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스크랩] 매력적인 자연재배 순서

그린테트라 2011. 12. 16. 12:24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이영문 지음

2001년/247쪽/7,800원

 

▣ 저자 이영문
195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이영문은 땅과 자연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우리 땅에 맞는 농기계를 만들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농업에 대한 관심은 척박한 농업환경을 바꿔 보려는 의지로 나타났고, 그 결과 태평농법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써레질도 쟁기질도 필요 없이 대자연의 원리에 의해 땅이 알아서 소임을 다하기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르고 태평스러운 농사꾼이 되었다.

저자 본인의 말대로 그는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농사꾼에 불과하지만 자연이라는 스승에게서 누구보다도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며, 인간은 자연 생태계에서 "만물의 영장"이 아닌 여러 종류의 벌레, 날짐승, 들짐승과 함께 자연의 일부를 구성하는 말초에 불과하므로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지 말고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사물에 대한 비범한 통찰력과 관심은 농기계에서 시작하여 자연의 순리에 맞는 태평농법의 개발에 이어 토지를 살리는 일, 생태계를 살리는 일, 잃어버린 우리의 종자를 되살리는 일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생명체를 건강하게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저서로는 『모든 것은 흙 속에 있다』가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게으른 농사꾼의 자연 이야기, 흙 이야기, 농사 이야기 등 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이야기'에서는 일상 속의 자연을 접하면서 그 곳에 숨어있는 자연의 섭리와 가르침을 저자 특유의 통찰력으로 관찰하고 들려주고 있다. 저자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존중하며 곤충이나 동물들과 함께 하는 농사 이야기, 옛날 우리 어머니 세대의 가난한 시절 허기를 면하기 위해 먹었던 박 속에 숨겨진 이야기, 가옥의 구조 등을 설계하는 데 우리 조상이 관찰하고 이용했던 자연 이야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인간이 병들기 시작한 원인은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모든 생명의 자궁이 되는 토양의 오염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생각이다. 이 책의 두 번째 이야기인 '농사꾼의 흙 이야기'에서는 토양 오염의 원인이 된 농약의 과다 사용의 폐해와 관행적인 '깊이 갈기식'의 영농 방법이 토양과 자연을 오염시킨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유기농법은 식물의 영양분이 유기물이라는 그릇된 시각에서 시작된 것임을 지적함과 동시에 이 농법 역시 식물의 생장 조건을 인위적으로 간섭하므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지 않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리 추천할 만한 농법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농사꾼의 농사 이야기'에는 저자가 영농현장에서 체험하고 스스로 개발한 태평농법의 이야기, 우리 나라 농업의 종자 위기와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가 들어 있다.

 

▣ 차례
게으른 농사꾼의 자연 이야기
게으른 농사꾼의 흙 이야기
게으른 농사꾼의 농사 이야기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1. 게으른 농사꾼의 자연 이야기
게으른 농부, 부지런한 자연
다른 사람들의 논에는 전부 농약을 치는데 내 논만 태평하게 방치하니 사람들은 해충에 의한 피해가 많을 것이라고 걱정을 많이 한다. 실제로 농약을 치지 않은 내 논에는 벼멸구 등 해충이 들어와 벼 잎을 갉아먹는 일이 있다. 그러나 해충의 수가 많아질수록 거미, 무당벌레 등 온갖 익충의 먹이도 많아지므로 자연히 해충이 힘을 쓸 겨를이 없다. 무궁화는 나라꽃이라는 감투 때문에 근근히 명맥만을 유지할 뿐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무궁화는 우리 땅을 지키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한 훌륭한 농사꾼이었다. 무궁화는 진딧물을 유난히 탄다. 그 점 때문에 사람들이 무궁화를 우습게 여기는지 모르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로 농사를 도와주는 무진딧물이야말당벌레 유충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진딧물이 많을수록 힘 좋은 성충으로 자라서 논으로 날아와서 해충을 없애는 좋은 농사꾼이 되는 것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조상들은 논가에 무궁화를 많이 심어 천적의 먹이를 제공해 주었다.

내 논은 곤충뿐만 아니라 너구리도, 청둥오리도 터를 잡고 삶의 공간을 꾸려가는 공간이다. 지금과 같은 건강한 생태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내가 농약과 비료라는 무기를 미련 없이 버리면서 실현되었다. 그 대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를 대신해서 논을 갈고 작물을 가꿔주는 능력 있는 농사꾼을 얻었다는 사실이 흡족하고 든든하다.

요 이쁜 청개구리
우리 논의 일꾼들 중에 나는 청개구리를 가장  좋아한다. 청개구리가 하는 일이라야 다른 녀석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이 해충을 잡아먹는 역할을 한다. 다만 몸이 작기 때문에 벼멸구나 흑명나방 등 작은 놈들을 주로 잡아먹는다. 내가 청개구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 녀석의 특유의 배짱과 고집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추수도 끝나고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 날 얇은 얼음장 밑으로 헤엄을 치고있는 올챙이를 발견하고 신기하여 파충류 전문가에게 그 연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올챙이가 돌연변이 종으로, 개구리로 바뀌지 못하고 올챙이로 죽을 것이라는 답변을 들은 이후 그 올챙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 결과 겨울을 올챙이 상태로 보내고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개구리로 바뀌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청개구리가 알을 낳고 올챙이가 되는 시기는 다른 개구리와 비슷하나 개구리로 변하는 시기는 제 각각이다. 다른 개구리와 달리 청개구리는 먹이가 부족할 경우 치열한 경쟁에 뛰어 들어 아귀다툼을 하는 모험을 피해 올챙이 상태로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것이다. 이외에 청개구리는 세상의 모든 새끼들이 어미보다 몸집이 작은 원칙을 깨고 어미보다 새끼가 큰 몸집을 하고 있는 외에 가을이 되어 갈색으로 보호색을 바꿔야 할 시기가 한참 지나서야 보호색을 바꾸는 등 반항아적 기질과 나름대로의 줏대와 고집을 보여준다. 조상들이 왜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이야기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하고 감탄하였다.

어머니와 박 속 이야기
나와 늘 마주치는 농촌여성은 유난히 골다공증을 두려워한다. 평생 치장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허리 굽혀 땅만 파면서 늙어온 심성 고운 사람들이 노후를 치명적인 골다공증에 시달리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아낙네들은 그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해 보겠다고 우유도 사 마시고 멸치도 상자째 사 들고 온다.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는 그이들이 칼슘이 많이 들어 있다기에 먹는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 가슴이 싸해진다. 그러나 우유나 멸치가 아무리 칼슘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해도 사람 몸 속에 들어가 그대로 온전하게 칼슘 성분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고 소화 과정을 거치면서 분해되고 합성되는 변형 과정을 거칠 것이므로, 먹기 전 형태는 어떻든 몸 속에 들어간 뒤 비로소 칼슘으로 변할 수 있는 음식을 찾아서 먹어야 옳다.

그러면 어떤 먹거리가 몸 속에 들어가 칼슘을 만들어 내는가 ? 나는 우선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을 비교해 보았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보다 뼈 성분을 많이 흡수할 테니 칼슘 성분을 더 풍부하게 지니고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육식을 하는 호랑이와 풀을 먹는 토끼의 이빨을 비교해 보면 풀만 먹는 토끼의 이빨이 훨씬 단단한 것을 알 수 있다. 초식 동물 가운데 이빨이 시원찮아서 늙어 고생하는 놈은 없다. 하지만 육식동물 가운데는 이빨이 상해서 굶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의 경우를 보면 평생 채식만을 하는 스님들이 칼슘 부족으로 병이 나는 건 보지 못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시대는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서 굶기를 밥 먹 듯이 했지만 골다공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생도 열 배는 더 했을 것이고, 먹을 것도 지금보다 열 배쯤 못 먹었을 텐데 어떻게 지금보다 뼈가 더 튼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해답은 어머니, 할머니들이 드시던 음식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박이었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은 먹을 것이 너무 없다 보니 남편과 자식들 상을 차리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어머니는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박 속을 드셨다. 어머니들의 거친 먹거리가 박뿐만은 아니었겠으나 유독 박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사람의 이처럼 생긴 박씨 때문이었다. 뇌 모양으로 생긴 호두가 머리를 좋게 하듯 치아 모양의 씨를 가진 박에 칼슘과 연관된 비밀이 숨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음양관에 의하면 밤과 여성을 '음'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밤에 꽃을 피우는 박 또한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 여성에게 이로울 것이 틀림없다. 박 주위를 어른거리는 곤충을 관찰해 봐도 그들은 다른 종에 비해 뼈나 껍질이 훨씬 단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자나 전문가가 들으면 성분을 분석해서 근거를 대라고 할지 모르나 나는 분석 같은 것을 할 능력이 없는 농사꾼이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자연을 조금 더 유심히 관찰한 결과이고, 자연은 웬만해서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골다공증을 두려워하는 여성에게 박 속을 들라고 자신 있게 권할 뿐이다.

공기 좋고 물 맑은 농촌 만들기
농촌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도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집집마다 자동차,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물론 입식 부엌에,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가정에서 배출되는 생활 하수가 도시 못지 않으나, 도시에 비해 하수 처리 시설이나 환경에 대한 인식이 크게 부족하여 생활 하수가 거의 여과 없이 하천과 토양 속으로 흘러든다. 지하로 스민 생활 하수는 지하수를 오염시켜 오염된 물을 마시는 농민의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진정한 정화는 하수가 다시 깨끗한 식수로 바뀔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나 지금의 정화조는 찌꺼기나 오염 물질을 일시적으로 저장시키는 구조일 뿐 근본적인 정화 시설은 아닌 셈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역시 자연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 내가 고안한 하수처리 시설은 흙과 식물을 이용한 것이다. 흙은 흙 속에 사는 풍부한 미생물로 인해 훌륭한 정화 작용을 수행하며, 식물 역시 식물 뿌리에 공생하는 미생물이 정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하수가 빠져나가는 곳을 깊게 파고 모래를 깐 다음 그곳에 식물을 심으면 이들 식물에 공생하는 미생물에 의해 일차 정수가 가능하다. 생활 하수가 많을 경우 모래만으로 100% 정화는 어렵다. 이 경우 모래밭 다음에 미나리 밭을 만들거나 조그만 양어장을 설치하면 거의 완벽한 정화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미나리 뿌리에는 더러운 물을 정화시키는 풍부한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양어장도 미나리 밭과 비슷한 정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 반드시 물가에 식물을 심어 미생물이 살도록 해야 한다. 나는 아직 미나리 밭이나 양어장 시설까지 갖춰서 실험을 해 보지는 못했으나, 이들 모두가 자연의 산물이므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연의 특성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언제나 부작용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경험을 믿기 때문이다.


2.게으른 농사꾼의 흙 이야기
자연, 최고의 항생제
어느 날 들판을 걷다 논에 퇴비를 내는 농부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농부는 장갑도 끼지 않은 맨 손으로 거름을 듬뿍듬뿍 움켜쥐었다가 논에 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농부의 부인이 내온 새참 막걸리를 한 잔 가득 부어 놓자, 농부는 씻지도 않은 퇴비 만지던 손가락이 그릇에 담기는 것에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닌가. 세균에 감염되어 큰 탈이 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농부는 곧 나무 밑에 누워 단잠에 빠져들었다.

20년 전만 해도 이 같은 풍경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른 아침의 빈들에서는 안개 같은 퇴비 훈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농부들은 그 속에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잤지만 세균에 감염되어 죽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알고 보면 그때의 산천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기는커녕 작은 상처쯤은 치료해 줄 수 있는 항생제를 품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농부들은 손이라도 벨라치면 논두렁 옆 도랑물에 상처를 흔들어 씻고 논흙을 그 자리에 바르곤 했다. 그것이 건강한 자연의 모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각자 서로의 몫을 주고받으며 평화롭게 사는 곳에는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도 건강 염려증 환자도 생길 수 없는 것이다.

흙은 말기 암에 시달린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풍년 들판은 황금을 펼쳐 놓은 것보다 아름답다. 그런데 5년째 나는 그 아름다운 황금들판을 보지 못하고 있다. 들판은 흡사 윤기 없이 듬성듬성 빠져나간 중병환자의 머리카락 같았고, 그나마 쓰러지지 않고 버틴 벼마저도 푸석푸석하게 병든 꼴이기 일쑤이다. 행정기관에서는 태풍의 영양이라고 발표했으나, 1999년만 해도 태풍이 육지에 상륙한 일은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런데도 비가 조금만 내려도,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벼는 속절없이 쓰러지곤 했다. 그 원인은 벼도 약해지고 논도 약해졌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벼보다는 땅이 약해졌다는 게 옳다.

병든 땅은 이제 산들바람에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벼밖에 생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땅이 앓고 있는 병은 말기 증상을 보이는 암 환자의 모습이다. 사람이 먹는 식물을 길러내고 있는 땅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대표적인 것이 비료와 농약이다. 인간으로 치면 비료는 영양제고 농약은 항생제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비료를 넣었을 때 평소에 약을 잘 먹지 않던 사람이 약을 먹으면 효과가 금새 나타나듯 우리 논도 처음에는 비료를 준 만큼 수확량이 늘었다. 하지만 1985년 무렵부터는 토양 상태가 두드러지게 나빠지면서 수확량도 점점 줄어들었다. 지나치게 비료를 넣은 결과 부실해진 토양에서는 전에 없이 병충에 피해도 많아졌다. 따라서 스스로 해충을 이겨낼 힘을 잃은 논에는 농약이 무자비하게 살포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충은커녕 익충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연약한 땅이 되고 말았다.

인간과 땅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원인으로 인해 암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들이 화학조미료를 먹기 시작하고 온갖 영양제와 항생제에 의지할 무렵 토양도 비료와 농약의 포로가 되어 갔다. 그때부터 암 환자가 기아 급수적으로 증가하고 토양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치료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산소를 많이 공급해 주는 것이다. 무 산소 상태에서 증식하는 암세포에게 산소를 공급해주면 증식조건이 너무 좋다 보니 짧은 시간동안 급격한 노화 현상을 보일 수도 있다. 나는 그 방법으로 나의 논을 살렸다. 화학 비료와 농약을 전혀 주지 않고 기계로 논을 갈지도 않은 태평한 농법을 썼더니 없어졌던 산소가 풍부하게 돌아왔고 산소가 많은 토양에 뿌리를 내린 벼는 건강하게 잘 자라서 태풍이 상륙할 때에도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우리의 논처럼 암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울창한 숲을 찾아가 산림욕을 하거나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건강한 먹거리를 먹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절대로 논을 갈지 않는 농부
가끔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천석꾼 소리를 들었던 대농들은 그 많은 전답을 어떻게 가꾸었을까 추측해 보기도 한다. 천석꾼이면 천마지기의 논을 가졌다는 뜻 일 게다. 그 가운데 농사짓기 힘든 논 오백 마지기쯤은 소작을 맡겼을 터이고 나머지는 머슴 대여섯을 데리고 직접 관리했을 것이다. 그래도 엄청난 면적인데 우선 걸리는 부분이 써레질이었다. 머슴 다섯이 다섯 마리의 소와 함께 잠을 자지 않고 교대로 갈아도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우리 조상들은 써레질에 그렇게 큰 힘을 들이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날의 땅은 인위적으로 비료를 너무 많이 주어서 오히려 생흙을 보충해 주어야 할 만큼 영양분이 넘친다. 그런 땅은 풍화작용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데도 해마다 땅을 갈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트랙터로 논을 깊이 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흡사 야채믹서를 돌리다가 딱 꺼버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트랙터로 논을 갈고 난 뒤 표면에서 숨쉬던 흙이 밑으로 한꺼번에 가라앉고 그 위로는 흙보다 가벼운 잡초 씨들이 올라앉아 얼마 후 잡초가 일제히 싹을 틔우면 논은 온통 잡초 밭으로 변해 버린다. 손으로 김을 매주는 일은 엄두도 못 낼만큼 무성한 잡초 밭이 되어 독성이 강한 제초제를 뿌려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한편 조상들의 쟁기질에는 또 다른 지혜가 담겨 있다. 지금과 달리 써레질 깊이는 고작 10cm 안팎이었다. 모를 심을 때에 아무리 깊이 심어도 손가락 하나 길이를 넘지 않았다. 모를 심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부드럽게 갈아놓은 흙이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모 뿌리는 점점 더 위로 올라와 얕아지며 뿌리가 산소를 호흡할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기계를 이용하여 깊숙이 갈아엎은 논에는 모를 아무리 얕게 심어 놓아도 며칠만 지나면 무거운 흙 때문에 모가 더 깊이 파묻혀 뿌리가 산소를 호흡하기 힘든 조건이 되어 따라서 줄기도 나약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비료를 줘야 한다.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얄팍한 상업주위와 탁상행정 때문이다.

기계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농촌 일손이 가벼워지고 다수확이 보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나는 절대로 논을 갈지 않았다. 조금 숨 쉴 만하면 도로 깊이 묻어버리고 또 간신히 숨 쉴 만하면 갈아 엎어버리던 짓을 그만두니 흙이 이게 웬일이냐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신나게 산소를 들이마신 땅은 건강한 벼를 길러냈다. 힘들게 논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나 역시 손뼉을 치고 좋아할 일이었다.

식물은 무얼 먹고 살까
식물이 무얼 먹고 사는지 관찰해보기로 했다. 먼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먹을 수 없는 식물로 종류를 나누었다. 관찰결과 그들이 먹는 것은 서로 조금씩 달랐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기본적으로 산소, 물, 온도를 필요로 한다. 산소와 물, 온도가 필수조건이라면 무기물은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무기물을 만들어내는 미생물은 호기성 미생물과 혐기성 미생물로 나눌 수 있다. 호기성 미생물은 물을 싫어한다. 그래서 여름가뭄이 오래가면 땅 속에는 호기성 미생물이 포화상태에 이르도록 번식한다. 그러다가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리면 그 미생물은 전멸한다. 그 시체들이 바로 식물이 좋아하는 무기물이다. 호기성 미생물이 죽으면 그 자리에 혐기성 미생물이 대신 살아간다. 그러다가 비가 그치고 상황이 바뀌면 이번에는 혐기성 미생물이 죽는다.

이렇게 미생물만 있으면 식물은 먹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친절하게 화학 무기물인 비료를 내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간다. 아니, 친절을 베푸는 그 순간부터 숨이 막힌 흙이 먼저 죽고, 흙이 죽으니 미생물이 죽고, 미생물이 죽으니 식물도 죽는다. 다만 식물만은 사람이 넣어주는 무기물을 받아먹고 근근히 살아갈 수 있다.

이번에는 사람이 먹지 않는 식물, 곧 잡초의 특성을 알아보자. 잡초성장의 필수조건은 빛, 물, 온도로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빛이다. 산소는 없어도 상관없지만 빛이 없으면 잡초는 맥을 못 춘다. 그래서 아무리 질긴 놈이라고 해도 빛이 들어갈 틈만 막아주면 살지 못한다. 김을 맨 다음 그논이나 밭에서 것들을 다시 벼 포기 밑에 살포시 올려놓았던 옛사람들은 그런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뽑은 잡초로 빛을 막아 다른 잡초의 성장을 억제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식물의 성장조건을 이해하면 농사는 훨씬 쉽게 지을 수 있다. 잡초 때문에 골치를 썩거나 제초제를 뿌리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다.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때 수확기에 볏짚이나 보릿짚, 밀짚으로 토양을 덮어주는 이유는 그런 효과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식물의 특성을 이용하기도 하고 역이용하기도 하여 작물들은 저희들끼리 크도록 내버려두고 잡초의 성장은 억제시킨다. 그렇게 키운 알곡을 관행농법으로 키운 것과 비교를 하기 위해 알곡의 세포를 잘라놓고 도열병, 문고병 접종을 시켜보았다. 그런데 저희끼리 자생력으로 자란 태평알곡은 세포가 어찌나 촘촘한지 접종시킨 병균이 침투할 틈을 못 찾고 물러난 반면 관행 알곡세포에서는 접종시키자마자 균이 퍼져 나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병균 퍼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 식물의 삶에 간섭하지 말자 사람이 빵을 먹든 고기를 먹든 식물이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에게 비료 먹어라, 농약 먹어라 간섭하지 말자.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저희끼리 내버려두면 물 속에서든 속에서든 스스로 먹이를 찾아내 잘 살아간다. 때로는 가만히 손놓고 지켜보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유기농법 유감
해마다 발생하는 산불 때문에 여의도 면적의 몇 십 배에 달하는 생태계가 파괴되어 가고, 초목과 함께 사라진 다람쥐, 토끼를 다시 보려면 5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산불예방 공익광고가 있다. 산불이 난 뒤 생태계는 초토화하여 나무와 풀은 말할 것도 없고 토양 속에 살던 미생물까지 전멸한다. 대규모 산불이 날 때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공조림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산불로 황폐해진 땅에 곡물 씨앗을 뿌리라고 권하고 싶다. 즉 식물의 특성을 적용시키면 자연상태로 방치하거나 인공조림을 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복원된다.

식물은 무기물을 먹고 자란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그렇다면 산불이 난 곳에는 무기물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산에 자생하는 나무나 식물은 초기 생육과정이 느려 인공조림으로는 그다지 빠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농산물은 초기 생육이 매우 빠른 식물이다. 수수, 옥수수, 조 같은 씨앗을 뿌리면 삭막하던 땅이 금세 무성해질 것이다. 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면 외부에서 날아온 잡초나 나무 씨앗들이 바로 이듬해부터 발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이 예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식물의 먹이는 유기물이 아니라 무기물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유기물이 식물의 먹이인 것으로 알고 유기농법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유기농법이 과학 농법보다는 그래도 자연을 덜 괴롭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덜 괴롭힐 뿐으로 식물의 성장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간섭하는 것이므로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그리 내세울 만한 농법이 못 되는 것이다. 목초액이니 유기질 비료니 하는 것도 식물처지에서는 전혀 달가워할 수 없는 먹이들이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생물과 식물의 관계를 깨트리는 농법이기 때문이다.


3. 게으른 농사꾼의 농사 이야기
태평하게 그러나 부지런히
논 안 갈고, 모 안 만들고, 모 안 심고, 제초제 안 뿌리고, 비료 안 주고 그야말로 남들이 하는 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태평하게 농사를 짓기 때문에 내 방식의 농법을 태평농법이라 부른다. 그러나 여태껏 관행대로 농사를 지었던 땅에 곧바로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다. 태평농사를 짓기로 뜻을 세웠으면 먼저 흙을 살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벼를 수확한 자리에 보리나 밀을 파종하고 볏짚으로 덮어주는 것은 흙을 살리는 첫 걸음이다. 화학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땅은 완전히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식물이 먹을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첫해에는 축산 유기물 등 식물이 먹고 살아갈 축산 유기물 등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단 유기물은 가을철에 공급을 해주어야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보리나 밀이 습기에 약하기 때문에 습해를 우려할 수도 있다.

관행대로 씨앗을 땅속에 묻을 경우에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습기가 영향을 미치나 흙 위에 종자를 앉히는 식으로 파종할 경우에는 그다지 큰 피해가 없다. 종자가 알아서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이듬해 수확기에 보면 땅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것을 알 수 있다. 기계보다 보리나 밀이 더 효과적으로 써레질을 해준 결과이다. 수확기가 되면 보리나 밀을 거둔 자리에 볍씨를 파종하고 다시 보릿짚, 밀짚을 덮어준다. 보리나 밀짚을 덮어주면 흔히 거름이 너무 많아 벼농사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건 거름이 아니라 미생물의 먹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미생물은 짚을 먹고 벼는 또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를 먹고 자라는 것이다. 가을에 반드시 보리와 밀을 파종하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짚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다.

알다가도 모를 논두렁 콩의 조화 속
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은 논에 모를 심고 나서는 논두렁에도 콩을 심는다. 좁은 논두렁에 심은 콩은 땅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배가 고파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처음에야 그런 목적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가면서 논두렁에 콩을 심은 데는 조상들의 뚜렷한 의도가 있었다. 조상들은 콩을 심으면서 콩에게 병충해를 막는 파수꾼의 임무를 맡겼다. 논두렁에 심은 콩은 때로는 소에게 잎을 뜯기기도 하고 논에 들어가 피해를 입힐 초식충 등을 가로막으며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며 종족을 번식시킬 능력을 갖춰간 것이다. 그렇게 조상들이 몸소 체험 끝에 내놓은 꾀를 요즈음 사람들은 이용하려 들지 않는다. 벌레 한 마리만 보여도 재빨리 살충제 분무기를 지고 논두렁에 나간다. 하지만 그건 결코 콩을 위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 잎을 뜯어먹어 주지 않으면 잎만 무성할 뿐 열매를 힘있게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논두렁에서 콩이 하는 역할은 농사꾼을 대신하여 해충을 유인하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혼자 들판을 지키고 앉아서 새경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인에게 갖다 바치면서 일하는 상머슴이다. 이제는 제발 콩이 논두렁에서 제 맘대로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라.

채소 궁합 맞추기
태평 농법에서 모든 농사가 가을에 시작되듯이 채소 농사도 마찬가지다. 마늘 농사를 짓기 위해 흙을 부드럽게 한다는 핑계로 로터리를 칠 필요는 없다. 마늘밭으로 가서 이랑을 높여 산소를 더 들어가게 해 주고 마늘쪽 한 배 반쯤 깊이로 구멍을 뚫어 주고 그 자리에 마늘쪽을 넣는다. 그게 끝이다. 흙을 덮어 줄 필요도 없다. 흙을 덮으면 산소가 부족해 순이 못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냥 구멍 속에 넣어 두기만 하면 마늘은 혼자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보낼 것이다. 한가지 걱정은 비닐을 덮지 않았기 때문에 이듬해 봄에 잡초가 무성해질 염려가 있다. 그러나 밭에 물을 조금 준 뒤 상추씨를 뿌리면 그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다.

겨울에 심은 상추밭에는 절대 잡초가 자라지 못한다. 잡초 때문에 귀찮을 일 없이 잘 자란 마늘을 수확해서 좋고, 곁들여 상추까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혹 마늘 대신 양파를 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심는 방법은 마늘과 다르지 않다. 구멍만 뚫어 주고 흙은 덮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는 상추 씨 대신에 시금치 씨를 뿌린다. 시금치가 하는 역할은 상추와 비슷하다. 마늘을 뽑은 자리에 감자를 심을 경우에도 그냥 빈자리에 감자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 감자를 심지 않은 빈자리가 아까우면 콩을 심는다. 감자 사이에 콩을 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감자 잎에는 벌레가 유난히 많다. 그런데 그 옆에 콩을 심어주면 벌레가 온통 콩잎으로 모여든다. 벌레에게 감자 잎 대신 콩잎을 내 주는 것이다. 콩은 벌레가 먹든 소가 먹든 잎을 뜯길수록 많이 열린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마늘이나 양파를 뽑아낸 자리에 감자 대신 고구마를 심어도 좋다. 단, 고구마는 자외선에 약해서 누군가 양산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참깨는 키가 큰 작물이라 자외선을 충분히 막아 준다. 농약을 칠 필요도 비료를 줄 필요도 없이 기다리다 때가 되면 밭에 나가 이들을 걷고 이번에는 무나 배추를 심는다.

이식 수술은 이제 그만
요즈음 과일의 맛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배고프던 시절이기 때문에 무엇이나 맛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그럴 듯하나 실제로 과일 맛은 무언가 변한 게 사실이다. 그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첫 번째 원인은 비료 때문이다. 비료를 주면 식물은 세포 수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고 단일 세포의 크기를 키우고 부피가 커진 세포의 공간은 내실 없이 더 넓어지고 이들 공간은 수분이 채운다. 사람으로 치면 쓸 데 없이 물살만 찐 형상으로 싱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책 없이 넓어진 공간은 성긴 그물망처럼 허술해서 벌레가 침투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또 농약이 필요해지고 그 양이 점점 증가하면서 이제는 약을 치지 않으면 열매가 다 떨어지고 만다.

맛이 변한 두 번째 이유는 이식 수술, 즉 접목을 한 나무 자체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품종을 개량한다고 나무에 접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어디를 가도 순종을 찾기 힘들다. 접붙인 나무가 순종보다 더 튼튼할까? 더 맛 좋고 큰 과일을 생산해 낼까 ?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하다고 평가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나무도 이와 같이 접붙인 나무는 양적으로 품종개량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열매를 받아 심으면 전혀 다른 나무가 자란다. 이제 나무에 가했던 폭력을 멈출 때가 되었다. 쉽지는 않지만 꺾꽂이를 하면 제 뿌리에 제 줄기를 가진 나무를 되살려낼 수 있다. 내 경험으로는 유자, 귤, 복숭아, 감, 밤 할 것 없이 꺾꽂이가 가능하다.

고구마 꽃은 다 어디로 갔을까
보라색, 분홍색 등 색깔도 예쁘고 모양도 예쁜 고구마 꽃을 기억하는가? 한때 우리 나라에 고구마 꽃이 피면 나라가 또는 집안이 망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아 꽃만 피면 행여 남이 볼세라 따서 없애기 바빴다. 꽃이 없어지니 씨앗도 당연히 없어져 지금은 아예 수입한 고구마 뿌리에서 자란 순을 잘라 심는다. 근거 없는 소문 하나가 우리 땅에서 고구마 씨를 전부 말리고 만 것이다.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을까? 고구마 씨가 없어져 이득을 보는, 우리에게 고구마 순을 팔아먹는 일본인들일 게다.

우리 땅에서 사라진 것은 고구마 씨앗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농가 처마마다 잘 익은 고추가 매달려 있었다. 고추 하나에서 받아낸 씨앗들은 온 밭을 채울 수 있도록 고추가 열렸다. 그러나 이제는 고추 씨앗을 받아도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해마다 고추 씨앗을 산다. 돈 주고 산 씨앗은 약하기 짝이 없어 한 달만 지나면 반드시 탄저병 예방약을 쳐야 한다. 그 부실한 고추씨를 팔아먹는 나라도 일본이다. 고추는 우리가 훨씬 많이 먹는데 씨앗은 죄다 일본이 쥐고 있다. 사정이 여기까지 이르렀는데도 우리는 아직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씨앗은 다 죽여놓고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대해서 성토한다. 어차피 매년 씨앗을 수입하는 형편인데 새삼스럽게 그런 논쟁을 벌일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우리 씨앗 한 톨이라도 되살릴 연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잃어버린 종자를 찾아서
한번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는 무척 힘들다. 종자도 처마 끝에 매달려 있을 때는 흔한 것이었지만 그 자리를 떠난 후에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무조건 옛 것 그대로 복원시키는 작업은 의미가 없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으므로 그에 걸맞는 새로운 종자를 찾아야 한다. 정책당국과 대다수 농민들은 비료를 많이 줘도 썩지 않는 것을 우량 품종이라 하지만 나는 화학비료를 전혀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것을 우량품종으로 생각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벼도 고추나 옥수수와 같이 한 묶음씩 종자용으로 처마 밑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아버지가 선택한 벼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논두렁에 심었던 옥수수 밑에서 자란 벼였다. 옥수수와 벼는 같은 화본과이기는 하나 서로 교잡시킬 수 없는 작물로 실험을 해보니 아무리 옥수수와 벼꽃을 수정시켜도 옥수수 닮은 벼나 벼 닮은 옥수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수정시킨 벼에서 나온 씨앗을 계속해서 심어 보니 삼대가 계속되어도 단일 종자 상태에서 변화가 없이 알곡의 크기나 수분 함량 정도, 밥 맛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개발한 품종에 나는 '이공벼'라는 이름을 붙여 이웃들에 보급하기 이르렀다.

거꾸로 옥수수 품종 실험도 했다. 벼 근처에서 자라고 있는 옥수수의 수꽃을 잘라 버리면 벼꽃이 수정 기능을 하지 않는 한 옥수수가 열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열매는 열렸고 이렇게 얻은 옥수수 씨앗을 심어보았더니 예전의 옥수수처럼 마디마다 옥수수가 두어 개씩, 많을 때는 네다섯 개까지 열렸다. 맛도 좋았고 당도 또한 거의 25%에 달했다. 옥수수와 벼는 교잡이 안 되는 품종이나 적어도 서로 상승 작용을 하는 관계라는 결론을 얻었다. 고추 종자도 옛 기억을 떠올려 고추 밭 근처에 어김없이 서 있던 가지를 이용하여 개발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실험은 농사를 지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실험을 통해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고 보급할 수 있다. 그런 이들이 많아질수록 씨앗까지 수입하여 심어야 하는 오늘의 한국 농업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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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um우수카페]귀농사모/한국귀농인협회
글쓴이 : 201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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