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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탄소 경제’ 가고 ‘수소 경제’ 뜬다

그린테트라 2007. 3. 3. 12:12

‘탄소 경제’ 가고 ‘수소 경제’ 뜬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기체(氣體)는? 두말할 것 없이 수소다. 수소는 배출가스가 없는 친(親)환경 에너지의 대명사로 주가가 급상승 중이다. 반면,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와 함께 ‘공공의 적’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3월 청와대에서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투싼 수소 연료전지차를 시승한 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에게 “임기 동안 적극적으로 밀어드리겠다”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는 같은해 9월 ‘친환경 수소경제 마스터플랜’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오는 2040년까지 전체 자동차의 54%, 발전설비의 22%, 휴대용 전자기기의 100%를 연료전지로 대체하겠다”는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40년 수소 연료전지 산업 규모는 109조원에 달하고 고용효과는 10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최근에는 ‘수소 경제’가 선거 공약으로도 등장했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를 자청한 이계안 의원은 지난 14일 ‘이산화탄소 없는 수소 서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서울의 환경오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탄소로 유지되는 에너지원을 교체해야 한다”면서 “시장이 되면 수소 연료전지 버스를 도입하고 서울시 관용차량을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수소 경제는 수소를 대표적인 에너지 저장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제를 의미한다. 수소는 주로 자동차의 연료나 수력·풍력 발전소의 일시적으로 남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수소가 독립된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소는 에너지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다. 수소 경제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는 수소를 석유나 원자력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 에너지원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빚어진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다. 우주의 75%는 수소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수소는 대부분 다른 원소와의 화합물 형태로 존재한다. 물은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이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우리가 쓰는 화석연료도 수소와 탄소의 화합물이다.

그러나 물이나 화석연료로부터 순수한 수소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수소 생산에 필요한 전기나 열을 공급할 화력·수력·원자력 등 에너지원이 있어야 수소 경제가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천연가스·석유 등 화석연료로부터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수소 경제로의 이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은 대부분의 수소가 화석연료에서 생산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수소 경제는 원자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수소 에너지의 역사는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길다. 수소로 달리는 친환경 자동차는 이미 1930년대에 등장했다. 같은 시기에 수소로 움직이는 버스, 기차, 잠수함이 개발됐고 수소로 추진력을 얻는 어뢰까지 만들어졌다.

1930년대 수소를 교통수단의 연료로 사용하는 실험은 독일인 기술자 루돌프 에렌이 주도했다. 그는 휘발유·디젤 등 전통적인 화석연료와 수소를 병용할 수 있는 엔진을 개발했다. 에렌이 개발한 엔진은 독일과 영국에서 상당히 많은 차량에 사용됐다.

에렌은 폴란드의 북(北)실레지아 지방 출신으로 기성학계에 반감을 가진 재야 발명가였다. 그는 어린 시절 맥스 펨버턴의 소설 ‘철의 해적’을 읽고 수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철의 해적’은 획기적인 수소 엔진을 개발한 과학자를 해적들이 납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렌은 1928년 북부 베를린에 에렌모터사(社)를 세우고 수소 엔진 연구에 몰두했다.

1930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동력회의에서 에렌은 자신이 연구한 수소 엔진을 발표했다. 이 엔진은 공기와 혼합한 연료를 엔진에 주입하는 대신 압축한 수소를 공기가 들어 있는 연소실 내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수소 엔진의 출력과 연비는 기존 엔진보다 높았다.

에렌은 영국의 몇몇 회사로부터 초청을 받아 런던에 에렌 엔지니어링사를 설립했다. 에렌은 1930년대 중반 독일 나치 정부에 기존의 내연기관을 수소 엔진으로 개조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당시 나치는 경제적 자급자족을 이루기 위해 수입 연료의 의존도를 낮추고 싶어했다.

이미 보급된 디젤 엔진을 수소·디젤 겸용 엔진으로 개조하는 데는 한 대당 몇 백달러(수십만원)면 충분했다. 약 3000~4000대의 차량이 이런 방식으로 개조됐다. 독일 전역에 퍼져 있는 수력발전소의 잉여 전기로 수소를 생산한 뒤 이를 연료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당시 독일의 수력발전소는 필요한 전기 수요보다 두 배 가까운 발전 용량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의 철도청은 1932년 낡은 기차 엔진을 수소 엔진으로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수소와 디젤을 혼합한 연료를 사용할 경우 엔진의 동력이 종전보다 9.7% 증가한 83마력까지 올라갔다. 수소만 연료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이보다 낮기는 하지만 77마력을 냈다.

에렌은 1942년 영국 정부를 위해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잠수함과 어뢰를 발명했다. 기존의 어뢰는 방출된 배기가스가 만드는 물방울 때문에 육안으로 어뢰의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소와 산소를 연료로 사용한 어뢰는 배기가스 대신 물을 방출하기 때문에 궤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수소와 산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잠수함 역시 배기 방울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 수상운항 중 디젤 엔진을 돌려 수소와 산소를 만든 뒤 잠행할 때 이를 연료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거대하고 무거운 배터리를 배 안에 설치할 필요가 없어 잠수함이 항해할 수 있는 거리도 1만5000마일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나자 수소에 대한 관심도 식었다. 석유가 수소에 비해 저렴하고 수송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별도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수소 가격이 비싼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수소는 최소한 그 생산에 사용된 에너지원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수소 에너지가 최근 다시 각광받게 된 것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연료전지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연료전지는 물을 전기분해하는 과정을 거꾸로 뒤집어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키면 전기가 발생한다는 간단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일반 배터리에 비해 많은 양의 전기를 저장할 수 있고, 연료를 보충해주면 계속해서 전기를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래의 첨단 기술로 알려진 연료전지가 실제로는 가솔린 엔진보다 40년 앞서 발명됐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연료전지는 1839년 한 영국인 판사가 발명했다. 연료전지를 처음 발명한 판사 윌리엄 그로브는 원래 물리학자로 발전기를 발명한 마이클 패러데이의 친구였다. 그는 물의 전기분해를 연구하다가 그 과정을 반대로 해 수소를 산소에 반응시킬 경우 전기가 생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는 1839년 이를 입증해냈다. 최초의 연료전지인 그로브 전지가 일으킨 전기는 대단히 미약한 것이었다. 이후 그는 50개의 작은 연료전지를 연결한 대형 연료전지를 개발하고 수소뿐 아니라 염화수소 및 에테르, 알코올로도 연료전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를 실용화하지는 못했다.

1889년 영국인 과학자 루드비히 몬트와 찰스 랭거는 그로브의 연구를 이어받았다. 연료전지라는 말은 이들이 처음 사용했다. 몬트의 연료전지는 실용화를 위해 산소 대신 공기를, 순수한 수소 대신 불순물이 섞인 산업용 수소가스를 사용했다. 1.5W의 전력을 얻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가스 속에 남아 있는 일산화탄소가 촉매로 쓰인 백금을 부식시키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연료전지의 실용화에 성공한 사람은 영국인 기술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베이컨은 1932년 고가의 백금 대신 비교적 저렴한 니켈을 촉매로 사용한 산화수소 전지를 개발했다. 베이컨은 1959년 2톤 용량의 지게차를 움직일 수 있는 5㎾ 연료전지를 만들어 직접 시운전하기도 했다.

1960년대 초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장기간의 우주비행에 사용할 전력원으로 연료전지가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반 배터리는 수명이 너무 짧았고 충전용 배터리는 우주에서 충전할 콘센트가 없었다. 태양광 발전은 태양을 볼 수 있는 위치에서만 전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반면 액화수소나 액화산소로 작동하는 연료전지는 같은 무게에 당시 최고 성능의 배터리보다 8배의 전기 에너지를 담을 수 있었다. 아폴로 우주선에 사용된 연료전지는 베이컨의 연료전지 특허권을 사들인 유나이티드테크놀러지가 개발했다. NASA의 대규모 연료전지 계약 덕분에 1990년대부터 연료전지 시장이 형성됐다.

연료전지는 대규모 발전에도 쓰인다. 1980년대 초 도쿄전력회사(TEPCO)는 유나이티드테크놀러지와 공동으로 지바현 고이(五井)에 4.5MW급 연료전지 발전소를 건립했다. 이 발전소는 메탄을 연료로 사용했으며 1983년부터 약 2800시간 동안 전력을 생산했다.

초소형 연료전지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연료전지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컴퓨터, 휴대용 전자기기의 전력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수소 연료전지로 작동하는 손전등, 수소 화합물인 메탄올과 알코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노트북 배터리 등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휴대전화의 배터리로 사용할 수 있는 몇 만원짜리 연료전지 팩도 등장했다. 일부 초소형 연료전지 개발자들은 연료전지를 휴대전화 배터리로 사용할 경우 일반 배터리의 절반 가격으로 통화시간을 50배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소가 곧 화석연료를 대체할 것이라고 요란떨지 않는다면 수소 에너지의 미래는 밝다. 수소는 이미 대규모 생산이 이뤄지는 성장 산업이다. 세계의 수소 생산량은 매년 10% 증가하면서 지난 2004년 5000만톤을 넘었다. 지난해 생산된 수소의 경제적 가치는 1350억달러로 추산된다. 이 수소를 전력으로 환산하면 연간 200GW(원자력 발전소 200기의 발전 용량)에 달한다.

미국은 2003년 전체 전력 생산량의 10%가 넘는 48GW(1100만메트릭톤)의 수소를 생산했다. 수소의 저장 및 수송 비용이 높기 때문에 필요한 지역에서 생산한 뒤 곧바로 소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생산된 수소의 절반은 암모니아, 즉 비료를 만드는 데 쓰인다. 나머지 절반은 석유나 식물성 기름을 정제하는 데 쓰인다. 메르세데스 벤츠·BMW·도요타 등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수소 자동차의 실용화를 서두르고 있어 자동차 연료로의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수소의 절반 가까이는 천연가스(48%)에서 추출된다. 그 다음으로 석유(30%)와 석탄(18%)이 수소의 주된 공급원이다. 물을 전기분해해 얻는 수소는 전체의 4%에 불과하다.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소의 수요가 커지고 가격이 오르면서 새로운 생산 방법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방식은 원자로를 이용한 고온열화학 분해다. 일부 시험용 원자로는 섭씨 850~1000도에서 작동하는데 이 온도에서 물을 열화학 분해할 경우 열 에너지의 50%를 수소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다. 기존 방식에 비해 효율이 2배 이상 높아지는 것이다.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03년 1㎏당 1.40달러였다. 지난해에는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수소 추출 비용이 2.7달러까지 치솟았다. 원자로를 이용한 고온열화학 분해법은 수소 1㎏당 1.53달러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태양·풍력·수력·해양력 등 공급량이 불규칙한 자연 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한 뒤 발생한 수소를 모았다가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도 모색되고 있다. NASA는 1990년대부터 태양 에너지로 비행하는 무인 항공기를 개발해왔다. 이 항공기는 낮에는 태양 에너지로 비행하고 남는 에너지를 수소 연료전지에 저장했다가 밤에 이를 이용해 야간 비행을 한다. 이론적으로는 몇 개월 동안 쉬지 않고 하늘을 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방식을 자동차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소는 이처럼 태양 에너지나 풍력·해양 에너지 등 자연 에너지가 석유·석탄을 대신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미생물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바이오매스 생산법도 주목받고 있다. 일부 미생물은 음식물 쓰레기, 축산 분뇨, 산업 폐수 등에서 수소를 분해한다. 이 수소는 곧바로 이산화탄소와 결합해 메탄으로 바뀌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는 수소 발생이 미미한 수준이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에 인공적으로 개입해 수소를 얻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 방법은 쓰레기도 처리하고 수소 에너지도 얻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전 세계의 폐기물을 바이오매스 생산법으로 처리할 경우 연간 에너지 소비량의 30%를 충당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민구 주간조선 기자(roadrunner@chosun.com)

출처 : 기독교인창업연합
글쓴이 : 포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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