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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로운 세상을 여는 공동체 이야기 (후에로 마을의 꿈과 좌절)

그린테트라 2005. 6. 8. 19:43
새로운 세상을 여는 공동체 이야기 (후에로 마을의 꿈과 좌절)

- 요약정리

글쓴사람 : 하나후사 료스케

후에로 마을은 1977년 일본 고베시 변두리에 하나후사 료스케를 비롯한 여섯 사람이 세워 14년간 유지된 공동체 마을이다. 하나후사 료스케는 작가인데 공동체 마을을 만들려는 강한 의지로 많은 어려움(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한다든지, 관료들에게 시달림을 당한다든지, 마을 사람들과 마찰이 생긴다든지 하는 문제가 많았다)을 극복하고 공동체 마을을 시작했다.



이들이 마을을 만들때의 기본구상은 이렇다.

① 지배, 착취, 차별이 없는 공동 생활을 하는 집단 농장에서 가능한 상하 관계를 없엘 것

② 농약 제초제와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첨가물이 들어간 배합 사료도 사용하지 말 것. 완전한 유기, 유축 복합 농업이어야 할 것.

③ 폐단이 많은 현재의 유통 구조를 통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판하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것

④ 도시 생활자를 위해 농장을 개방하고 농업교실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농사를 체험하게 할 것

⑤ 유기농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연수제도를 신설하고 그들이 자립 할 때까지 지원,협력을 아끼지 말 것



공동체 마을은 그 나름의 장, 단점이 있다. 도시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똑같이 농사를 짓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생활의 편리함이나 일의 효율추구를 먼저 생각한다면 확실히 단점도 있다.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몇가지를 살펴보면

① 사적 소유를 인정할 경우 개인의 소유욕이 생겨 경쟁의식을 배양하고 생산을 촉진한다. 그 러나 공동체에서는 몸을 던져하는 일하는 사람이없고 작업 도구도 잘 간수하지 않는다.

② 공동체의 기본는 힘에의한 다수의 지배를 부정하는 것인데 공동체에 대한 이견으로 나가는 사람이 생길 경우 재산을 분배해줘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③ 휴일에는 무엇을 하든 자유인데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말도 공수표로 끝난다.

④ 각자 생각하고 있는 유토피아의 상도 가지각색이라 갈등이 생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부조화로 심한 경우 이합집산의 원인이 된다.

⑤ 땀흘려 일을 하면서 글을 써야 가장 정직한 글을 쓸수 있다고 생각 했는데, 농사일이 고되다 보니 몸만 혹사하고 글 쓸 시간이 없게 되었다.



후에로 마을 사람들은 계곡에 있는 논같지도 않은 땅 한뙈기를 개간해서 논모양을 갖추어 논사를 짓고 있다. 사람들은 비능률적이라고 충고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이땅을 살리는 노력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렇다.

① 직접 개간해서 만든 땅이라는 애정을 갖게 되었고

② 농약에 오염이 안된 땅이고

③ 미꾸라지, 지렁이, 유익한 박테리아 등이 서식하고 있고

④ 경제성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농심을 되찾고자 해서이고 (경제 제일주의는 이웃에 대한 관 심과 배려 전통까지 말살했고 생태계도 파괴한다. 자급자족의 자세를 버리고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 됐다.)

⑤ 우리의 작은 논과 밭을 지키는 것이 조상에 대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완전 유기논을 하자면 조금의 농약도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 조금만 사용해도 유익한 벌레와 미생물이 죽기 때문이다. 기계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기계에 대한 욕망은 중독되는 것 같다. 돈벌어서 기계값대느라 뼈빠지게 고생해야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후에로 마을은 성차별을 포함 일체의 차별을 부정한다. 노동을 하는데도 모두 힘을 모아 한가지 일을 이루어 낸다는 생각과 모든일을 남녀노소 구분없이 전원 교대로 한다는 생각으로 하기 때문에 분업 제도을 배제한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생산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효율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평등주의를 지키려 애쓴다. 능력있는 사람과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 쉬운일과 힘든일의 차이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일하다보면 많은 창조의 기쁨을 느낄수 있다.

예를 들어 퇴비 만들기는 하나의 예술이다. 잘 발효된 퇴비가 만들어지면 돈들여 만드는 퇴비보다 훨씬 좋고 은근한 쾌감을 안겨준다.

창조의 기쁨을 안겨주는 일은 많다. 메탄가스를 이용한 보일러 만들기라든지 숯 굽는일 치즈만들기 등은 실패를 거듭하지만 간혹 성공하기도 하는데 그 기쁨이 무척 크다.

손된장, 햄, 베이컨, 술만드는 양조일 등 유기농으로 재배된 자연 농산물을 재래식 방법으로 정성들여 만든 제품은 안정된 상품도 된다.



후에로 마을은 어린이 농업교실을 열었다.

살아있는 교육을 실천하는 것의 하나로 돼지 기르기를 하는데 잡아 먹을때까지 애정을 갖고 기르자 먹을 것을 소중히 하자는 뜻을 모아서 기른다. 농장 생활이나 토마도 수확도 훌륭한 교육이 된다. 여름방학 어린이 농업교실의 목적은 농업을 이해하고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수고와 수확의 기쁨을 느끼는데 있다.

① 먹을 것을 만드는 과정과 수고를 안다

② 일하는 것의 즐거움을 안다

③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기른다

④ 물건을 소중희 여기는 마음을 기른다

⑤ 힘든일에 합심하고 여러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의 훌륭함을 배운다.

⑥ 학교공부를 잊고 자유롭게 뛰논다

⑦ 동물과 접촉하며 자유로운 친구가 된다

⑧ 도시생활과 농촌 생활의 차이를 안다

⑨ 자신의 손으로 장난감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들고 기쁨을 느낀다

⑩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기른다

농업교실에서 했던 것 중에는

* 닭잡기 - 왜 닭을 잡는가 설명하고 닭잡기에서 요리까지 전체과정을 직접 체험하면서 그 활동이 파괴가 아니라 건전한 생산 활동임을 알게 된다. 또 한 마리의 닭은 한 부분도 버리지 않고 모두 이용하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 대나무 세공 - 칼쓰는 법부터 가르쳐 주는데 손을 베도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

* 그림자 극장 - 아이들의 감추어진 창조성이 훌륭하게 나타난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예술 작품도 만들어 낼수 있다.

* 곤충채집 - 곤충채집의 경우는 옳다 그르다는 의견이 나뉘어지는데 반대하는 쪽은 인간이 자연의 정점에 서있다는 잘못된 관념을 조장한다는 것이고 찬성하는 쪽은 이런 경험이 자연을 파괴하는 쪽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의견이다

* 가축과 접촉 - 원래 아이들은 아무 차별 없이 모든 동물을 좋아한다 심지어는 뱀까지도. 앞 못보는 아이들이 여러 동물을 똑같이 쓰다듬은 경험은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유기농업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유기적 관계를 맺을 때 성립된다고는 하지만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현실에서는 상품을 파고 사는 관계에 그치고 만다.

소비자 단체에서 생산자들의 노고를 모르고, 쓰지도 않은 사료를 썼다고 하거나 도예를 하는걸 돈벌기 위해서 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 돈을 많이 줄테니 다른곳에 공급해야할 무농약 쌀을 돌려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감자를 가져간 후 너무 싼값의 명세서를 보내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 협동조합과의 관계가 끊기기도 하는데 그래도 소비자 협동조합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후에로 마을이 발전할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받쳐주는 소비자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장애인과 함께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도 있다.

장애인들을 똑같이 대하고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같이 생활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간혹 발작을 일으키거나 병치례 약물중독 등으로 경제적 손실이 생기기도해 공동체 내에서 불만도 나타난다. 장애인들도 일은 힘들고 급료가 적다고 불평을 하기도한다. 결국 장애인들은 수용시설로 다시 돌아가거나 농장을 나가 행방불명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장애인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누구나 평범하게 농사지어서 먹고 살아갈수 있는 공동체를 보여주고자 했으나 '생산에 기여할수 있는가' '발목을 잡아당기지는 않는가' 하는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후에로 마을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후에로 마을의 가장 큰 처벌은 마을을 떠나는 것인데 규율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떠나기도 하고 공금 횡령과 착복 사건에 의해서 떠나기도 하고 이런일을 못이겨 성실한 사람이 떠나기도 한다.

마작과 매춘을 하기위해 수백만 엔을 다른 사람 몰래 써버렸던 사람이 있었고 여러해 동안을 아무도 모르게 고기를 빼돌린 사람도 있었고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는데 알고보니 무면허여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 아이가 생기면서 아이들 문제로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늘었다.

결국 건강한 사람들이 다 떠나게 되어 다른 농장과 공동으로 일하게 되고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에 따른 간섭도 생겼다.

1989년 2월 임원회의에서 이들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회사(후에로 마을은 유한회사로 등기되어 있었다) 탈취 작전에 의해 공동체 관리의 부실 책임을 물어 호되게 질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91년 10월 15일 마지막 임원회의로 후에로 마을은 사라졌다. 공동체 형태를 버리고 명실상부한 회사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사건을 두고 '신좌익 섹터의 후에로 탈취작전' 이라고도 하고 아나키즘과 볼세비키의 싸움에서 아나키의 패배라고 하기도 한다.



다시 공동체를 만든다면

'오는사람 막지않고 가는사람 잡지않고' 가 아니라 '생각이 일치하는 사람만 같이'하고 싶다

정치조직에 관여하는 사람과 종교활동을 목표로하는 사람은 곤란하다. 가정을 가진 사람은 독립가옥에 살게하고, 독신자는 기숙사에 살게하고, 일은 되도록 같이하고, 농기계는 공유하고, 점심은 공동식당에서 같이 먹고, 사유지를 주고, 생산물은 공동체에서 사들이게 한다. 수입은 생산량에 따라 분배한다.

말하자면 코뮨(공동체)와 코뮤니티(협동체)를 절충시킨 모양이다.

유토피아는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향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출처 : ♡歸農을원하는사람들의모임♡
글쓴이 : 里長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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