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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굴뚝의 정신

그린테트라 2006. 2. 22. 22:21

 

 

 

 

굴뚝의 정신 / 고진하


저 나지막한 함석집, 저녁밥을 짓는지 포르스름한 연기를
굳게 피워올리며 하늘과 내통하는
굴뚝을 보고 내심 반가웠다
거미줄과 그을음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창틀에
올망졸망 매달린 함석집 아이들이 부르는
피리 소리, 그 단음의 구슬픈 피리 소리도 곧장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울어도 울어도 천진한 동심은 목이 쉬지 않고

저처럼 쉽게 하늘과 연통하는구나

아 아직 멀었다 나는
저 우뚝한 굴뚝의 정신에 닿으려면
괄게 지핀 욕망의 불 아궁이 속으로
지지지 타들어가는, 본래 내 것 아닌 살, 하얀 뼈들
지지지 다 타고 난 하얀 재마저 쏟아버리지 못하고
다만 무심천변에 우두커니 서서
저녁밥 짓는 포르스름한 연기 피어오르는
저 우뚝한 굴뚝을 바라만 보고 있는

 


 
출처 : 블로그 > 너와 나의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 글쓴이 : 요세비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