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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약에도 궁합이 있다

그린테트라 2006. 1. 14. 18:45
외부기고자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tkpark@joongang.co.kr
 
매일 커피를 대여섯 잔 이상 마셔 온 디자이너 정모(29·여) 씨. “저녁 때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친구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커피를 즐겨온 덕분에 카페인에 관한 한 내성(耐性)이 생겼다”고 자신하던 터였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연말 회식 후 귀가 도중 “갑자기 가슴이 마구 뛰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증상을 경험했다. 혼자 일어서기도 힘들었지만 술 때문으로 생각해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다음날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에도 증상은 계속됐다. 전날 못지않게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에는 식은 땀이 송송 맺혔다. 순간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스쳤다. 그래서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으나 검사 결과 심장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에게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났을까.

해답은 “요즘 복용한 약이 있습니까” 하는 담당 의사의 질문에서 나왔다. 정씨는 “치통과 생리통 때문에 한동안 진통제 ‘펜잘’을 복용했다”고 답변했다. 의사는 “바로 그것”이라며 무릎을 쳤다. ‘게보린’ ‘펜잘’ 등 복합 진통제에는 카페인이 들어 있는데, 커피의 카페인과 함께 약효의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결과라는 것이었다. 의사는 “약과 식품의 잘못된 궁합이 원인이지요”라며 “진통제를 복용할 때는 커피를 가급적 마시지 말라”고 충고했다.

일본의 주간지 아에라(AERA) 지난 1월19일자에는 약과 음식(술)을 함께 먹어 낭패를 본 한 의약품 전문가의 체험담이 실렸다. 요코하마(橫濱)에서 클리닉을 운영중인 내과 의사 야나가와 아키라의 이야기다. 그는 수년 전 술집에서 칵테일 등 술 세 잔을 마신 후 의식을 잃었다. 술값을 내려고 지갑을 꺼내는 순간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옆에서 친구가 받쳐 주지 않았다면 바닥에 머리를 찧었을 것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평소 상당한 술 실력을 자랑하던 그였기에 겨우 술 세 잔으로 의식을 잃었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의식을 되찾은 몇 분 후 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똑같은 증상을 느꼈다. 다음날 그는 전날밤 일이 마음에 걸려 대학병원에서 컴퓨터 단층(CT) 촬영과 뇌파 검사를 받았으나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 임상약리학회 회원이고, 약에 관한 저서까지 낸 야나가와는 쓰러지기 전날까지 3일간 꽉 막힌 코를 뚫기 위해 사용했던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 약을 떠올렸다. 그리고 대학 도서관에서 관련 문헌을 검색해 보았다. 미국의 약 전문지 ‘드럭’(Drug)에 실린 논문 한 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 약과 술(알콜)을 함께 복용하는 것은 잘못된 궁합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논문에는 ‘코가 막히거나 콧물이 심하게 날 때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 약을 과다 사용하면 현기증 등 세상이 요동치는 듯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술을 마시면 이런 부작용이 더 심해진다’고 쓰여 있었다. 그는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은 안전할 것으로 막연히 믿었으며, 그것이 화근이었다

약과 약, 약과 식품 사이에도 궁합(宮合)이 있다. 생년월일시나 사주가 없는 약과 식품에 ‘웬 궁합’이냐고 의아해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먹은 약과 약, 약과 식품들 사이에 특별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 반응은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긍정적이라면 궁합이 맞는 것이고, 부정적이라면 궁합이 나쁜 것으로 볼 수 있다.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에 약이 달랑 한 가지만 적힌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서너 가지 이상의 약을 처방한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약을 한꺼번에 처방하는 것은 두 가지 이상의 질환이나 증상을 동시에 치료하거나, 처방한 약의 부작용을 다른 약으로 상쇄하거나, 두 종류 이상의 약을 써서 약효를 더 높이기 위해서다.

두 종류 이상의 약을 먹었을 때 한 가지만 복용한 것보다 더 나은 약효를 얻었다면 그 약들은 ‘찰떡궁합’이라고 볼 수 있다.

위산을 억제하는 약(파모티딘·시메티딘 등)과 위점막 보호제(겔포스·암포젤·탈시드 등)를 함께 먹는 것이 ‘찰떡궁합’의 좋은 사례다. 감염으로 염증이 있을 때 항생제와 소염제를 함께 쓰는 것도 시너지(synergy) 효과를 준다.

두 종류 이상의 약을 함께 먹거나 하나의 약만 복용하거나 별 차이가 없다면 ‘본전궁합’이다. 고혈압 환자가 ‘레제르핀’과 ‘차아자이드’를 함께 복용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엄밀히 말하면, 함께 복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해다. 환자 입장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밑지는 궁합’이다.

약을 두 가지 이상 먹고도 하나만 복용하는 것만 못하다면 돈 내고 몸 버리는 격이다. 두 가지 이상의 약을 먹고도 손해 보는 이유를 전문용어로 말하면 두 약의 ‘길항’(拮抗) 작용 때문이다. 항생제인 ‘테트라사이클린’과 위산중화제(겔포스·노루모 등)를 함께 복용하면 테트라사이클린의 세균을 죽이는 힘이 형편없이 약해진다.

궁합 까다로운 항히스타민제

일부 감기약은 위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약을 먹은 후 ‘소화가 안 된다’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곧잘 위장약과 함께 처방되는데, 이 경우 상당한 주의가 요구된다. 그 한 예로 콧물이나 두드러기 증상을 완화해 주는 항히스타민 성분의 약과, 위의 경련을 방지하고 위산 분비를 줄여 주는 항콜린성 약(부스코판·듀스파타린 등)은 잘못된 만남이다. 항히스타민제와 항콜린제를 함께 복용하면 경련을 일으킬 수 있다.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숙취를 막아 주는 일부 약에는 항히스타민 성분이 들어 있다. 이 약과 항히스타민 성분이 든 감기약을 복용하면 잠이 심하게 오고 목이 마르는 증세가 두드러진다. 항히스타민제는 기관지 확장약, 거담약과도 궁합이 맞지 않는 등 궁합 맞추기가 꽤 까다로운 약이다. 그러나 약 설명서에 항히스타민제라고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근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는 ‘콘택600’ 등 염산페닐프로판올아민(PPA) 함유 감기약은 항히스타민 약이다.

서울대 의대 박병주 교수는 “PPA 성분은 감기약, 비염 치료약, 식욕억제약(다이어트 약) 등에 들어 있다”며 “젊은층에서 출혈성 뇌졸중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200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 성분이 든 의약품의 판매를 중지하도록 제약회사에 요청했고, 현재 미국에서는 완전히 퇴출됐다”고 말했다.

FDA 조치 후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바로 국내 제약·수입업체에 PPA 함유 의약품의 제조·수입·판매 중지를 요청했으나 지금도 PPA의 하루 최대 복용량이 100㎎을 초과하지 않는 의약품은 시판중이다. 국내에서도 PPA로 인한 뇌출혈 환자의 발생이 보고됐다.(대한신경과학회지 2001년 19호) 발병 당시 36세이던 이 여성 환자는 PPA가 75㎎ 든 식욕억제약을 매일 한 알씩 10일간 복용했고, 수년간 하루 커피를 10여 잔씩 마셨다고 한다.

콜레스테롤를 낮추는 약과 무좀을 치료하는 일부 항진균 약도 궁합이 나쁜 만남이다. 이 두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면 오히려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갈 수 있다. 코막힘을 막기 위해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 약과 울병(조울증의 일종) 약의 궁합도 형편없다. 함께 복용하면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고 심하면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애주가, ‘아스피린’ ‘타이레놀’ 피해야

술과 해열·진통제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따라서 애주가들은 ‘아스피린’ ‘타이레놀’ 등 해열·진통제를 가급적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 FDA는 하루에 세 잔 이상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스피린·타이레놀 등을 장기 복용할 경우 건강상 손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타이레놀 등 아세트 아미노펜 성분이 든 진통제를 복용하면 간 손상 위험이 높아진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0년 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에 이 방법이 쓰인 일도 있다.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케토프로펜 성분이 든 진통제를 복용하면 위장 출혈 위험이 커진다. ‘파모티딘’ ‘시메티딘’ ‘라니티딘’ ‘겔포스’ ‘오메프라졸’ 등 H2-차단형 위궤양 치료제도 술과 함께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함께 먹으면 혈중알콜농도가 높아져 심하게 취하기 쉽다. 특히 남성이 술을 마시면서 시메티딘을 복용하면 발기가 잘 안 될 수 있다. 시메티딘에는 항 남성호르몬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술은 이뇨제나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과도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다. 당뇨병·협심증 치료제를 복용중인 사람도 음주는 금물이다. 당뇨병 치료제인 클로르프로파마이드(다이아비네스 정)를 복용하는 도중 술을 마시면 저혈당 위험이 있다. 안면이 붉어지거나 두통·메스꺼움·구토감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협심증 치료제인 니트로글리세린을 복용한 후 음주하면 저혈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수면제를 복용중인 사람이 술을 마시면 수면제의 약효가 지나치게 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영원히 잠들어 버리는 사례도 간혹 있다. 반대로 술을 매일 마시면 약발이 듣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과학적 근거가 있다. 술을 분해하기 위해 우리 몸의 알콜 대사(代謝) 작용이 빨라지면서 약의 대사 속도까지 촉진되는 것이다. 따라서 약이 몸 안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 약효가 금세 사라지게 된다.

약사들은 “두통약을 먹었는데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환자를 보면 먼저 “이 사람이 평소에 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지” 의심한다. 약이 술 기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일부 항생제는 몸 안에 들어가서 알콜 대사를 느리게 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등 취기(醉氣)를 높인다.

일부 한약은 술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는 경험적 처방일 뿐, 과학적 근거는 없다. 삼성서울병원 최경업 약제부장은 “약을 복용할 때 술은 나쁜 영향을 주기 쉬우므로 술을 마시고 약을 먹거나, 약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카페인 든 약 복용시 커피 유혹 떨쳐내라

카페인이 든 약을 복용중인 사람은 커피·홍차·녹차·콜라·초콜릿 등 카페인 식품을 가급적 먹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함께 복용하면 카페인 과잉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며 소변이 자주 마렵다. 문제는 수많은 약의 재료들 가운데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이 바로 카페인이라는 사실이다. 카페인은 피로회복제, 종합 감기약, 살 빼는 약 등에 광범위하게 들어 있다. ‘박카스’ ‘원비’ 등 드링크류와 ‘게보린’ ‘펜잘’ 등 복합 진통제에도 카페인이 포함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용석 연구사는 “‘타가마트’ ‘잔탁’ ‘펩시드’ ‘파모티딘’ 등 위궤양 치료제를 카페인 음료와 함께 복용하면 혈중 카페인 농도가 높아져 신경과민이나 위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빈혈 치료제를 복용중인 사람은 차를 함께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홍차·녹차 등 떫은 맛을 내는 차의 타닌 성분이 철분과 결합해 배설되기 때문이다.

천식약, 진통제, 기침약 등에 든 에페드린 성분은 카페인과 상극 작용을 일으켜 심장에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콧물·두드러기 등이 날 때 복용하는 항히스타민 약을 먹으면 가슴이 뛰는 증상이 어느 정도 억제된다. 고연구사는 “약을 복용할 때는 그 속에 카페인이 들어 있는지, 또 들어있다면 양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며 “카페인이 든 약을 복용한다면 악마처럼 달콤하다는 커피의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항히스타민제 복용시 주스는 禁物

‘암피실린’ ‘클록사실린’ ‘에리스로마이신’ 같은 항생제 복용시에는 오렌지·자몽·포도 주스 등 신맛의 음료를 피하자. 이들 항생제는 산성 환경에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항히스타민제 복용시에도 신맛의 주스는 금물이다.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 약리독성학과 연구진은 항히스타민제를 포도 주스와 함께 마시면 치명적 부정맥이나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약을 물과 함께 복용하면 약 성분이 빠르게 무해한 물질로 바뀌지만 포도 주스와 함께 복용하면 약 성분이 대사(代謝)되지 않고 핏속에 오랫동안 남아 약의 독성이 고스란히 몸에 전해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는 감기·알레르기 환자 중 극소수가 불규칙한 심장박동 등 부정맥으로 숨지는 것으로 추정했다.

고혈압 치료제인 ‘펠로디핀’ 우울증 치료제인 ‘사낙스’ 장기이식 때 사용하는 면역 억제 약물인 ‘사이클로스포린’ 등도 신맛의 주스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펠로디핀과 신 주스를 함께 먹으면 주스의 산성 성분이 이 약이 간에서 대사되는 것을 방해한다. 혈압을 떨어뜨릴 우려도 있다. 오렌지 주스를 제산제와 함께 먹으면 제산제의 알루미늄 성분이 몸에 흡수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신 과일 주스나 탄산음료로 약을 복용하는 것은 백해무익(百害無益)이다. 약이 장에 이르기도 전에 위에서 미리 녹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철분제는 오렌지 주스 등 신맛의 산성 주스와 함께 먹으면 흡수가 잘 된다.

천식 치료제 ‘테오필린’ 복용중 탄 고기 피해야

우유와 약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큰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유에 타 먹이면 약효가 떨어지는 약들은 적지않다. 최경업 부장은 “‘테트라 사이클린’ 등 일부 항생제의 경우 세균을 죽이는 제 임무를 다하기 전에 같이 먹은 우유 안에 든 성분과 먼저 반응해 버려 약효가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감기약·변비약·소화제·제산제 일부도 우유와 함께 복용하면 약효가 저하된다. 약효 성분이 우유 속의 칼슘과 결합해 몸 밖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우유와 약을 함께 먹는 것은 되도록 피하되, 우유를 꼭 먹어야 하는 아기들은 약을 복용한 뒤 적어도 2시간 후에 우유를 마시는 것이 좋다.

고혈압 치료제 파르길린(유토닐)을 복용중인 환자는 청어·바나나·맥주·치즈·누에콩·적포도주·요구르트·간·효모 그리고 오래 된 육류 등 티라민 성분이 많이 든 음식을 피해야 한다. 티라민이 혈압을 갑자기 올려 고혈압·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나’를 복용중인 결핵 환자는 치즈(티라민 함유)·정어리(히스타민 함유)를 먹으면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오한·두통 등이 생길 수 있다. 또 천식치료제인 ‘테오필린’을 복용중인 사람은 탄 고기를 피해야 한다. 고기를 태울 때 생기는 폴리사이클릭 하이드로카본이라는 유해 물질이 테오필린을 분해하는 간의 대사효소를 활성화해 약효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생약, 잘못 먹으면 안 먹으니만 못하다

생약(허브)이나 약초라고 하면 무조건 안전하며 몸에 좋다고 맹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자연산’이라는 사실이 신뢰감을 심어 줬을 것이다. 그러나 생약에는 몸에 유익한 성분과 함께 해로운 성분도 들어 있다.

양약은 얼마나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적정한지 독성·안전성 시험 등을 통해 드러나 있지만, 생약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아주대병원 소화기내과 함기백 교수는 “최근 33세 여성이 돌미나리와 인진쑥을 달여 먹은 뒤 황달이 심해져 응급실로 실려온 적이 있었다”며 “이미 간에 치명적 손상을 입은 상태여서 손을 쓸 수 없었고, 환자는 결국 생명을 잃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간경변증·만성간염 등 간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생약을 함부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생약 속에 든 미지의 물질들이 간 기능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매요클리닉 의사들도 일반 약을 복용중인 사람들은 생약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궁합이 맞지 않는 생약과 약을 함께 복용하면 서로 반응해 약을 먹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신중이거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은 의사에게 자신이 “어떤 생약을 복용중”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 또 고혈압·갑상선질환·우울증·전립선비대증·당뇨병·심장병·간질·파킨슨병 환자도 어떤 생약을 먹으면 안 되는지 미리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화란 국화·카바·마황·블랙 코호시(승마) 등 우리에게 생소한 약초는 물론 흔히 먹는 생약들에도 복용상의 주의사항이 있다. 마늘·생강·은행은 아스피린 등 피를 묽게 하는 약과 함께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부작용으로 과다한 출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늘은 또 혈당을 낮출 수 있으므로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과 마늘을 함께 복용할 때는 혈당 변화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인삼은 카페인·정신병 치료제·스테로이드제·혈압약·당뇨병 치료제 등의 작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경희의료원 한방재활의학과 송미연 교수는 “알로에는 장기간 먹으면 칼륨 결핍을 일으킬 수 있다”며 “특히 이뇨제·스테로이드제와 함께 복용하면 칼륨 결핍이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이 약과 약, 약과 식품의 궁합까지 알고 약을 복용하기는 어렵다. 약 설명서나 제품 포장에 쓰인 ‘사용상의 주의’만으로는 어떤 약이나 음식과 함께 먹어도 괜찮은지 알 수 없다. 궁합이 잘 맞는 약과 약, 약과 음식을 고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입으로 먹는 경구용 약은 가능한 한 물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다. 드링크·우유·주스·술 등과 함께 먹으면 나쁜 반응을 일으키는 약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때 물은 단순히 약을 삼키기 위해 마실 것이 아니라 한 잔 가득 마시는 것이 좋다. 복용한 약이 원하는 부위에 잘 도착하게 하려면 물을 넉넉히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약도 더 잘 녹는다.

둘째는 같은 계열의 약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다. 카페인이 든 드링크와 역시 카페인이 든 항히스타민제는 병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는 늘 복용하는 약은 상비약으로 준비해 두고 쓰라는 것이다. 꾸준히 복용해 온 약이라면 경험적으로 어떤 식품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지 환자 본인이 더 잘 안다.

넷째는 약국에서 약사의 복약 지도를 잘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것 주세요” 하면서 약사가 말할 틈을 주지 않는데 이것은 곤란하다. 특히 처방전을 받아야 하는 전문의약품과 처방전이 불필요한 일반의약품을 함께 복용할 때는 약사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다섯째는 약의 궁합에 매달려 지나치게 걱정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외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약은 음식과 함께 복용했을 때 효과가 더 좋아진다. 음식을 먹으면 영양분을 소화 흡수하기 위해 위와 장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덕분에 약의 흡수도 촉진된다. 음식은 또 약이 필요한 부위에 빨리 도달하도록 돕는다.


■ 흡연과 약

매일 1갑 이상 담배를 피워대는 골초들은 약을 먹은 후 “약발이 듣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이는 흡연으로 간을 혹사시킨 탓이다. 약을 복용하면서 담배를 피울 경우 간에서 약이 빠르게 대사(代謝)되기 때문에 약효가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흡연으로 인해 약효가 감소하는 약은 ‘아세트 아미노펜’(해열·진통제) ‘다이제팜’(신경 안정제) ‘테오필린’(천식 치료제) ‘이미프라민’(우울증 치료제) 등이다. 따라서 흡연자는 테오필린을 함유한 천식약을 복용할 때 더 많은 양의 약이 필요하게 된다. 최경업 삼성서울병원 약제부장은 “여성호르몬이 든 피임약을 복용중인 여성이 흡연하면 혈전증·심장병 발생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 약과 녹황색 채소

녹황색 채소가 몸에 좋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와파린’ 등 항혈액응고제를 먹을 때는 적합하지 않다. 이들 녹황색 채소에 들어 있는 비타민K가 약효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타민K가 풍부한 간도 와파린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

계란·밀기울·우유 등 비타민K를 소량 함유한 식품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들 음식은 약효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비타민K가 몸에 축적돼 비타민K 과다증으로 인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비타민제나 빈혈 치료제(헤모페론)를 복용할 때 녹차·홍차 등은 금물이다. 이들 차에 포함된 타닌 성분이 약의 고유 성분을 변화시킨다.


■ 왜‘식후 30분’에 약 먹어야 하나?

“이 약은 하루 세 번, 식후 30분에 드세요.” 약국에서 흔히 듣는 이런 약사의 조언은 약과 음식을 궁합대로 복용하도록 하기 위한 복약(服藥) 지도다. 음식이 위에 남아 있으면 대부분의 약은 흡수가 지연되거나 감소된다. 음식으로 인해 흡수율이 크게 떨어지는 약은 식전(食前)에 먹어야 충분한 약효를 기대할 수 있다.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전미희 박사는 “항생제인 ‘페니실린’ ‘암피실린’ ‘테트라 사이클린’ ‘리팜피신’,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은 배부른 상태에서 먹으면 공복시 충분한 물과 함께 복용했을 때에 비해 흡수율이 50%나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위장약인 수크랄페이트(아루사루민)는 음식의 단백질과 결합하면 약효가 떨어지므로 식사 1∼2시간 전에 복용해야 한다. 반대로 무좀약인 그리세오풀빈(그리빈)·이트라코나졸(스포라녹스 캅셀), 비타민 B2, 우울증 치료제인 리튬 등은 음식과 함께 복용해야 잘 흡수된다. 이들 약은 지방에 잘 녹기 때문에 음식의 지방에 녹아 흡수가 잘 되는 것이다.

위장 장애가 있는 경우 식사 후 바로 약을 복용해야 위의 자극과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볼타렌정·유페낙정), 이부 프로펜(부루펜·대웅 이부프로펜), 나프록센(낙센·디스펜)과 항생제인 아목사실린(아목사펜 캅셀·곰실린 캅셀), 이뇨제인 푸로세마이드(라식스·후릭스)가 이런 예다.

월간중앙 2004년 04월호

 
출처 : 블로그 > 칸의 생태자급자족 교실 | 글쓴이 : 비금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