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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장사의 고민..

그린테트라 2006. 3. 11. 16:48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잘 나가는 쪽집게 강사는 아니었지만

월급으로 따지자면 일반 회사원들 월급의 두세배는 족히 버는..

--@@연봉 일억짜리 회사원들 말고요..^^--

 

그런데 자꾸 머리가 아파 오는 겁니다..

저한테 아이를 맡기러 오는 부모들에게 불문율처럼 제시하는

원칙중에 하나가 절대로 아이들에게 돈을 보내지 말라는..

하여 늘 통장으로 자동이체 되어 와도

돈이 들어올 때마다 머리가 아파오는데

정말 이러다가 내가 죽지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하여 매달리는 부모와 아이들을 뒤로하고

--과장 아닙니다..진짭니다..ㅋㅋ--

과감하게 그 일을 접었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서리..

 

그리고 결심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은 팔지 않겠다!!

 

그리고 김공장을 시작했지요..

눈에 보이는 것을 판다는 것은 역시나 훨씬 나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도 고질병이 도지는 겁니다..

원가를 훤히 알고 있는 저..

이익을 붙이는게 죄책감이 느껴집니다..

천상 장사꾼 스타일은 아닌 모양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합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고 돈은 벌어야 합니다..

그래서 타협점으로 찾은것이

남들보다 좋은 재료를 써서 좋게 만들겠다..

 

첨에 누구도 시도 하지 않았던

참기름과 들기름을 국산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조 원가는 올라가는데 가격은 높이 받을수가 없었습니다..

소매를 할때는 괜찮지만 도매를 해야 할때는

십원차이도 굉장하게 반응하지요..

 

그래서 영업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었지만

덕분에 고품질의 김을 요구하는 곳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지지 부진한 매출 속에서도 삼년쯤 버티고 나니

유기농 농산물을 취급하는 거래처들이 뚫렸습니다..

 

그런데 그곳들에서는 염산 치지 않은 김, 즉

옛날 방식대로 말뚝 박아 기른 지주식 김에,

국산 참기름과 들기름뿐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만드는 옥배유 대신 국산 현미유,

MSG들어가는 맛소금 대신

국산 구운소금을 사양으로 요구합니다..

 

저희 입장에서야 좋은 재료 써서 만드는 제품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선택해서 올라가는 원가는

고스란히 보전해주는 정말 보기 드문 거래처의 요구거든요..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국산 현미유를 만드는 곳은 국내에서 딱 한곳인데

독점의 영향인지 관성화 된 것인지

제품 관리에 소홀 합니다..

현미유에서는 특유의 쌀겨냄새(미강냄새)가 나는데

그게 일반 기름이 변질되서 나는 쩐내 비스무리 합니다..

그걸 잘 탈취해야 하는데 가끔씩 잘 탈취되지 않은 현미유가

저희에게 납품됩니다..

그 기름으로 김을 구우면 굽자 마자 쩐내 비스무리한

미강 냄새가 납니다..

일반 소비자들은 물론 쩐내와 미강 냄새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제품의 하자는 고스란히 저희 책임이 됩니다..

 

늘 제품의 품질을 요구하는 저희에게

그쪽 공장 사람들은 왜 딴데서는 불만이 없는데

너네만 난리냐..--그러면서 문득 옥배유랑 섞어 쓰라는

조언도 무의식중에 합니다..--

 

맛소금 대신 국산 구운소금을 쓰는것도 문제가 됩니다..

맛소금은 약간 단 맛이 나는 반면

구운 소금은 쓴 맛이 나지요..

조미료 맛에 익숙해져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소금으로 구운 김을 훨씬 맛이 좋다고 합니다..

똑같은 원초를 구웠을 경우에도 맛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거기다가 두 배 가까이 비싼 지주식 김도

김 상태가 균일하지를 않습니다..ㅠ.ㅠ

 

여기서 다시 제 고민이 시작 됩니다..

 

다른 회사보다 작게는 1~2배 많게는 6~7배 가격차이가 나는

재료를 써서 만드는 김이 클레임이 걸리고

반품이 되어오면 정말 애들 가르칠 때 머리 아팠던 것보다

2배는 머리가 아파오는 겁니다..

 

남편은 늘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다 맞추고 사느냐고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며칠 전에는

"아..나는 세상 사는게 정말 무서워요..

우리 애도 하나밖에 없는데

싹 다 정리하고 지리산 같은데 들어가

당신은 시쓰고 나는 글씨쓰고

조금 먹고 조금 쓰고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안될까요??

나는 진짜 검소하게 살 수 있어요"

하고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말하고 나서도 사실은 제 맘으로 알아요..

맨날 도피만 하다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삶밖에

살 지 못한다는 것을..

 

하여 한주의 시작인 오늘

또다시 의기를 다지고

전투적인 자세로 김장사를 시작합니다..

마음 한켠에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이 알고 내가 안다!!를 중얼거리며..

 

식품을 만든다는 일..

애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마음 다잡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도..나중에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애들을 가르치는 일과 식품을 만드는 일은

절대 제외할 것입니다..아이고..

출처 : 전원주택과 조경
글쓴이 : 可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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