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시골집

그린테트라 2006. 2. 22. 22:13









 

시골집 마루 / 마경덕


 

마루는 나이를 많이 잡수신 모양입니다
뭉툭 귀가 닳은 허름한 마루
이 집의 내력을 알고 있을 겁니다
봄볕이 따신 궁둥이를 디밀면
늘어진 젖가슴을 내놓고, 마루귀에서
이를 잡던 쪼그랑 할멈을 기억할 겁니다
입이 댓발이나 나온 며느리가 아침저녁
런닝구 쪼가리로 박박 마루를 닦던
그 마음도 읽었을 겁니다
볕을 따라 꼬들꼬들 물고추가 마르던 쪽마루  
달포에 한 번, 건미역과 멸치를 이고 와
하룻밤 묵던 입담 좋은 돌산댁이 떠나면
고 여편네, 과부 십 년에 이만 서 말이여
궁시렁궁시렁 마루에 앉아 참빗으로 머릴 훑던
호랑이 시어매도 떠오를 겁니다
어쩌면 노망난 할망구처럼 나이를 자신 마루는
오래전, 까막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눈물 많고 간지럼을 잘 타던 꽃각시
곰살맞은 우리 영자고모를 잊었을지 모르지만,
걸터앉기 좋은 쪽마루는

지금도 볕이 잘 듭니다
마루 밑에 누구의 것인지 찌든 고무신 한 짝 보입니다
조용한 오후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마루에 봄이 슬쩍 댕겨갑니다


 
출처 : 블로그 > 너와 나의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 글쓴이 : 요세비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