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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쿠바에서 한국농업의 대안은 물론 인류미래의 희망을 보았다--오마이뉴스

그린테트라 2005. 6. 8. 19:50
명제 11. 유기농업은 생산성이 떨어진다


시설화·규모화·현대화가 세계농업의 주된 흐름이라며, 소규모 가족농·수작업 중심의 친환경 유기농업은 생산성이 떨어져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과연 그런가.

'한국농업의 미래는 있는가'라는 질문을 안고 지난 27일 오후 김성훈(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를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DJ 정부 때 최장수 각료(30개월)이자 대표적인 개혁장관으로 알려진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학자면서 시민운동가인, 이론과 현장을 두루 경험한 한국농업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3달 동안 진행해온 한국농업 특별기획의 마지막 취재대상으로 김성훈 교수를 찾은 것은 그에게 쿠바농업에 관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지난 5월 21일부터 6월 1일까지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세계유기농업대회를 참석한 김 교수는 "쿠바에서 한국농업의 대안은 물론 인류미래의 희망을 보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쿠바농업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로 국가평의회 의장인 피델 카스트로의 말을 인용했다.


"인간의 삶을 좀 더 합리적으로 하자. 정의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만들자. 모든 과학지식을 환경오염이 아닌 좀 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동원하자. 생태계에 진 빚은 갚되, 사람들하고는 싸우지 말자." (리우 UN 환경과 개발회의 연설문 중. 1992년)

남북한 농업교류를 위해 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 김 교수는 "북한은 200만명의 인구가 기아로 쓰러지고 임산부 40만명이 영양실조인 반면, 쿠바는 영아사망률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은데다 43%에 불과하던 식량자급률은 100%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사회주의국가로서 미국의 경제봉쇄와 구소련 해체, 동구권 몰락이라는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그 해법에서 쿠바는 북한과 달랐다. 핵심은 '유기농업'이었다. 유기농업이란 일체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땅의 유기질 성분을 이용한 농법을 말한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10년 동안 진행된 쿠바의 유기농업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유기농업의 메카'로 인식되면서 수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고, 병원을 출입하는 환자 수가 30%나 줄어드는 등 북미·남미를 통틀어 가장 건강한 나라가 되었다.


유기농업의 메카 쿠바, 환자 수 30% 감소

여느 나라와 같이 화학비료에 대기업 농장 중심이던 쿠바가 이처럼 농업혁명을 시도한 배경에는 사회주의 경제블럭의 붕괴였다. 미국의 경제봉쇄를 소련이 더 이상 지켜줄 수 없었다. 수입에 의존했던 연간 100만톤의 화학비료와 200만톤의 사료작물, 2만톤의 농약, 석유가 없어 굴릴 수 없었던 농기계 등 당시 80%나 되던 쿠바의 무역량은 일거에 시장을 잃은 것이다.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1991년 9월 카스트로는 '평화시의 특별선언'을 선포하고 농정의 대전환을 꾀했습니다. 우선 국민투표 형식을 빌어 93% 지지를 얻어낸 뒤, 아이디어를 모았지요. 전국의 과학자, 교수들에게 인센티브를 걸어 '지금부터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기술을 발굴해라, 그것을 최신 과학기술과 접목시켜 농민들과 실험해 보고 농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아라'라고 주문했습니다."

또한 김 교수는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열쇠는 '여성의 참여'였다고 말한다. 카스트로는 여성들에게 다음처럼 호소했다.

'쿠바의 여성들이여, 당신들의 젖을 먹고 우리는 자라났다. 대지는 어머니의 땅과 같다. 여기서 난 농사로 우리는 먹고산다. 그런데 쿠바의 대지가 오염되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젖이 오염되었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쿠바의 유기농업을 당신들이 책임져라.'

그 결과 쿠바 농정의 핵심에는 여성들이 포진해 있다. 우리의 농림부에 해당하는 농림성 차관도 여성이고 유기농연구소 소장, 농업기술청장 등 모두 여성이다.

쿠바 유기농업은 단순히 '무농약, 무비료'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순환'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이었다. 구체적으로 꼽자면 ▲사적경영을 허용한 가족농 중심의 토지개혁 ▲직거래 유통중심의 시장개혁 ▲지렁이퇴비 같은 것을 이용한 흙 살리기 운동 ▲윤작·간작·휴경작 등 순환농업의 정착 ▲전통농업과 과학기술의 결합 ▲농민참여하의 현장과 지역성 중시 등이었다.

쿠바는 우선 90%에 달하던 국영농장을 개인이나 조합에게 무상·유상으로 임대해 직접 경영하게 했고, 그 결과 2002년 말 국영농장은 20%, 협동농장과 개인농장 20%, 가족농가들의 협동체인 UPBC가 60%를 차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유기농업의 핵심은 흙 살리기"라며 "화학비료로 황폐해진 농지를 살리기 위해 최소 3∼5년간 필요하기 때문에 토지개혁은 유기농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한국의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현재 2천 가구)의 경우 20%가 자영농지, 80%가 임대농지로 농사를 짓고 있어 유기농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농약을 많이 쓰는 한국, '저농약'도 선진국의 3배


또한 흙 살리기의 기술적 요인은 퇴비. 남은 음식물, 가축의 분뇨뿐만 아니라 "쿠바 유기농의 숨은 주역은 지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렁이퇴비는 '검은 땅'을 '푸른 땅'으로 바꾸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우리는 지렁이를 '혐오동물' 취급하지만 쿠바에선 지렁이가 '도시의 농부'란 소릴 들을 정도지요. 쿠바는 도시농업이 발달해 있는데 정부가 개인에게 싼 가격으로 소규모 땅(최고 0.2ha)을 임대해 주고 개인은 '흙상자 농법'을 통해 각종 야채와 과일을 직접 길러 먹습니다.

우리네 농법은 30센티미터 가량 땅을 파서 씨앗을 뿌리지만 그네들은 토상농업이라고 해서 말구유통 같은 것에 흙을 담아 화단처럼 만듭니다. 도시의 공터나 학교 운동장, 쓰레기 매립지 등에 그런 밭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거기서 자라는 미생물이나 지렁이의 토사물이 퇴비역할을 하는 겁니다."

해충 제거도 자연이 담당한다. 인도에서 수입한 님(NIM)나무를 전국에 보급해 해충을 없애는 재료로 쓰고 있고, 농장주변에 해충이 기피하는 식물을 심어 자연방제를 하는 것은 무조건 '약을 치고 보는' 한국농업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성훈 교수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적' 상황으로 이어졌다. 단적으로 "전국의 모든 농과대에는 농약화학과가 있지만 유기농학과는 단국대 한 곳에만 있다"는 점이 한국의 유기농 수준을 대변한다.

"제가 장관 재임시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농업법 시행령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 기준으론 안됩니다. 당시는 '친환경' 농업이 출발할 단계라 '저농약' 사용까지 친환경의 범주에 넣었지만 이젠 친환경이라고 말 못합니다. 보통 쓰는 농약의 절반을 쓰는 걸 저농약으로 분류하는데 선진국에 비하면 3배나 많은 양입니다. 현재 2만여 농가가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중 70%가 저농약 농사를 짓고 있어요."

현재 친환경 농업에는 저농약, 무농약, 전환기 유기농업, 유기농업 등 4가지 단계가 있다. 여기에서 "저농약을 빼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의 친환경 농산물, 전체 생산량의 1%도 안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로 꼽힌다. 세계 2위라는 일본에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김 교수는 이렇게 된 데는 농약과 비료값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싸다는 점이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농약과 비료의 허가·관리권을 쥐고 있는 농촌진흥청이 바뀌어야 한국 유기농의 미래가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왔다. 화학비료의 생산과 연구에 지원되는 정부보조금을 줄여 유기농에 투자하라는 얘기다. 현재 정부의 유기농 직불금은 1ha당 52만원∼79만4000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가는 1만1900호로 전체의 1%도 안됩니다. 유기농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요. 반면 대규모 기업농 위주인 미국도 2010년까지 순유기농업 비중을 1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유기농업은 21세기 사조(思潮)중의 하나입니다."

덧붙여 김 교수는 "우리가 언제부터 농약을 썼냐"고 반문한다. 이어 "우리 농업의 역사가 5천년"이라며 "농약의 역사는 40~50년 역사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농업의 '농'자만 들어가도 전근대적인 것이라며 천시하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일반 농산물 보다 2~3배 가격이 높아도 사람들은 유기농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사려고 합니다. 이러한 소비자 인식이 유기농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농민들도 여기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유기농이 좋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우리 농업경제구조에 맞을까? 더욱이 대부분의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유기농은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 않나?

"유기농법인 생태보존과 생산성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생태보전형 농업은 일반적으로 생산성이 낮다고 알려져 있고, 생산성 향상이 높은 농업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상식이었지요. 하지만 쿠바의 농업 10년은 그러한 인식이 오류였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1992년 미국의 스탠포드 조사단이 쿠바의 유기농 시도를 두고 "인류 역사의 최대의 실험"이라 지적하며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쿠바 유기농업 생산성은 초기 2년간은 일반농업에 비해 뒤떨어졌으나 4년 이후 부터는 계속 증가해 일반농업의 30%가 넘는 생산성을 보였다.

또한 '유기농은 결국 돈많은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도 유기농 생산물이 많아지고, 또 농민들이 가공과 유통에 참여하는 구조가 되었을 때 해결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제안한다. 생산보다 이윤이 훨씬 많이 남는 가공과 유통은 대기업이 차지하고 농민들은 생산만 하라는 식으론 농민들이 살아 남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2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말미, 김성훈 교수는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가지를 조언한다.

"벌레 먹고 못 생긴 게 더 맛있고 안전합니다."
출처 : 흙과 더불어 함께 하는 삶
글쓴이 : 중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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