면 기존 도시를 전환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에너지 절약형 주거 단지를 조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흐름은 기존의 도시의 주거 단지를 생태마을로 전환하는 것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보봉, 윤데 등이 그 대표적 예다. 이들은 주민이 주도해 기존의 주택을 개·보수하고, 교통 시스템을 정비하고, 기존의 난방 시스템을 태양열, 바이오매스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에너지 전환에 성공했다("'윤데의 기적', 그 비밀이 궁금하세요?").
보봉의 에너지 전환을 주도한 '보봉 포럼'에서 활동했던 안드레아스 델레스케 씨는 "새로 개발되는 마을은 전체 주거 공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기존의 도시를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델레스케 씨는 "주민이 머리를 맞대고 그 도시의 특성에 가장 맞는 생태마을을 그리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파티는 끝났다
에너지 문제는 당장 그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를 비롯한 많은 정부에서 에너지 문제는 당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에 밀려 미래로 유예되는 경우가 많다("우파 정부가 앗아간 '태양 도시'의 꿈").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점점 더 많은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들이 에너지 문제의 급박함에 눈을 뜨고 있다.
미국 ASPO(The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eak Oil)에서 활동하는 캘리포니아 뉴컬리지의 리처드 하인버그 교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국내에도 소개된 <파티는 끝났다>(신현승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 경고한다. "우리 문명과 생활양식에 갑자기 덮쳐올 엄청난 변화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과연 한국 사회는 그런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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