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길

그린테트라 2006. 2. 22. 22:11







 

아름다운 길 / 도종환
 

너는 내게 아름다운 길로 가자 했다
너와 함께 간 그 길에
꽃이 피고 단풍 들고
길 옆으로 영롱한 음표들을 던지며 개울물이 흘렀지만
겨울이 되자 그 길도 걸음을
뗄 수 없는 빙판으로 변했다

너는 내게 끝없이 넓은 벌판을 보여달라 했다
네 손을 잡고 찾아간 들에는 온갖
풀들이 손을 흔들었고
우리 몸 구석구석은
푸른 물감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빗줄기가 몰아치자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내 팔을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넘어질 때 너도 따라 쓰러졌고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세찬 바람 불어올 때마다
너도 그 바람에 꼼짝 못하고
시달려야 했다

밤새 눈이 내리고 날이 밝아도
눈보라 그치지 않는 아침
너와 함께 눈 쌓인 언덕을 오른다
빙판 없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며 함께 꽃잎 같은
발자국을 눈 위에 찍으며
넘어야 할 고개 앞에 서서
다시 네 손을 잡는다
쓰러지지 않으며 가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눈보라 진눈깨비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출처 : 블로그 > 너와 나의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 글쓴이 : 요세비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